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다 보면 불현듯 우편함에 꽂혀있는 지방세 고지서처럼 청첩장이 오기 마련이다. 예전에 나에게 축의나 조의를 했던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잊을만하면 사심 없이 먼저 안부를 전해 고마웠던 후배들이 보낸 청첩장 또한 내게 도착한다. 그럴 때면 평소에 연락하지 않은 이들보다 솔직한 마음으로 조금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 지금까지 내게 연락했던 것이 이것 때문인가 싶은 생각 때문이다.
이런 불온한 생각에 깃든 것은 학창 시절 이후 사이가 멀어져 연락조차 잊혔다 갑자기 연락을 먼저 한 후 1년 전후 정도 지나 청첩장을 내게 선물로 안겨주는 사례를 꽤 많이 접해서이다.
나 역시 결혼을 했기 때문에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안감에 대해 이해한다. 내 쪽 하객이 오지 않을까 봐 두려운 마음 말이다. 나는 원래 친한 친구도 별로 없는 데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 지인 단체사진을 찍을 때 아내 쪽 지인들이 내 쪽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이들의 노력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또한 시간이 지나 그들의 연락이 소원해지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굳이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넓어질 가능성보다 좁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들의 청첩장을 받고 축의금만 송금해 주고 가보질 못했다. 결혼식 초대를 응하지 않은 내가 그들 역시 서운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결혼생활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니 말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먼저 연락하지도 않고 연락을 바랐던 내가 이기적인 것은 사실이다. 마치 구매하지 않은 복권에 이번 주 당첨되길 바라는 것과 같은데도 삿된 마음을 버리지 못한 셈이다. 내 성격상 먼저 연락하며 챙기진 못하지만, 앞으로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하는 사람들을 액면 그대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내 무의식에게 조언해 본다.
대체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이상 준비하는 것이 결혼 과정일 것이다. 다사다난한 준비과정을 마치고 그들의 새로운 인생을 그저 축하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나에게 연락을 했건, 앞으로 연락하지 않건 간에 그 자체를 기뻐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처럼, 내 주변의 일상을 소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