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의식 #깨달음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인식된다. 50대를 넘어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며 아쉬움 섞인 푸념을 한다. 나이의 숫자만큼 세월의 체감 속도가 빠르게 증가한다. 1년이 마치 3개월처럼 느껴진다며 조금은 과장 섞인 한탄을 하는데, 이는 단지 언어적인 표현을 넘어서 실제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의 뇌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정보 처리 속도가 매우 느리다. 보통 느린 것이 아니라 매우 느리다. 데이터 개념으로 환산할 때 고작 초당 10비트 정도다. 이는 인지 속도에 대한 우리의 가정을 뒤흔들고 인간의 사고와 지각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초당 10 비트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오겠지만, 이는 1940~50년대의 ENIAC이나 초기 마이크로컨트롤러와 유사한 수준이다. 인간의 두뇌가 컴퓨터보다 느릴 수는 있지만, 이 수치는 일반적인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며, 어찌 보면 인간의 자존감에 상처를 낼 정도로 아주 초라한 숫자다.
반면에, 우리의 감각의 처리 속도는 매우 빠르고 또 방대하다. 이 말은 실제로 우리가 수집하는 감각정보는 수십억 비트 수준이지만 우리의 인지능력은 이 입력의 극히 일부만 처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눈만 해도 초당 1,000만 비트의 정보를 전달한다.
이렇게 많은 감각정보는 의식적 사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병목현상을 일으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뇌는 효율성을 높여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나름의 체계를 갖추었다. 이러한 프로세스 덕분에 도전적인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발전해 왔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이원적 의식, 즉 이성의 탄생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개념'이다. 개념은 비슷한 모든 것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에 대해 판단하는데 매우 큰 효율성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라는 개념 하나로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학교에 다니는 사람을 마법처럼 지칭하고 다룰 수 있는 것이다. 모든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을 일일이 가리키며 소통하는 대신, 간단하게 '학생'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슷하다면, 이미 설정된 '개념' 속으로 포함시켜 처리한다. 이것은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과, 그것을 의식적으로 처리하는 생각 프로세스의 능력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그러다가 탐구의 과정에서 오리도 아니고 너구리도 아닌 '오리너구리'를 발견하면 오리인지 너구리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존의 개념에서 벗어나 오리도 아니고 너구리도 아님을 충분히 받아들이면, 그때 '오리너구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다. 비로소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이 말은 실제로 주변의 정보를 포섭하고 이해하고 개념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누락되는 정보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기도 하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 이 과정이 더욱 능수능란해지면, 개념화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이 정보는 의식적으로 처리하거나 활용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
나이가 들 수록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덜 처리하려고 하는 경향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저 빠르게 지나가는 듯 느껴지는 것이고, 이것이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의 체감 속도가 증가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이것이 예전의 생생했던 경험들이 점점 생기를 잃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 익숙한 곳에 갔을 때와 낯선 곳에 갔을 때 경험의 선명도에 차이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생생함을 찾아 산과 들로,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원적 개념 구조의 영향을 자각하고 개념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리가 매일 똑같이 경험하는 세상은 이미 그대로 매우 생생하고 선명하고 활발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 한순간도 새롭지 않은 것이 없으며, 기존에 '당연하다'는 개념 너머에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굳이 멀리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그런 생생함을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고, 이렇게 시간은 원래의 속도를 되찾게 된다. 물론 시간과 공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