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분자
장미과의 낙엽 관목으로 땅에 닿은 줄기에서 뿌리가 내려 번식한다. 5~6월에 연한 붉은색 꽃이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7~8월에 검붉은 색으로 익는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복분자 열매는 오줌이 요강을 엎어버릴 정도로 남자의 정력이 좋아지는 명약으로 눈을 밝게 하고 기운을 도와 머리털이 세지 않게 하는 효능도 있다.
못 가에 앉아 더위를 식히던 엄마는 이곳에 오는 길에 보았던 덤불에 뭐가 있나 내내 궁금해했다. 부지런히 채집하던 여자가 대체 뭘 땄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더위도 한풀 꺾인 데다 휴식도 취한 우리 둘은 혹시 모르니 빈 샌드위치 통을 가지고 가는데 동의하고 그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에 먹거리를 채집하는 일을 연중행사로 하는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가곤 했다. 겨우 서너 살 된 조그마했을 나는 들판에서 풀을 뜯으며 놀고 엄마는 어린 내 눈에 끝없이 펼쳐진 듯 보이는 쑥밭에 웅크리고 앉아 쑥을 톡톡 따고 있다. 채집을 한 최초의 기억. 그곳은 아마 우리 식구가 몇 년 살았던 천안이었을 것이다. 여러 차례 쑥 채취 원정에 따라간 이후 나는 곧잘 길가에 핀 식물의 잎을 자세히 살펴보며 혹시 쑥이 있으려나 두리번거리곤 했다. 하지만 나의 대발견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국화였다. 어린 눈에 국화와 쑥은 늘 비슷해 보이기 마련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틀림없을 것이라는 심정으로 풀을 가리키며 쑥이 맞는지 엄마에게 묻곤 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국화라는 것이었다. 그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어째서 쑥을 구별하지 못하는지 답답했던 심정이 기억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거대한 쑥이 자라는 쑥밭을 발견했다. 그것도 홀로.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것들을 쑥쑥 잡아당겼고 풀은 예상과 달리 순순히 어린 내 손에 선뜻 뿌리까지 내주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지독할 정도로 질기고 깊이 박힌 쑥 뿌리가 그렇게 쉽게 뽑힐 리 만무하지만). 나는 튼실하고 큼직한 수확물을 양손에 들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엄마 앞에 내밀며 외쳤다. “엄마, 쑥 많이 뽑았어!” 하지만 엄마는 놀란 눈빛으로 대체 국화를 왜 뽑아왔냐고 묻기만 했다. 나는 화단을 망친 죄로 지레 겁을 먹고는 옥상으로 뛰어올라가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무서웠던 기억. 먼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쑥은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두 식물의 잎은 유사하다. 앞뒤가 모두 초록색이면 국화, 뒷면이 흰색이면 쑥 잎으로 구별한다고 한다.
지금도 엄마는 해마다 쑥을 채집해 씻고 말린다. 양껏 채취하고 일어설 참이면 또 쑥이 눈에 들어와 발목 잡힌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봄마다 채취 원정을 다닌다. 말린 양이 어느 정도 되면 불린 찹쌀과 쑥을 방앗간에 가지고 가서 떡을 주문한다. 직접 채취해서 만든 쌉싸근한 쑥떡의 향은 시중에 판매하는 그것과 비할 데 없다. 쑥을 아무리 많이 넣어도 색이 그렇게 깊고 진한 초록빛을 띠지 않는다는 걸 진짜를 먹어본 사람은 안다. 쑥떡의 색은 조금 탁하고 연한 녹색, 세이지 색이다.
사람 구경, 구름 구경을 하며 걷다 보니 금세 우리는 목표물이 있는 덤불에 도착했다. 까마귀 한 마리가 검붉은 열매를 따먹다가 우리가 다가가자 멀찌감치 자리를 비켜주었다. 익숙한 모양을 어디서 본듯해 한참을 생각해 보니 마침 이곳에 오기 일주일 전에 방문했던 런던에서 서쪽으로 두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배스(Bath)에 있는 샬롯의 시골집에서였다. 그날은 영국에서 최초로 운전을 시도한 날이었다. 별 걱정 없이 렌터카의 운전대를 잡고 서투르게 고속도로로 진입했는데 한 시간가량 흘렀을까? 고속도로가 끝나면서 왕복 2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그건 말하자면 꼭 운전해 보고 싶었던 그림 같은 영국 시골 도로였다. 언젠가 마이클 윈터버텀 (Michael Winterbottom), 번역하자면 겨울 궁둥짝이라는 웃긴 성을 지닌 영국 감독이 만든 <여행 The Trip>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실은 윈터 버텀은 옛 영어로는 겨울 골짜기라는 뜻으로 이 성의 지리상의 유래가 담겨있다). 이 작품은 두 친구가 영국 북부 시골을 차로 여행하면서 줄곧 고급 식당을 방문해 먹으며 아주 긴 대화를 나누는, 말이 무척 많은 영화로 식당과 식당 사이사이에 간간이 인상적인 시골길을 운전해 달리는 장면이 나왔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음식보다는 그 촉촉한 시골길과 낯선 풍경이 탐났다.
길은 곧 좁아졌고 좌우로 엉덩이 같이 볼록볼록 솟아있는 구릉의 지형을 따라 굽이지며 오르락내리락했다. 물론 그건 내가 그토록이나 운전대를 잡고 달리고 싶었던 진정! 영국다운 시골 도로였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는, 아니 확신하건대 (동승한 가족은 미심쩍어했지만) 차선폭이 한국보다 한참 좁았고 갓길이라는 건 눈을 씻고 보아도 없는 데다 중앙선을 표시하는 줄이 단 하나만 성의 없이 그어져 있을 뿐이었다. 설명하자면 내 차와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차가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운전대를 잡고 벌벌 떨며 좁은 길을 기어가는 동안 내내 눈앞에서는 맞은편에서 진행하는 차들이 쌩하고 굉음을 내며 덮치기라도 할 듯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20분가량 운전하고 나니 차창으로 스쳐 지나는 낭만적인 영국의 시골길, 그토록 발을 디디고 싶었던 영국스러운 풍경, 촉촉한 꼬부랑길에 대한 갈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저 살아서나 도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 길을 통과해야 했다.
배스는 의미 그대로 목욕탕이라는 뜻으로 영국이 고대 로마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로마인들이 지은 목욕탕이 있을 뿐 아니라 제인 오스틴(Jane Austin)의 소설의 배경이기도 해서 유명해진 동네이다. 학교 방학인 데다가 주말이 겹쳐 배스로 향하던 긴 관광 차량 행렬은 내 뒤에서 꼼짝없이 굼벵이처럼 기며 분통을 삭혀야 했다. 운 좋게 목장 출입구로 차를 빼기 전까지는 내 뒤로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물고 저 멀리까지 이어져있었다. 결국 두 시간 반이면 갔을 곳을 4시간씩이나 걸려 겨우 도착했고 이후로 나는 영국의 시골길이라면 자전거를 타면 탔지 운전할 생각은 못하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샬롯은 우리가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탓에 저녁을 먹기 전에 어서 나가 집 앞 정원과 산책로를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다. 7월에 프랑스에서 만났을 때 정원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귀뜸한 터인 듯했다. 샬롯은 영국 사람답게 밀크티를 마시겠냐고 물어보다 이내 마음이 바뀌어 그러지 말고 민트티를 마시자고 했다. 집의 앞쪽에서 보면 반지하, 뒤에서 보면 일 층인 부엌을 향해 좁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곧바로 영국의 유명 인테리어 잡지인 ‘하우스 앤드 가든’에 나올 법한 옛 스토브인 아가(Aga)가 부엌 중앙에서 시선을 끌었다. 샬롯 말로는 몇 년 전 이 집을 구매했을 때 아가도 같이 딸려왔다며 그저 운이 좋았고 한여름에도 습기를 없애고 서늘한 기운을 잠재우려는 용도로 24시간 내내 켜놓는다고 했다. 그는 곧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 건조한 민트 잎을 넣고 우린 다음 부엌 뒷문을 통해 정원에 나가 지천에서 자라는 민트를 뚝 따와 여전히 뜨거운 김이 나는 찻물에 집어넣었다. 공포의 운전에서 해방된 후 마신 향긋한 민트 티는 갈증과 긴장을 단번에 날려 보냈다.
우린 관절염으로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는 크림색 래브라도를 데리고 장난감처럼 조그마한 샬롯의 집 바로 건너편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좁은 도로 하나를 건너자 곧바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원이 나타났다.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돌담을 지나자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꽃밭이 나오고 이어서 자원봉사자들이 관리하는 커뮤니티 텃밭 정원이 있었다. 샬롯은 재미있는 거 보여주겠다며 돌담 뒤로 우리를 데리고 갔는데 그 뒤는 서늘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대여섯 살 아이들의 몸집에 맞을 듯한 조그마한 나무 그루터기 의자가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는 막 소꿉놀이를 하다 떠난 흔적이 있었다. 우산처럼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주워온 잡목으로 만든 테이블과 마찬가지로 역시 주운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든 요정의 집에 몇 개 놓여 있었다. 이 아이들의 놀이터는 정말이지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오필리아가 날개를 퍼득이며 기웃거릴 만큼 자연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요정 정원에서 나와 오솔길을 걷자 곧 담장 너머로 바둑판무늬가 난 거대한 잔디밭이 인상적인 정원과 그 뒤에 있는 살구색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각 층마다 창이 5개씩, 총 3층으로 된 저택 앞쪽으로 마치 체스 말처럼 정교하게 다듬은 주목 나무 두 그루가 계단 양쪽에서 좌우 대칭으로 자라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그 양옆에 일렬로 흰 수국의 행렬이 있었는데 하얗고 거대한 꽃봉오리는 뒤의 살구색 저택을 배경으로 무척이나 고상해 보였다.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영국 사람들은 꽃도 색깔에 따라 서열을 정해놓았다고 한다. 꽃 중 최고봉으로 치는 것은 흰색, 그러니까 흰색은 로열패밀리, 그다음 연한 인디언 핑크같이 미묘한 연한 색은 백작 정도, 그다음 희귀한 푸른색 계열은 자작, 제일 미천한 색은 빨강이란다. 빨강은 뭐라 해야 할까. 아파트 담장을 장식하는 흔한 빨간 장미를 한 번 생각해 보라.
축구장보다도 더 커 보이는 거대한 잔디밭 양 가로는 마치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의 풍경화처럼 꽃나무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커다란 나무가 화면의 양 가를 안정적으로 감싸며 겹겹의 깊이감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모든 구조는 한 가지 목표, 멀찌감치 서있는 저택을 최고로 돋보이게 할 요량으로 고안된 듯 보였다. 쇠창살로 된 담장 안의 정원과 저택은 마치 유리 진열장 안에 있는 유물 같은 고자세로 행인들의 시선을 요구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정원과 공원의 경계인 검은 쇠창살을 양손에 붙들고 죄수처럼 얼굴을 최대한 밀어 넣은 모양새로 서서 넋을 잃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우리가 죄수 신세가 아니라 정작 집주인이 죄수처럼 그 안에서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6년 전쯤 저택이 매물로 나왔을 때 소문에 의하면 런던의 금융계에서 큰돈을 벌고 은퇴한 게이 커플이 샀다고 샬롯이 내 귀에 속삭이며 알려주었다. 눈알이 튀어나올 만한 엄청난 금액을 한화로 환산하려 애쓰면서 매입은 둘째치고 관리만 해도 매년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텐데 싶은, 쓸데없이 남의 사정이나 걱정하고 있을 무렵 샬롯이 조금 입을 비죽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남자 중 한 명이 정원사도 두지 않고 혼자 이 거대한 정원을 관리한데요. 그런데 얼마나 잘 가꾸는지 오죽하면 잔디에 무늬를 내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통 동네 사람들이랑 교류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지내요. 자기 집 안에서만. 이런 정원이면 온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라도 하면 좋을 텐데!”라며 원망과 섭섭함을 토로했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들판과 강, 그리고 마을이 있는 이 동네에서 밖에 싸돌아다니지 않고 집 안에만 있는 이유가, 집이 얼마나 멋지면 그럴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경계 너머의 그 정원보다 샬롯 집 앞에 있는 모두의 정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민주적인 정원, 아이들이 꾸민 사랑스러운 비밀 공간이 더 정감 넘쳐서 좋았다. 저택을 지나 오솔길에서 나오자 강폭이 좁으면서도 적당히 수심이 깊어 보이는 아본 강(River Avon)이 나타났다. 그 옆으로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에서 관리하는 탁 트인 들판과 산책로가 이어졌다. 시냇가와 산책로 사이 중간중간에 덤불이 마치 담벼락처럼 두툼하게 자라있었는데 불그스름한 열매가 있어서 하나 따먹었더니 시고 딱딱하기만 했다. 샬롯은 그게 복분자라고 알려주며 “이제 철이 다 지나버렸어요. 8월이면 끝물이라 먹을 게 없을 거예요. 내년 7월에 다시 와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덤불 깊숙한 곳으로 다시 한번 손을 밀어 넣다가 그만 커다란 가시에 손목을 찔리고 말았다. 손목은 그다음 날까지도 얼얼할 정도였다.
복분자와의 시큼하고 따끔한 첫 만남 이후 햄스테드 히스에서 엄마는 덤불을 보자마자 뭔지 바로 알아채고 달려들었다. 덤불에는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따간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다행히 여전히 크고 시커멓고 즙이 많은 열매가 남아 있었다. 먼저 큼지막한 것들을 찾아 입에 넣었다. 신선하고 달콤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검붉은 색에 이끌려, 또 왜 진작 이곳에 오지 않았나 원통해하며 허겁지겁 가시로 덮인 가지 사이를 뒤졌다. 놀랍게도 아무리 따도 여전히 통통한 열매는 바닥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끝도 없이 달려 있었다. 엄마는 복분자가 건강에 좋다면서 다음날 아침으로 복분자 요거트를 만들어 먹자고 했다.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채취하는 동안 우리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몰입 상태에 도달했다. 열매를 따고 먹으며 나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 휘파람새와 동류가 된듯한 기분이었다.
갈색으로 잘 그은 탄탄한 다리를 드러내고 조깅을 하던 어느 남자가 경로를 이탈하여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냅다 달려왔다. “할로, 많이 땄수? 제일 대박인 덤불을 잘 골랐수다. 복분자 덤불이 많아도 이곳이 가장 실하다오. 물기가 얼마나 촉촉한지 보쇼. 나도 여기 단골이라오.” 남자는 익숙하면서도 재바른 손놀림으로 가시덤불 속으로 요리조리 손을 집어넣으며 열매를 따는 족족 입에 집어넣었다. 담아 갈 통도 없으니 아예 그렇게 저녁까지 해결하고 갈 요량인 듯했다. 그의 합류로 자칫 할머니 취미쯤으로 치부될 뻔했던 활동이 최신의 런던스러운 유행으로 격상된 듯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열매를 한 주먹 집어 입에 넣고 씹는다. 굵은 씨가 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신선한 맛이다. 당도가 최고조로 오른 과일의 생김새를 요모조모 자세히 들여다보고 입안에 넣을 때마다 ‘완벽함’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런 걸 의미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꾸밀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결된 것. 내 모든 감각을 열도록 돕는 신비로운 친구. 우리의 손가락은 어느새 어여쁜 진빨강 빛으로 물들었다. 놀라운 자연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