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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엇비슷 Nov 26. 2020

엄마! 엄마! 이거 뭐야?

왜 공부에는 관심이 없을까

"1등!" 

어딘가에서 뛰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한 남자아이가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오며 소리친다. 이윽고 들어온 다른 남자아이. "아! 내가 1등이었는데 아깝다!" 조용하던 우체국이 단 두 명의 목소리로 시끌벅적 해진다. 주위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 "엄마 빨리 와!" "엄마가 꼴등!" 두 남자아이는 유리문을 하나씩 잡고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는 동시에, 10에서 1까지 거꾸로 세어가며 저 멀리 걸어오시는 엄마를 재촉한다. 잠시 후 잔뜩 지친 표정으로 우체국에 들어오시는 어머니. 그러나 꼴등을 문가에 내버려 둔 채 아이들은 우체국 안을 들쑤시고 다니기 바쁘다. 아. 이 시대의 어머니들. 파이팅.


우리 우체국이 있는 마을은 귀촌 인구가 조금 있는 편이다. 도자기, 계란, 빵, 목공예, 집필활동 등등. 농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목적으로 도시를 떠나 작은 시골로 오신 분들. 항상 반복되는 일상, 매일매일이 벅찬 도시 생활보다 조금 더 여유롭고 느긋한 시골 라이프를 즐기고 계신 걸까. 가끔 우체국에 오시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도시에 있을 때보다 몇 백 배는 더 피곤하다고 하신다. 그러면 도시에 계실 때가 더 좋으셨냐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하시고. 하긴 두 곳의 생활 다 장점과 단점이 있는 거니까. 


아무튼 즐거운(?) 시골 생활을 하며 농산물을 기르거나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인터넷에 올리고, 주문을 받아 제품을 우체국으로 보내러 오시는 분들. 가끔 부모님을 따라 아이들이 오기도 한다. 


아이들의 큰 특징이라 하면 역시 넘치는 호기심과 고갈되지 않는 체력이 아닐까. 작은 우체국은 금세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해버린다. 궁금한 게 뭐가 그리 많은지. '엄마! 이건 뭐야? 저건 왜 저런 거야?' 답은 듣지 않고 계속 질문을 하면서, 의자에 올라가거나 드러눕고, 소포 포장대에 있는 상자를 꺼냈다가 넣었다가, 상품 팸플릿을 빼서 비행기를 접는다거나 다양한 활동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 그중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저울이다. 엄마가 가져온 물건을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것을 한 아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물건이 빠지니 저울에 자기 손을 슬며시 올려본다. 무게는 300g 정도. "그거는 3,500원이네!" 웃으면서 이야기해준다. 문 밖에서 우체통에 매달려서 놀고 있던 아이가 뛰어들어온다. "나도! 나도 해볼래!" 두 손을 모아 저울을 꾹 눌러보는 아이. 3~4kg 정도가 나왔다. "이건 4,500원!" "엄마! 내가 동생보다 천 원 더 비싸!"


시골로 내려 오신지 이제 7년 정도 되신 고객님. 고객님은 오실 때마다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하루 종일 실컷 놀고 들어와서는 책상에 앉아 있기는커녕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만 쳐다본다는 아이들. 그리 호기심이 넘치던 아이는 공부나 교과서에는 전혀 흥미가 없어 보이고, 밤을 새워가며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할 때는 언제고 책상에 앉혀 놓기만 하면 몇 분도 채 안돼서 드러누워 버린다고 말씀하신다. 왜 공부 앞에만 서면 잠이 그렇게나 쏟아지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을 가질까 고민하는 고객님과 대화하며 어릴 적 나는 어땠었는지 생각해 본다.




초등학교가 끝나면 친구와 함께 놀이터로 갔다. 시공사가 놀이터에만 힘을 쏟았는지 아파트에 비해 놀이터가 무지하게 좋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네를 두 명이 동시에 타고, 빨리 돌아가는 뺑뺑이에서 안 떨어지게 버티고, 정글짐에서 눈 감고 잡기 놀이를 하고,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다가 흙장난을 하고, 꼭 엄마는 가장 재미있을 때 집에 오라며 날 부르시고. 


그렇게 실컷 놀아도 지치지 않은 나는 새벽 두 시가 되면 몰래 방을 빠져나와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향했다. 모니터의 빛이 새어 나가지 않게 담요를 덮은 다음 전원 버튼을 누른다. 쿨러가 돌아가는 소리는 왜 그렇게 크고 삑 삑 거리는 부팅 소리는 왜 그렇게 시끄러웠던 건지. 스피커에 이어폰을 꼽고 몰래 게임을 하다가 창 밖이 밝아져 올쯤이면 다시 컴퓨터를 끄고 내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또 학교로 가고 또 놀이터에 가고 또 몰컴을 하고. 진짜 그때의 체력은 어디로 갔는지.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부 자체가 재미가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시대. 손으로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책이든 뉴스든 동영상이든 다 볼 수 있는 놀라운 시대.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바다도 아니고 큰 호수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곳에 들어가려면 컴퓨터니 마우스니 키보드니 이것저것 준비물이 많았었다. 들어갈 수 있는 장소와 시간도 한정되어 있었고.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망망대해를 누빌 수 있으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흔히 아이를 순수한 존재라고들 한다. 때 묻지 않고, 그리면 그리는 대로 색을 내는 도화지. 사실 도화지보다는 스펀지나 솜이 아닐까 싶다. 옳다 그르다의 개념 없이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고 빠르게 흡수하는 아이들. 

순수한 동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만 집착한다. 많은 것에 관심이 있는 동시에 쉽게 질려하며, 정적인 것에는 그리 흥미가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에 집중하며, 그 순간순간의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타고 더 흥미롭고 자극적인 것들이 가득한 정보의 바다에 푹 빠져 있었으니 공부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니면 노는 게 제일 좋아라고 외치던 펭귄 일당의 마수에 빠진 것일 수도 있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을 가질까? 사실 이 질문은 매 세대마다 반복되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아이들의 스마트폰이 나에게는 컴퓨터였으며, 그 전의 세대에게는 TV였겠지. 지금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 문제가 10년 전의 컴퓨터, 인터넷 중독 문제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TV가 괜히 바보상자라고 불려 왔을까.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져 봐야 안다는 말. 옛말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결국 자기가 절박해야 공부를 하게 된다고 고객님께 말하면 진짜 무책임하게 들리겠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 참다못한 고객님은 나를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말씀하신다. 


"우체국에서 떠들면 이 아저씨가 이 놈하고 혼낼 거야!"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무슨 말을 꺼낼지 잔뜩 기대하는 얼굴. 아. 다음 놀이기구는 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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