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쌀강아지 선생님
# 꽈릿빛
: 잘 익은 꽈리의 빛깔과 같이 노란빛을 띤 주황빛.
“선생님, 밖에 민우가 서 있어요.”
“민우가?”
방과후학교 1분기 첫 수업 시간, 한참 동안 수업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여자 아이가 말했어요. 나는 결석생 민우가 복도에 있다는 말에 얼른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새하얀 우윳빛 피부에 사슴 같은 눈망울의 소년. 무척이나 내성적으로 보이는 아이라서 지각 후 들어 올 용기가 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다정하게 말을 건넸지요.
“네가 민우니? 1학년이라 반을 잘 몰랐나 보구나. 어서 들어오렴.”
하지만 민우는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어요.
“괜찮아, 민우야. 같이 들어가자.”
그때 지나가던 한 선생님이 다가오더니 나를 복도 한쪽으로 데려간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자신은 민우의 1학년 담임인데 민우는 입학 후 한 달이 넘도록 말하지 않는 아이라고 했어요. 집에서는 말을 잘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어떤 말을 해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거였지요. 게다가 등교해 자리에 앉는데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어요.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마음을 글로 풀어놓는 수업에 말 한마디 하지 않는 1학년이라니…….
선생님이 떠난 후 민우의 손을 살며시 잡고 미소로 거듭 권하자 민우는 조금씩 발을 떼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민우야, 여기 앉으렴. 이건 앞으로 배울 교재와 부모님께 드리는 안내장이야.”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민우는 자리에 앉지 않았고 반 아이들은 모두 나와 민우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민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등을 토닥이며 말했어요.
“와, 우리 민우, 가까이에서 보니까 정말 잘 생겼네. 민우는 여기 앉아서 선생님과 함께 공부 잘할 수 있지?”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반에서도 자리에 앉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데, 이렇게 해도 안 되면 우선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수업부터 할 요량이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민우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것에 힘입어 더욱 밝은 목소리로 민우에게 말했어요.
“역시 우리 민우는 잘할 줄 알았다니까.”
그러자 민우는 볼이 빨개지며 피식 웃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민우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민우가 얼마큼 한글을 깨쳤는지, 집이나 다른 곳에서는 말을 잘하는지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해 볼 수 있으니까요. 민우의 어머니는 어렵게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많이 힘드시게 해서요. 민우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에요. 하지만 친해지면 아주 말도 잘하고 장난도 제법 쳐요. 사실 학교에 보내며 많이 걱정했는데 친구들과도 담임선생님과도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민우가 달라지기를요... 논술 수업에서 글 쓰는 것을 배워 오지 않아도 돼요.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만 있어도 이해해 주세요. 전 그저 민우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만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보내는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민우 한 명만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스무 명가량 되는 아이들 사이에서 민우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어요. 그때 민우 어머니가 말씀하셨지요.
“오늘 민우가 선생님이 자기 보고 잘 생겼다고 했다며 수업도 재미있다고 말했어요. 수업 시간에 못한 것 숙제로 내주셨다며 가르쳐 달라고도 하고요.”
그 말은 내 마음에 작은 빛이 되었어요. 민우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기다림과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느린데 학교에서는 수많은 규칙 속에 몰아가고 있으니 아이가 말을 잃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두 번째 수업 때는 민우가 오기 전에 말을 못 한다며 놀리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곧이어 도착한 민우는 열린 뒷문 사이로 얼굴만 보이며 서 있었어요. 나는 민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우리 민우가 왔네! 많이 보고 싶었는데... 어서 와 앉으렴.”
그러자 민우는 천천히 나를 따라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살포시 건넨 진심에 조금씩 열리던 민우의 마음. 너무나도 뭉클했습니다.
그 후 나는 민우 반 수업 때 더 많은 마음을 기울였어요. 민우의 이름을 자주 부르며 책에 대한 질문도 했고요. 물론 민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는 민우가 생각할 만한 여러 의견을 내놓음으로써 민우에게 ‘예, 아니오.’를 뜻하는 고개 끄덕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민우의 글 솜씨는 또래보다 훨씬 뛰어났어요. 수업 시간에는 가만히 앉아 있지만 집에서는 어찌나 맛깔나게 글을 써 오던지 반 아이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맨날 나를 똥강아지가 아닌 쌀강아지라고 부르십니다. 엄마를 늘 기쁘게 하는 아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엄마가 내가 학교에서 말을 안 해 매일 기도하십니다. 엄마에게 미안합니다."
민우의 글을 읽는데 먹먹해졌습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함도 깨달았고요. 겨우 일주일에 두 번이지만 그 시간만이라도 민우가 제빛을 드러낼 수 있도록, 숨을 쉬게 해 주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러갔어요. 어느 날 민우가 수업이 끝난 후에도 아이들이 모두 나가도록 앉아 있더니 가만히 내게로 다가왔습니다.
“민우야, 왜 그러니? 무슨 일 있니?”
웃으며 바라보았지만 민우는 그렇게 또 한참을 내 곁에 서 있기만 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음 반 아이들이 도착하며 수업 시작 시간이 될 무렵, 민우가 갑자기 내 귀에 대고 살며시 속삭였어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그 순간, 얼마나 울컥했던지 나는 민우를 와락 안았습니다.
“우리 민우, 이렇게 목소리도 예쁜데... 왜 이제야 들려주니? 와, 민우 정말 멋지다, 최고야!”
그 후로도 쌀강아지 민우는 내게 귀엣말을 하며 그 해 늦가을 갑자기 전학 가게 된 날까지, 나에게 결코 작지 않은 꼬마 선생님이 되어 주었습니다.
* [나의 제자 이야기로, 민우는 가명입니다.]
장난감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꽈리 열매로 만든 피리를 불며 놀았다고 합니다. 동화 같은 그 장면을 상상하니 순한 마음이 드네요.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이 달라졌다며 순수함을 잃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성세대 역시 부모세대에게 무수히 들었던, 그 시대의 어른들에 의해 수없이 반복되어 온 말이 아닐까요. 아이는 여전히 아이입니다. 믿어주는 만큼 자라고 반짝이는 무구함은 더없이 예쁘지요.
무해한 아이들의 웃음을 보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움입니다. 꽈리빛 꿈을 꾸는 아이들의 익어감을 바라보는 것도 기쁨이고요. 어쩌면 내가 세상사에서 조금 벗어나 쉬어갈 수 있음도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에너지를 빼앗기는 성향을 지녔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작은 목소리도 또랑또랑해질 만큼 힘이 솟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어른들도 좋아하는 사람이 드문데 아이들은 또 얼마나 힘들까요. 스스로 선택한 책을 신나게 읽으며 자신만의 생각을 품을 수 있고 그것을 글로 담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떻게 하면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나의 숙제입니다.
이토록 부족한 나이건만 몇 년 전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선물까지 받았습니다. 북트레일러 영상을 수정해 왔다고 해서 함께 노트북으로 재생하는데 순간 얼마나 뭉클하던지. 그것은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생일 축하 영상이었습니다. 주말에 만나 촬영하고 편집해 온 영상이 주는 울림. 커다란 종이 가득 사진과 글로 채워 만든 축하 메시지와 선물. 영상을 보는 동안 밖에 숨겨 두고 온 케이크까지 노래와 함께 들고 오던 아이들. 13살 소녀들의 서프라이즈 영상은 볼 때마다 미소와 힘을 줍니다.
수업이 끝난 후 멋쩍게 책 선물을 주던 수줍은 두 소년.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모아 담아 온 귀여운 소녀. 수업 전 꽃집에 들러 사 온 꽃다발을 건네준 13살 아이의 미소. 고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카톡과 손편지의 주인공들까지. 25년의 길 속에서 따스함이 되어 준 나의 꼬마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의 헌사를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