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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Jun 24. 2020

'에어로너츠' 전율은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

<에어로너츠>를 보고


뜻밖에도 고공 영화 <에어로너츠>의 전율은 배우 펠리시티 존스에게서 온다. 19세기 초 열기구 조종사 어밀리아 렌을 연기한 그의 에너지가 강해서이기도 하고 이 영화가 어드벤처 장르물로서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높아지는 고도는 기록값일 뿐 전율의 강도는 카메라가 존스의 얼굴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소름의 얼굴, 신뢰의 얼굴

누구도 누를 수 없는 기개가 감도는 얼굴이 존스의 무기다. 그 얼굴이 <라이크 크레이지>(2011),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과 같은 멜로드라마에서 그가 단순히 작은 체구를 가진 귀여운 여자 친구, 순순한 부인으로 기능하지 않도록 그를 보호했다.


존스만의 고유한 얼굴은 자신 또는 세상과 분투하는 여성 캐릭터로 채워진 그의 최근 필모그래피에서 더욱더 진해진다. 스크린 속에서 존스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가능하다고 관객에게 계속 말을 건다. 그만의 또렷또렷한 눈빛과 야무진 입매가 그를 죽어가지만 살 것 같은 엄마로(<몬스터 콜>, 2016), 실패 확률이 높은 작전을 성공시킬 것 같은 영웅으로(<스타워즈: 로그 원>, 2016), 지고 있는 재판에서 이길 것 같은 변호사로(<세상을 바꾼 변호인>, 2018) 보이게끔 한다.


이런 얼굴이 주는 짜릿함을 톰 하퍼 감독이 모를 리 없다. 그가 <에어로너츠> 이전에 연출한 영화 <와일드 로즈>(2019)에는 컨트리 가수란 일생의 꿈에 도전하는 싱글 맘이자 전과자인 여성 클럽 가수의 분투하는 얼굴이 인상적으로 담겨 있다. 극 중 주인공 로즈 린 할런 역을 맡은 제시 버클리의 각오를 다지는 입매는 존스의 그것을 쏙 빼닮았다. 감독은 두 배우의 또 다른 얼굴도 사랑한다. 로즈를 고향 밖 먼 도시로, 어밀리아를 하늘로 보낸 그는 돌아와 여유를 찾은 두 여성의 편안한 얼굴에 햇살을 은은히 내려 준다.


출처 = IMDb <The Aeronauts>


하늘에선 맹수 땅에선 광대

<에어로너츠> 후반 어밀리아가 엔벨로프(Envelope, 열기구의 풍선 부분)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포착한 존스는 혹한기의 맹수 같다. 8,000m에 진입해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지자 어밀리아의 머리카락과 눈썹은 하얗게 얼어붙고 두 볼은 추위에 불그뎅뎅해졌지만 눈에선 불이 난다. 동상으로 쓸 수 없게 된 양손 대신 양팔을 그물 같은 로드 테이프(엔벌로프 전체를 감싼 두꺼운 천으로 된 테이프)에 끼워 넣으며 그는 위로 전진한다. 풀샷으로 다시 본 그 장면에는 거대한 설산을 등반하는 산악인 한 명이 있다.


어밀리아 렌은 하늘에서는 열기구 조종사일지는 몰라도 땅에서는 엔터테이너다. 그는 열기구 이륙 5분 전에서야 나타나 구름 관중을 애태울 줄 알고 허여멀겋게 분칠한 얼굴과 요란한 의상은 누가 봐도 남을 즐겁게 하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이어지는 옆 돌기 퍼포먼스와 장황한 연설 역시 계산된 쇼 비즈니스 중 일부다. 열기구에 올라탄 뒤에도 이 프로페셔널은 (낙하산을 멘) 개를 공중에 던지고 폭죽을 왕창 터뜨리는 서프라이즈를 선보임으로써 구경꾼들에게 끝까지 서비스한다. 모두가 그에게 환호를 보내지만 원대한 포부를 이루고자 동승한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에디 레드메인)만이 그를 질색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나의 평판은 비명"에서 온다는 아멜리아의 말을 고지식한 동승자는 이해 못 한 눈치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에어로너츠>


플래시백이란 장애물에 걸리다

<에어로너츠>는 분명 하늘을 날지만 실은 땅에 매여있는 영화다. 영화는 비행 와중에 어밀리아와 제임스가 열기구에 탑승하기 전까지의 사연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무게 중심이 후자 쪽에 있다. 관객은 사방이 탁 트인 하늘, 손가락 사이를 통과하는 구름, 빗소리와 고요함을 만끽할 새 없이 영화에게 떠밀려 인간 세상으로 떨어진다. 덕분에 관객은 전반부터 어밀리아에게 동료였던 남편을 비행 중에 잃은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과 제임스가 과학적으로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학계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독자 비행을 추진했다는 정보를 얻게 되지만 그것이 관객이 당장 원하던 것은 아니다.


잦고 늘어지는 플래시백은 고공 체험의 흐름을 끊고 빨라진 관객의 심장 박동도 원상 복귀시킨다. 극 후반 두 사람이 번갈아 열기구를 급강하시키려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판 스퍼트에 성공하지만 중반까지의 지지부진함이 준 타격이 너무 크다. 고공 영화 <에어로너츠>는 실컷 보여줄 수 있었으나 끝내 설명하려는 영화가 되었다.





[chaeyooe_cinema]

에어로너츠 The Aeronauts

감독 톰 하퍼 Tom Harper


뜻밖에도 이 고공 영화의 전율은 펠리시티 존스의 분투하는 얼굴에서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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