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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주 Sep 26. 2017

1980년대 사대천황 ④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신일숙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한국만화사 다시 쓰기’ 프로젝트, [한국 순정만화 작가사전]이 소개하는 두 번째 작가(군)은 강경옥과 김진, 김혜린과 신일숙입니다. 1980년대 대본소 만화, 소위 ‘만화방 만화’로 데뷔한 이들은 비록 스타일과 세계관은 다를지언정 거대한 세상, 흉포한 세상에 찢기고 부서지면서도 제 의지를 잃지 않는 인간에 깊은 애정을 품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대본소시대와 잡지시대를 가로지르며 만화사의 굵직한 걸작들을 쏟아낸 ‘1980년대 사대천황’. 그중 신일숙은 아름다운 그림체로 역사와 신화, 현실과 마법을 능란하게 엮어낸 판타지 로맨스의 대가였습니다.  



데뷔작| 1984년 《라이언의 왕녀》

대표작| 《아르미안의 네 딸들》 《리니지》 《카르마》 《사랑의 아테네》 《1999년생》 《에시리자르》



“운명이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라는 잠언의 창시자. 아름다운 그림, 화려한 연출, 장대한 스토리, 촘촘한 플롯을 무기 삼아 강경옥, 김혜린, 황미나와 함께 1980년대를 사분四分했다. ‘리니지’ 게임의 원작자답게 SF와 특히 아랍 지역 역사를 결합한 판타지물에서 강점을 보였으며, 그에 걸맞은 화려한 복식문화로 독자의 혼을 빼놓았다. 다만 그 패션 센스는 시대물에 국한된 것이었다.



만화가로 성공 못할 팔자다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부모와 함께 부산으로 이주해 1995년까지 살았다. 어려서부터 만화가를 꿈꿀 만큼 재능과 열정이 가득했으나, 주변의 이해를 얻지 못한 채 조용히 학업을 마쳤다. 하지만 다행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가족의 반대와 “만화가로 성공 못한다”는 점쟁이의 점괘를 무릅쓰고 상경해 1982년 차성진 문하에 들어갔다. 


작가 신일숙의 '출세작'. 고대 '아르미안'이라는 가상 왕국을 배경으로 네 왕녀의 파란만장한 사랑과 삶을 역사와 신화를 아우른 장엄한 스토리로 직조해냈다.  


데뷔작은 1984년 《라이언의 왕녀》. 서기 841년 스코틀랜드 렌토랜드의 공주 ‘라이아나’와 적국의 왕자 ‘타일런’의 사랑과 전쟁을 그린 작품으로, 왕국의 명운을 짊어진 공주, 각각의 사연 있는 캐릭터, 지독한 운명 등이 언뜻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예비하는 듯 보인다. 이후 해마다 굵직한 작품 하나씩을 내놓았으니, 바로 《사랑의 아테네》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다. 


《사랑의 아테네》가 전형적인 할리퀸 로맨스물이었다면,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작가의 역량이 온전히 발휘된 마스터피스였다. 기원전 487년 고대 페르시아 지역을 배경으로, 아르미안이라는 가상 왕국의 마지막 네 왕녀 ‘마누아’ ‘스와르다’ ‘아스파시아’ ‘샤르휘나’의 이야기를 풀어낸 신일숙은, 역사와 신화를 아우른 장엄한 스토리, 수많은 인물을 엮어 짠 정교한 플롯,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총동원해 자신의 마지막 대본소 만화를 직조해냈다. 

워낙 규모가 큰 이야기인데다 작품을 시작하고 곧 『르네상스』 등 만화잡지가 우후죽순 창간하면서 연재작이 늘어나는 바람에, 완결을 보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특히 마지막권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올 기미가 없어서, 참을성 많은 독자들 사이에서조차 ‘작가 사망설’이 나돌 지경이었다. 이에 신일숙이 잡지 편집자들을 피해 시골로 잠수해 들어가,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가며 마감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시대를 풍미한 '왕좌의 게임'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1980년대 대표작이라면, 1990년대의 대표작은 단연 《리니지》다. 중세 유럽의 가상 왕국 아덴에서 아름다운 왕비 ‘가드리아’, 그녀의 아들 ‘데포로쥬’, 가드리아와 결혼한 ‘켄 라우헬’이 벌이는 ‘왕좌의 게임’을 그린 이 작품은, 1993년 『윙크』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공주와 기사, 괴물과 영웅이 공존하는 판타지적 시공간, 선악이 불분명한 현실적 세계관, 노예가 반왕이 되는 역동적인 이야기는 대만의 만화잡지 『공주』는 물론 게임개발 업체의 이목을 호려, 1997년 동명의 MMORPG으로 개발되었다. 비록 2001년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와 캐릭터 사업과 관련한 저작권 문제를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곧 원만하게 해결하고 지금까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공주와 기사, 괴물과 영웅이 공존하는 판타지한 시공간, 선악이 불분명한 현실적 세계관, 노예가 반왕이 되는 역동적인 이야기 《리니지》는 국내외 만화팬은 물론 게임업체까지 매혹시켰다


2000년대 들어 플랫폼의 변화와 더불어 인기/중견 작가라는 입지(=상대적으로 높은 고료)로 인해 작품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인기/중견 작가의 책임감으로 장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난관을 돌파했다. 2004년에는 교양만화 《아라비안나이트》(달궁) 시리즈를 내놓았다. 2007년에는 재테크 책 《Mr. 경제학과 데이트》(길벗)의 작화와(살펴본 바, 현대 복식에 관한 감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편의점체인 ‘GS25’와 함께 ‘편의점에서만 유통되는 만화책’ 《카야》를 작업했다. 2013년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소설로 번안한 《아르미안》을 냈으며, 2014년 ‘카툰컵’에서 《불꽃의 메디아》 연재를 시작했다(중간에 매체가 사라지는 바람에 끝은 ‘레진코믹스’에서 맺었다). 2003년 ‘한국여성만화가협회’ 회장직을 역임했고, 2015년 “네이버 한국만화거장전: 순정만화특집”에 <지구에서 온 여자>를 선보였다. 



1980년대 사대천황 ①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강경옥


1980년대 사대천황 ②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진


1980년대 사대천황 ③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김혜린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 : 여성/만화/작가 중심의 한국 만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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