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초크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국화과의 다년생 식물. 고대 이집트인들도 식용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본래 야생 엉겅퀴였으나, 품종 개량을 거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 남유럽 지역에 널리 보급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바르톨로메오 볼도(Bartolomeo Boldo)가 1576년에 작성한 ‘자연의 책’에 의하면 아티초크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성욕을 자극하는 효능이 있다.
8월 마지막 날이었다. 런던의 히드로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여행객들과 그들이 끌고 온 보따리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엘리자베스선 튜브에 겨우 몸을 비집어 넣고 한숨 돌리자 서서히 창밖으로 런던의 주택가와 녹음이 빠르게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정쩡하게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어깨 한쪽에 배낭을 걸치고 서서 나는 자유로운 필체로 무심하게 그린 듯한 들꽃 문신을 팔과 허벅지에서 종아리로 내려오는 다리에 한 여자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는 발치에 있는 자신의 슈트케이스 위에 내 배낭을 올려놓으라며 친절하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우리는 어차피 같은 목적지를 향해 보따리를 이고 지고 가야 하는 동지.
몸이 한결 가벼워지자 짧지 않았던 시간을 뒤로하는 아쉬움과 동시에 ‘런던에서 제일 저렴하다고 악명 높은 숙소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곧 포근한 내 침대에 눕겠구나!’ 싶은 설렘에 들떴다. 하지만 미세하게 묵직한, 조금의 안달 섞인 감정이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쯤에서 독자들은 그 이유가 뭔지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보살핌의 손길 없이 홀로 두 달여간을 무더위에 버티었을 작은 정원과 집 옆 공터에 마련한 텃밭 때문이었다. 누구에게 부탁하지도 못하고 오로지 하늘과 땅에만 맡긴 채 떠나온 그곳. 해마다 반복되는 경험으로 짐작건대 지금쯤은 폐허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반면 그 옆에 200평이 넘는 땅을 홀로 차지한 W 아줌마의 텃밭은 잡초 하나 없이 반짝거리고 있을 테고(아줌마는 비닐로 흙을 다 덮어서 잡초 씨가 싹트는 걸 원천 봉쇄한다. 농사철이 끝나고 겨울이 되면 그 시커먼 비닐은 흙먼지와 함께 온 동네를 날아다닌다. 그 외에도 툭하면 각종 화학 약품을 요리조리 뿌려 해충도 박멸하고 수확량을 높이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내 밭은 더욱더 초라하고 흉물스러운 모양새가 되어 비웃음을 샀을 것이었다. 내 소중한 식물들은 애가 타도록 친절한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가로 세로 약 3m 크기의, 손바닥 만한 텃밭은 파주 신도시 어느 주택의 담벼락 밖 한편에 놀고 있는 사유지를 무단 점유해 만든,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게릴라 가든이다. 7월 초에 떠날 당시만 해도 텃밭의 맨 뒷줄에는 찰옥수수 대여섯 그루가 들쭉날쭉한 키로 자라고 있었고, 그 앞 오른쪽에는 가지와 방울토마토가 이미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그늘에는 바질 씨앗을 솔솔 뿌려놓았는데 그것들은 기특하게도 딱딱하게 굳기 일수인 누런 진흙을 뚫고 올라와 연약한 잎을 드러냈다. 아티초크는 작년에 진딧물이 끼어 단물이 다 빼앗기고 꽃대가 올라오기 전에 성장을 멈춰버린 까닭에 그해 다시 시도했지만 씨를 조금 늦게 파종한 탓에 떠나기 전에는 약 20cm가량 밖에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엉겅퀴 꽃을 닮은 그 커다랗고 매력적인 식물이 화단 위로 내 키만 하게 올라온 것을 어디선가 본 이후로 해마다 ‘올해는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며 씨를 뿌리곤 했다. 이번에는 아티초크에게 제법 넉넉한 규모의 땅을 할애했고 아침마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등 정성껏 돌봤다. 그 외에 각종 샐러드 야채는 왼쪽에, 맨 앞줄에는 여러 종류의 꽃씨를 뿌려놓았는데 떠날 즈음에는 그중 메리골드가 가장 싱싱하게 자라 노랗고 주황색의 화려한 얼굴을 활짝 내밀었다. 참, 난쟁이 해바라기도 꽤 튼실하게 커서 꽃망울이 맺히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과연 이것들은 다 어떻게 변했을까?
가족이 모두 떠난 7월 초순부터 우리 집에서 지내며 보더콜리 맥스와 여섯 마리의 닭을 돌봐주던 동생의 보고에 의하면, 만물을 녹일 듯한 폭염과 폭우도 견뎌내며 알이 촘촘하게 영근 찰옥수수는 말도 못 하게 달았고, 남은 네댓 자루가 완전히 영글기 위해서는 좀 더 기다려야 하며, 닭똥을 발효해 만든 비료를 봄에 뿌린 덕인지 가지 세 그루에서 나온 수확은 기특하기 그지없어서 뙤약볕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나눠주느라 고생했다는 것이다. 토마토도 혼자 먹기에는 넘칠 만큼 풍성했단다. 하지만 잘 자라고 있는 야채 사이사이도, 빨간색과 보라색 등 화사한 색깔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 나머지 공간에도 이미 이름 모를 잡초가 침입해 번성하고 있는 탓에 뭐가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지 알 수도, 감히 건드릴 생각조차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동생에게 아티초크 잎의 생김새와 색깔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런던에는 요즘 정원에 아티초크가 얼마나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데, 우리 것도 지금쯤이면 키가 해바라기만 해졌을 텐데. 커다랗고 두툼하고 은빛이 돌면서 톱니바퀴처럼 뾰족뾰족한 길쭉한 잎을 잘 찾아봐!” 하지만 동생에게서는 이런 문자만 돌아왔다. “나보고 그걸 어떻게 찾으라고, 돌아오면 알 거야. 완전히 정글이거든, 그렇게 생긴 걸 찾는 건 불가능해.” 다국적 대기업의 노예 생활만 25년, 해마다 해고 통보를 받을까 봐 걱정하면서 가을에는 진짜 정리될 게 확실하다 하는, 매번 집을 비울 때마다 우리 가족을 대신해 닭과 개를 돌봐주는 내 동생에게 지금 당장 정글을 뚫고 들어가 아티초크를 찾아 돌봐달라고 부탁하는 건 너무 이기적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