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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연 Nov 14. 2022

사람의 천사

  사람의 영혼은 눈가에 모여 있다

  오래전부터 개의 영혼을 관장하는 천사가 일러주었다

  개가 사람을 바라볼 때 영혼은 몸을 나와

  눈가와 눈가가 만나는 자리에서 만나고

  어디든 눈길이 맞닿은 자리마다 눈가가 되고

  사람의 영혼을 관장하는 천사가 아주 오래전에

  천국으로 휴가를 떠나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

  그 대신 사람이 개와 함께 살도록

  한밤중 늑대의 잠에 사람의 꿈을 심어 두었다는 것

  그때부터 사람과 개는 천사의 꿈을 잠시 같이 꿀 수 있게 되었지

  서로가 서로의 말을 배울 수만 있다면

  개가 멍 말하면 사람도 멍 말하고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나 여기 있어 이리로 와 대답하는

  오래전부터 영혼끼리 나눠 오던 대화에 우리는

  잠깐 끼어드는 몸 잠깐 끼어드는 어린아이들

  나이든 개의 귀가 들리지 않아도 눈이 보이지 않아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영혼은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영혼이 먼저 나와 있는 자리에 우리가 따라서 닿는다

  우리는 한데서 같이 자라고도 더 자라는 걸 멈출 수 없는 마음

  사람의 천사가 돌아올 때까지 사람의 얼굴은 늙어 가고

  개의 천사는 개에게서 떠나 살 개들을 위해 얼굴에 영원을 약속하고

  서로가 서로의 눈가가 되어 주는 동안

  서로의 영혼은 함께 멀리까지 산책을 간다

  개의 영혼이 벤치에 앉아 사람의 영혼에게 손을 가르치고

  앉는 법도 엎드리는 법도 기다리는 법도 알려 줄 때

  사람의 영혼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구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았어 팔베개를 해 주지 않았어

  외로워하는 사람이 개와 함께 오래 살도록

  한밤중 사람의 잠에도 사실 개의 천사가 다녀갔다는 것

  그들의 사랑이 지나간 길을 따라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마지막까지 간다

  여기에 네가 잃어버린 사람이 있어

  여기에 네가 잃어버린 개가 있어

  지금은 잠시 긴 휴일을 지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 바꿔서 한번 또 하자 우리 한번 더 해 보자

  영혼은 손보다 꼬리보다 이보다 발톱보다 오래되었으니

  그때 천사는 가까이 다가와 우리의 눈을 살며시 감겨주고 속삭인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다들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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