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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나비의 책공간 Mar 02. 2019

[소설] 고리오 영감을 읽고

도서관 프랑스 소설 책장에서 처음 봤다. 책 제목이 고리오 영감이길래 고리오란 유명한 사람 이야기네 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구글에 고리오를 찾아보니 고리오 영감 책만 잔뜩 나왔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 책을 빌렸다.


고리오는 19세기 파리 고시원 같은 빌딩에서 하숙하는 영감이다. 그 영감은 다른 하숙인과 말도 섞지 않고 아침에 차려준 아침 먹고 담배 태우며 신문 보다가 점심에 마차 타고 외출한다. 저녁에 돌아와서 잠을 잔다.


이 고리오 영감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20대 여자 둘이 있다. 이 여자가 올 때마다 고리오는 보석과 연금증서 담뱃갑을 전당포에 맡기며 돈을 건네준다. 다른 하숙자들은 고리오 영감이 여자애 미친 색정광이라 수군대지만 내 딸들이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다른 주인공인 라스치냐크는 지방에서 파리로 올라온 유학생이다. 마치 80년대에 대학에 보내기 위해 소 팔고 밭 팔아서 대학에 보낸 그런 유형이다. 그는 고리오 영감이 사는 하숙집에 같이 사는데. 법학도로 출세하기 위해 밤새워 공부한다. 그렇게 공부하다 고리오 영감의 딸을 보게 되며 영감의 지위가 꽤 높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고리오 영감의 딸과 사귀고 싶다는 맘과 성공하기 위해선 사교계에 진입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한 달에 300프랑 받는 그가 그중 집세와 식비로 150프랑이 나가고 책값과 담뱃값으로 100프랑이 나간다. 공작부인 집에 가려면 말과 마차 마부를 불러야 하는데 못해도 300프랑 이상 든다. 그래도 주인공은 도박장에 100프랑으로 10배로 따서 마차와 마부 말 세트를 마련하고 공작부인 집으로 놀러 간다. 놀러 가서 공작부인과 썸을 타는데 마차 바퀴에 기름칠하고 말 건초와 마부 식비 마련하려면 불가능하다. 다시 10배 도박장에 가지만 빚문서와 차용증만 잔뜩 얻어온다. 


그 시점 고리오 영감은 4층 고시원 독방에서 식사를 빼고 담배를 빼고 신문 구독과 면도를 위해 이발사를 부르지 않는다. 나중에는 가장 꼭대기 층으로 이사하면서까지 두 딸에게 보석과 지폐 다발을 안겨준다. 마지막 장에서 고리오 영감이 숨을 거둘 때 주인공이 옆에서 추도사를 구하지 못한 고리오 영감의 장례를 집행하고 공동묘지에 묻어준다. 그리고 "자 이제 파리와 나와의 싸움이다"며 사교계에 들어갈 다짐을 하는 걸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에서 프랑스 사교계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 불쾌했다. 남편이 있는 여자가 자기보다 어리고 장래에 법관이 될 수 있는 주인공과 연인 행세를 한다. 그걸 남편도 알고 있지만, 그는 이 불륜을 핑계로 이혼하려 한다. 그는 이혼을 통해서 돈과 직위와 권력이 많은 집안의 여자와 재혼하려고 한다.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사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권력과 부와 집안을 얻기 위해 결혼을 하고 사랑은 애인이나 불륜을 통해 획득하는 것을 보며 혐오감을 느꼈다. 나와 결혼과 연애관이 다르다고 혐오감을 느끼는 건 잘못됐지만 그럴 거면 결혼을 왜 하느냐는 질문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서로 싸울 때도 있고 화낼 때도 있고 좋을 때보다 나쁠 때가 더 많겠지만 서로 같은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한다. 주인공과 공작 여인은 현재 지위와 품위 사치를 한 손에 올려두고 다른 한 손에는 지금 하하 호호하는 즐거운 관계를 올려두고 있다. 두 개를 모두 잡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손에 올려두고만 있지 어느 게 더 보기 좋은가 간만 보고 있다. 간 보는 게 나쁜 건 아니다. 무모함과 용기는 한 장 차이라는 말처럼 그 일이 생길 가능성을 고려하고 그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이 필요하다. 다만 확률 계산과 결과 예측이 끝난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선택지를 손 위에 올려두는 건 내 신상에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


나도 팔이 6개 있는 아수라처럼 각 손위에 선택지를 올려두고 어떤 선택지가 윤기가 나는지 살펴보고 만져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선택지가 윤기가 나는지 비교만 할 뿐 고르지 못한다. 어쩌면 선택을 못 한다는 건 선택에 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비슷하다. 선택지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건 중요하지만 조금 더 선택 아니 책임을 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다음으로 고리오 영감의 삶에 대해 생각해봤다. 고리오 영감은 왕년에 잘 나가고 현재도 고시원에서 독방을 쓰면서 식사도 잘하고 담배 태우며 신문도 본다. 마차도 있으며 이발사도 부르는 걸 보면 여유롭게 말년을 보낼 수 있다.

 

그의 딸들은 찾아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진짜 급해서 그런데 돈 좀 줄 수 있느냐고"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생활을 하나씩 때 가면서 딸들에게 돈을 주지만 딸들의 욕망은 끝을 보이지 않는다.

목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면 당장은 괜찮지만, 바닷물의 높은 염분 때문에 더욱더 갈증을 심하게 느낀다. 그렇게 바닷물을 계속 마시다 보면 결국 탈수증으로 죽고 만다. 고리오 영감은 딸들의 허영과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가 왜 딸들에게 잘해주고 싶은지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딸들에게 잘해주려고 한다.

 

고리오 영감과 딸의 관계는 자신과 욕망 관계를 보는듯하다. 욕망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번 시험에만 붙으면 행복하고 좋아질 수 있어, 오늘 아르바이트 대타하면 피자 한 번 더 먹을 수 있어. 그러나 시험에 붙는다고 대타 한 번 더 한다고 지금 행복을 포기하고 얻은 결과가 너무 보잘것없는 돈 몇만 원과 자격증 한 개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지금의 행복과 편안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모든 행복과 편안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사소한 만족과 행복을 느껴야 한다. 오늘 날씨가 덥지도 않고 바람도 잔잔히 불어서 기분이 상큼하고 오늘 오전 근로를 하는데 카드 결제 펑크 안 나서 다행이다. 이런 별일 없는 일상이라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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