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의 너>를 보고
저러다 볼에 눈물 도랑이 나는 건 아닐까. <소년 시절의 너>의 우등 재수생 첸니엔(주동우)은 눈물이 마를 날 없는 소녀다. 집요한 학교 폭력과 힘겹게 뒷바라지하는 빚쟁이 엄마는 그를 울린다. 이 이상 그에게 눈물 날 일이 있을까 싶지만 첸니엔은 자신이 길에서 구해준 남자 샤오베이(이양첸시)와 가까워지며 흘리는 눈물방울의 개수를 늘린다. 하지만 그만큼 웃는 횟수도 늘어난다. 샤오베이가 멀찍이 뒤에서 때론 멀찍이 옆에서 호위하는 등하굣길과 그와 함께 하는 짧은 밤마실에서 첸니엔은 분명 웃고 있다.
고4의 세계
첸니엔은 재수생이지만 여전히 교복 신세다. 한국과 달리 중국은 공립 고등학교에서 재수생반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며 중국 재수생 절반 이상이 고4 생활을 선택한다고 한다. 베이징 대학 입학만이 유일한 지옥 탈출법이라 믿는 첸니엔 역시 같은 선택을 했다.
<소년 시절의 너>는 대입 시험이 60일 남은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영화 속 학교는 교도소나 다름없고 선생님은 교도관처럼 행동하며 학생은 수감자처럼 생활한다. 사람을 더 많이 수용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 없다는 듯 지어진 구조물 안에서 선생님들의 무신경한 통제 아래 학생들은 우르르 착석하고 중얼중얼 무언가를 왼다.
문제집 오름이 책상마다 솟아오른 교실 풍경이 먼저 압박을 가하고 대규모 전쟁 영화에 쓰일 법한 음악과 열사병과 익사 상태를 체험케 하는 꽉 막힌 사운드가 보는 이의 수명을 단축한다. 이 느낌은 분명 샤프심과 지우개로 전대미문의 서스펜스를 형성한 입시 전쟁 영화 <배드 지니어스>(2017)에서 느꼈었던 그때 그 공포다.
우리의 통속극엔 두 배우가 있지
<소년 시절의 너>는 이제는 시대착오적이라 사용이 줄어든 남녀 통속 멜로를 겁 없이 선택한 영화다. 샤오베이와 첸니엔은 무식한 남자가 자신의 육체적 힘으로 똑똑하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를 목숨 걸고 지켜준다는 가난한 러브 스토리의 남녀 주인공이다. 샤오베이가 첸니엔을 벽에 밀쳐 남성성을 과시하는 뜨악한 장면이나 “너는 세상을 지켜. 나는 너를 지킬게.” 같은 유치한 대사는 이 영화가 분명 과거에서 왔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케케묵은 서사는 젊고 반짝이는 두 주연 배우의 에너지를 받아 일시적으로 소생한다. 배우 주동우는 일단 화면에 잡히면 딴생각을 불가능하게 하는 마스크와 보는 동안 주동우만을 생각하게 하는 흡입력 강한 연기로 영화를 추동한다. 이 영화로 배우 데뷔를 한 인기 아이돌 이양첸시는 첫 작품에 다 보여주겠다는 열정을 누르고 각 신에 걸맞게 힘을 빼고 주며 안정적으로 연기한다.
하나의 얼굴이 되기까지
클로즈업 활용을 즐겨왔던 증국상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클로즈업한 두 배우의 얼굴은 그 자체로 어떠한 사랑의 형태처럼 감각된다. 감독은 두 얼굴이 점차 한 얼굴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은 결국 상대방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라는 걸 납득시킨다.
내게 말을 걸어 온 ‘사랑의 맞대면’ 장면은 세 개다. 첫째는 첫 만남 장면이다. 길거리 린치를 목격하고 신고하는 척하다가 불량배들에게 잡힌 첸니엔은 자신들이 폭행한 남자에게 입을 맞추면 풀어주겠다는 그들의 협박에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 남자와 마주 보게 된다. 이때 첸니엔의 얼굴은 눈물범벅이고 고개가 들쳐진 샤오베이의 얼굴은 피투성이다. 곧 나는 두 사람이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는 둘의 외모가 닮아서가 아니라 둘의 얼굴에서 같은 슬픔과 체념을 읽었기 때문이다. 클로즈업한 그들의 얼굴에는 누군가 와서 쉽게 상처 내고 간 흔적이,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증거가 남아있다. 그렇게 자신을 닮은 얼굴이 가진 운명적 힘에 이끌린 첸니엔과 샤오베이는 사랑할 사이가 된다.
둘째는 삭발 장면이다. 머리카락이 잘리는 가학적인 집단 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첸니엔을 뒤늦게 본 샤오베이는 자책과 분노 뒤 그의 머리를 고루 밀어준다. 그리고 샤오베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첸니엔을 위로한다. 자신도 머리를 밀어 첸니엔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거울 속의 두 사람은 어딘가 닮았다는 인상을 넘어 정말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 이때 함께 찍은 사진이 사랑의 서약을 대신하고 이후 둘은 하나의 인생을 나눠 살기로 결정한다.
마지막은 면회 장면이다. 희생과 합의 끝에 구치소에 갇힌 샤오베이를 첸니엔이 면회하는 장면은 고요하지만 <너는 내 운명>(2005)의 면회 장면만큼이나 애달프고 처절하다. 관객은 두 사람이 점차 하나가 되는 의식을 지켜보게 된다. 면회실 유리창에 비친 서로의 얼굴이 각자의 얼굴에 유령처럼 내려앉고 카메라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두 초상을 바라본다. 영화는 이 응시로 첸니엔과 샤오베이가 서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했음을 선언한다.
[chaeyooe_cinema]
소년 시절의 너 少年的你
감독 증국상 曾国祥
눈물 방울이 사방팔방으로 굴러다녀서 발
디딜 틈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