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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Oct 02. 2024

이사빛

_ 음악의 힘


 # 이사빛
  : 이른 아침에 뜨는 따사로운 햇빛.



무너진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음반프로듀서 댄도 그랬어요. 엉망진창의 하루를 보낸 그는 우연히 들른 바에서 그레타의 노래를 듣게 됩니다. 무명의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는 사람들의 소란함 속에 이내 묻혀버리지만 오직 단 한 사람, 댄에게만은 달랐습니다. 아내의 외도로 인해 혼자 살아가던 댄은 딸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아빠로, 청춘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조차 해고되었어요. 그레타 역시 서로의 삶에서 빛이라고 생각한 연인이 성공 후 배신하는 슬픔 속에 빠집니다.


그레타의 음악은 댄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었어요. 지친 삶에서 그녀의 노래는 그의 눈과 귀를 밝게 하여 오직 댄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상상 속 악기들의 연주와 함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지요. 어둠 속 반짝임을 알아보는 그만의 시선. 그것을 연출해 내는 감독의 영상은 벅찬 감동을 자아내며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10년 만에 영화가 재개봉되어 두 딸과 함께 다시 보아도 여전히, 아니 더 큰 차오름을 받았어요. 좋아했던 영화를 성인이 된 딸들과 같이 보면 만감이 교차하며 뭉클해집니다. 꼬마들이 어느새 자라서 영화에 대해 도란도란할 수 있게 되다니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내게는 그것이 영화보다 더 경이로운 마음을 들게 합니다.


한참을 빠져 보다가 문득 보는 내내 미소 짓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도 좋아서 영화를 본 후 이어폰 분배기까지 구입하게 한 장면이 나오기 전에는 설렘과 기대로 두근거렸어요.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버거운 삶의 순간이 음악으로 인해 다채로운 색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음악은 힘겨운 세상 또한 드라마처럼 빛나게 해 주지요. 상처받은 두 사람은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을 이어폰 분배기를 통해 함께 들으며 걷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교감을 나누며 자유로워지지요. 길 잃은 두 주인공의 쟂빛 삶이 함께 나누는 음악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이 되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거리 곳곳을 다니며 그곳의 다양한 소음까지 고스란히 음악으로 담아내는 녹음 과정 또한 내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했어요.


음악은 어려운 살아감에 이사빛을 안깁니다. 이른 아침 나를 일으키는 햇빛처럼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지요. 고개 들어 먼 하늘 바라보게 하고 스치는 바람결을 느끼게 합니다. 계절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나무에 감탄하고 조금씩 움트는 꽃봉오리들에게 반가운 미소를 짓게 합니다. 매일 걷는 길과 거리도 순간의 색이 모두 다릅니다. 청아한 하늘. 은은한 꽃향기 품은 풀냄새. 비와 어우러진 세상. 눈부신 단풍의 향연 속에 그 빛깔이 달라집니다. 마음의 온도. 곁에 있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의 풍경에 따라 같은 길이 다른 세상이 됩니다. 반짝이는 새로움으로 가득합니다.


나이 들수록 삶이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관계와 세상살이는 맷집 두둑해진 마음에도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권태로운 살아감이 눈부신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음악을 고릅니다. 운전할 때도 음악이 있어야 해요. 음악과 함께라면 창밖 풍경이 특별해집니다. 글을 쓸 때도 주제와 장르에 따라 음악을 불러옵니다. 리듬의 향기가 단어를 문장으로 떠오르게 하니까요. 평범한 일상을 빛나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바꾸는 음악의 힘. 그것으로 또 하루의 길을 묵묵히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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