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의 결혼쯤 나는 엄마와 재회를 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극적인 재회는 아니었다. 눈물도 웃음도 없는 건조하고 어색한 만남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단 말도 없었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 그냥 어색하고 어색하고 어색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의 결혼식 당일날 나는 20여 년 만에 우리 네 식구가 한 공간에 있는 모습을 봤다. 동생은 혼주석에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앉았으면 좋겠다고 나와 아빠에게 이야기했고 아빠도 동의함으로써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한 자리에 섰다. 가족사진도 찍었다. 엄마가 사돈어른과 화촉에 불을 붙이고 동생이 아빠의 손을 잡고 식장에 입장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다시 보지 못할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었다. 동생은 축가로 '라디'의 '엄마'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때 나는 거의 대성통곡을 했다. 우리 집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동생과 내가 무척이나 각별했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무리 각별했다고 해도 동생 결혼식에서 그렇게 오열하는 친오빠를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뒤로 4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엄마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하다. 핸드폰에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고 내가 먼저 연락하는 적도 거의 없다. 답장을 하는 게 아직은 어렵다. "아들 잘 지내지?"라고 메시지가 오면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한참을 생각을 한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그리워했던 건 엄마라는 빈자리이지 실제 우리 엄마라는 사람은 아닌 거 같다. 20년을 만나지 않고 살았더니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국 어릴 적 생긴 나의 공허는 엄마와의 재회로도 채워지지 못했다. 그 20년의 공백을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다시 메꾸어야 할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앞으로 살면서 풀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