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대체로 40대에 가장 우울감이 크다고 한다. X축을 나이로, 삶의 만족도를 Y축으로 그래프를 그리면 U자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나 40대를 벗어나면 다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마치 죽음의 5단계(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를 거치는 것처럼 자신이 바라던 성공은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박제됨을 '수용'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우울감은 해소되는 것이다.
바로 40대에서부터 시작되는 중년, 전 연령대 중 가장 우울한 이들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영포티'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룰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지만 그나마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찾아 헤매게 된다. 바로 마라톤과 트레일런이다. 이전부터 수영, 등산, 자전거, 배드민턴 등 중년이 선호하는 운동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러닝처럼 유행을 좇아 폭발적으로 증가한 운동은 없었다. 스포츠 업계에 따르면* 국내 러닝 인구가 2024년 기준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며 지난 2017년 500만 명이었던 수준 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본다.
* 대한민국은 지금 '러닝 열풍', 2024.10.7, 시사매거진
러닝을 하는 중년, 혹은 영포티 중 한 명으로서 2030 세대와 달리 러닝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러닝은 다른 운동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 지금은 수요(러닝 인구)가 늘어나고 인플레이션 때문에 참가비가 점진적으로 상승하긴 했다. 하지만 이에 비례해서 마라톤 대회도 늘었기에 여전히 저렴한 비용(치킨 1~2마리 가격)으로 누구나 '마라톤 선수'가 될 수 있다. 게다가 국내 대회는 보스턴 마라톤처럼 기록 제한을 두거나 혹은 연령 제한을 두는 등 참가 제한이 거의 없다.
거기에 장비는 기껏해야 운동화 정도이다. 카본 화가 비싸다지만 명품 신발 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 데다 기술력이 좋아져 요즘에는 내구성도 꽤 뛰어난 편이다. 미친 듯이 마일리지(매달 달리는 km의 합계)를 쌓는 마니아가 아니고선 많이 구매할 필요는 없다. 거기에 더해 러닝 벨트, 러닝 베스트(조끼)를 사야 하지만, 가성비 제품은 워낙 많고, 러닝복 역시 인터넷에서 매우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가민 같은 스마트 시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굳이 하이엔드 제품을 살 필요가 없고 스마트폰으로 대부분 기록을 측정할 수 있어 착용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매우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가정생활을 영위하느라 가처분 소득이 2030세대보다 낮은 가난한 영포티 가장(대체로 유부남)에게 적합한 운동이다. 영포티가 미혼일 경우에는 비용 부담은 사실문제 될 여지는 없으나 2030세대(대체로 미혼 여성)를 러닝 크루를 통해 만나기 위한 니즈가 존재한다.
두 번째 이유는 심리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적 지위가 거의 확정되는 시기라 우울감이 극대화되는 나이인데, 이러한 상실감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러닝을 한다. 작은 성취를 하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자신감이 상승한다. 러닝을 하면 10km, 하프마라톤, 풀 마라톤, 100km 울트라마라톤, 트레일런 등 점점 감각 역치를 높여간다. 혹은 서브 4, 서브 3 등 개인 목표를 세우기도 한다.
영포티의 한계는 분명하다. 장거리 달리기에 주로 활용되는 지근(slow muscle)이 속근(fast muscle)보다 노화가 늦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운동선수 유전자가 없다(참고로 올림픽 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는 10대에 10km를 20분대에 완주했고, 첫 풀 마라톤 대회 기록이 2시간 10분대였다). 아무리 시간을 쪼갠다고 하지만 기량 향상을 위한 최소한의 운동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은 목표 달성에 따른 자신감 고양에는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뇌과학적으로 러닝을 하면 마약인 코카인을 흡입했을 때와 동일한 아드레날린(도파민→노르에피네프린→에피네프린;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아드레날린 생성 촉진을 위해 고통과 쾌감의 혼합물인 러닝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점프 스키, 패러글라이딩, 오토바이 라이딩, 프리 솔로 같은 극한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약하지만 작용 기제는 동일하다.
어쨌든 먹방, 술방만 찍는 영포티보다는 러닝과 마라톤을 하는 영포티를 응원한다. 무엇보다 마약과 달리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은 건전한 취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취미를 그렇게 자랑할 것도 아니다. 굳이 주변에 굳이 권하지도 말고(이미 러닝 인구가 1천만), 그저 꾸준하게 소중한 취미로 남도록 하자. 평생 동안 러닝을 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롱런 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삶을 롤 모델로 삼는 것이 어떨까? 대부분 영포티에게 러닝은 삶의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