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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Mar 07. 2025

그해 초 나의 최대 꿈이라 하면 그건 정원을 좀 더 잘 가꿔보는 것이었다. 최대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건 이끼 낀 어여쁜 토분에서 자라는 식물에 올해는 반드시 꽃을 피워보겠다던가 아니면 절대로 말라비틀어지게 하지 않고 정성껏 돌보겠다는 자잘한 결심하고 비슷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은 정원이라고 해 봐야 너무나 작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내게 정원 가꾸기는 새해 운동 결심처럼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 서러운 운명의, 늘 달성하지 못하고 마는, 막연한 이상향에 가깝다. 맞다. 꿈이라고는 하지만 단 한 번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지 못했다. 두리뭉실한 느낌. 추상성. 정성의 부재보다는 아마도 이러한 것이 진정한 실패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클로드 모네, <수련>, 1914-25, 모마, 뉴욕클로드 모네, <수련>, 1914-25, 모마, 뉴욕


그 추상적인 이미지를 조금 구체화하자면 그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가 말년에 그린 <수련> 연작에서처럼 수련의 형태는 수면의 찰랑임과 물에 반사된 구름에 용해되고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새와 하나 되어 개별성은 뭉그러지고 빛의 조각만 남은 그런 분위기이다. 그곳에는 단잠에서 깨어나 햇살 한 조각 비치는 침대에서 막 기지개를 켜고 나른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여배우의 헝클어진 머리칼처럼 무심하게 흐드러진 멋이 있다. 그곳은 천사 가브리엘이 임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들렀던 성모 마리아의 정원처럼 아늑한 담으로 둘러싸인 비밀스럽고 안전한 요새이다.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37-1446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37-1446


한편 그것은 영국의 영화감독이자 예술가였던 데릭 저먼(Derek Jarman)의 정원처럼 생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저 멀리 핵 발전소가 불길한 미래 도시처럼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해안의 자갈밭에 칼날 같은 눈으로 찾은 ‘발견한 사물’과 소금기 가득한 대기에서도 번성하는 끈질긴 생명력의 토착 풀로 꾸민 무한한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프로스펙트 코티지의 정원에서 일하는 데릭 저먼프로스펙트 코티지의 정원에서 일하는 데릭 저먼


 

물론 정원 디자이너에게 이런 느낌으로 정원을 디자인해 달라고 의뢰하면 식물의 생리나 토양의 성질, 기후에 대한 지식 따위는 없으면서 겉멋만 들은 의뢰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세계 최고라 하더라도 그런 느낌을 한꺼번에 지닌 정원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올 게 뻔하다. 하지만 그 어렴풋한 정원의 이미지는 안에는 언제나 분주히 움직이며 그것을 돌보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흙을 만지고, 땅을 파고, 전지를 하고, 자갈을 배열해 정성스레 패턴을 만들고, 어디서 주워 질질 끌고 온 괴상한 형상을 정원에 세워놓고 소금기 섞인 땀을 닦으며 창조한다. 그 사람은 데릭 저먼이 입은 옷과 비슷한 스타일의 작업복을 입었다. 머리에는 타샤 할머니의 것과 같은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그 아래로 제인 구달(Jane Goodall)처럼 단호하게 뒤로 질끈 묶은,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보인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모는 그가 가꾸는 정원만큼이나 신비롭다. 그게 나라면, 나의 미래의 모습이라면!


이른 봄은 꽃씨 허브, 채소 씨앗 목록을 한참 뒤지다가 주문하고 지난가을에 받아놓은 씨앗과 땅에서 파낸 구근을 정리하는 일로 시작되곤 했다. 하지만 막상 노동을 시작해야 할 철이 다가오면 너무 많은 종류의 씨앗과 모종에 압도되어 어찌할 바를 모른 체 무계획의 상태로 작은 화단과 크고 작은 화분,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아 공터 여기저기에 씨를 뿌리는 일로 봄 작업은 시작되었다. 물론 예상 가능하다시피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는 다른 법. 한여름을 넘기기도 전에 나는 잡초와의 싸움에서 완패하고 정원에 대한 막연한 꿈은 그렇게 내년으로 또다시 밀려나는 것이었다.


 텃밭을 가꾸고 싶은 열망은 어떻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2000년대 초반 일산 신도시에 살면서 정발산 주택가의 비어있는 땅을 점유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텃밭을 하는 미선 씨를 알게 되었다. 동네를 산책하며 텃밭을 지날 때마다 울타리처럼 길가 가장자리에 일렬로 자란, 갈색 수염을 드러내며 어서 따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옥수수를 얼마나 탐냈던가, 그 사이사이를 기어가며 맺힌 큼직한 초록색, 갈색 호박은 어떻고. 또 봄마다 고상한 자주색과 흰색을 뽐내며 처음에는 작은 새알만 한 크기의 공기주머니 모양이었다가 곧 얼굴을 활짝 열고 속을 다 드러내는 미지의 꽃이 바로 제삿밥에 들어가는 도라지 뿌리의 꽃인 줄 처음 알고 그 아름다움에 얼마나 감격했던지! 미선 씨는 나를 만날 때마다 자부심 넘치는 미소를 띤 얼굴로 갓 수확한 싱싱한 상추 잎이며 큼직한 호박 등을 나눠주었고 언젠가는 호박꽃까지도 챙겨주었다. 그러면 나는 얼른 집에 돌아와 그 물기와 생명이 넘치는 쌉싸름한 잎을 입에 넣어 씹으며 나도 텃밭이 있었으면 소원했다.


 참, 막내 외숙모의 정원도 있었다. 90년대 중반 서울의 대단지 아파트 생활을 접고 포천 시골로 들어가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새로운 세계를 일구던 외숙모. 우리가 방문해 저녁 식사를 마련할 때마다 곁들인 각종 푸성귀는 자연스레 주방 뒷마당의 장독대 옆에 있던 텃밭이 선사했다. 높은 이웃집 옹벽을 기어오르며 주렁주렁 맺혔던 자랑스러운 호박. 하나도 똑같은 모양이 없었다. 뒷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산책하며 내게 처음 소개해 주었던 야생 산초 잎. 그 향기. 외숙모만의 비밀 숲에서 열매를 맺던 야생 복숭아나무. 나무는 아직도 작고 달달한 복숭아를 맺고 있을까? 언제나 멋스러운 쟁반 위에 산에서 주운 밤이며 잣나무 열매 같은 것이 올려져 있던 소박한 부엌. 제대로 된 지식도 없이 땅을 파고 벽돌을 깔고 물을 넣어 함께 만든 연못. 숲에서 캐 온 식물로 연못 가장자리를 장식하던 외숙모. 어느덧 그곳에 터를 잡았던 청개구리. 막내가 태어나던 해 정원 한편에 심은, 이제는 집보다 더 크게 자란 소나무. 그곳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던 외삼촌들의 화음. 돌이켜보면 그런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내 마음속에서도 ‘텃밭 + 정원 = 행복’이라는 공식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맞다. 나는 그렇게 자연을 맞대고 사는 게 진정으로 기쁜 삶이라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먼 훗날, 드디어 자그마한 정원이 생겼을 때는 아무런 지식도, 제대로 된 경험도 없던 나는 잡지의 이미지만 너무 들여다본 탓인지 장미가 흐드러진 담벼락을 그리며 아이보리, 인디언 핑크와 같은 독특한 색깔의 장미를 구해서 심었다. 하지만 장미가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틔우면 이내 단물을 다 빨아먹어 말리고야 마는 진드기와 해충과의 전쟁에서 늘 완패하곤 했다. 엄마는 어째서 해마다 장미가 다 죽냐며 내 형편없는 솜씨에 혀를 껄껄 찼지만 훗날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그건 결코 내 탓 만은 아니었다. 종자 회사들의 장난으로 색깔이 연한, 고급스러운 교배종 장미는 점점 병충해에 약한 식물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엄청난 양의 화학약품에 의존하지 않는 다음에야 잘 자랄 리 만무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토종이니 파주의 매서운 겨울도 난다고 했지만 해마다 겨울이면 말라죽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으아리, 반면 이웃집 으아리는 재주 없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하늘로 하늘로 뻗어 올라가며 해마다 진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그림 같은 인상적인 꽃을 피웠다. 그럭저럭 자리를 좀 잡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새 식구로 들어온 맥스가 땅을 다 파헤치고 꽃과 관목과 허브를 죄다 뽑아버리는 바람에 전쟁터나 매한가지로 처참해졌다. 그 비극적이던 시기 이후로 정원은 방치된 채로 흉물스럽게 있었다. 영영 그랬을 수도 있었다. 그러던 내게 다시 땅을 돌보고자 하는 욕구가 자연스럽고도 절실하게 찾아온 것은 팬데믹이 시작된 그 해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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