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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Feb 13. 2018

경찰개혁의 No.1-발전적 계급 해체를 위하여

: 계급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는 자기 개혁

근속승진 이후...     


경찰공무원의 근속승진기간이 단축될 것 같다. 이변이 없는 한 국회 본회의를 무난히 통과할 거라는 전망이다. 승진을 앞두고 있던 이들은 곧 변화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2년 남아 있던 이들에게 1년의 단축은 불현듯 찾아온 심사나 특진 같을 수 있다. 반면 1년 남아 있던 이들에게는 김샐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그들도 앞으로 남은 몇 번의 근속 기회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의 효과를 보게 된다.     


문제는 형평성 논란이다. 근속승진 단축은 애초 일반 행정공무원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접근되었다. 순경(9급 상당)에서 경감(6급 상당)까지 30년 걸렸던 것을 5년 단축하여 25년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반직보다는 2년이 늦다.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퇴보 중인 것에는 변함없다. 5년 이상 뒷걸음치던 것이 2년으로 다소 좁혀진 것일 뿐이다. 위험한 업무를 하지만 상응한 보상을 받지 못해왔던 것에 동의하면서도 실제 경찰에 대한 인식은 이렇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온몸으로 지키고 있다고 믿는 현장 경관들은 앞으로 한 동안 이런 처지를 개탄해할 것이다. 타 직종과 격차를 벌려 놓은 것은 현장 경찰이 아니다. 경찰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켜 놓았던, 시녀의 역할을 자임했던 자들에게 있다. 그런데도 경찰에 대한 불신과 부당한 처우는 죄다 현장 경찰의 몫이다. 근속승진 단축이란 현장 경찰에게 무심히 가했던 과오를 뉘우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하나의 악령이 파출소와 경찰청을 떠돌고 있다. 계급장이라는 악령이...    


경찰 근속승진이 퇴보가 맞더라도 현실에서는 의미 있다. 단지 몇 년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경찰 조직 전반이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가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은 계급이 주는 폐단이다. 비록 승진이 앞당겨지겠지만 계급에 대한 상승 욕구마저 약화되는 것이 아니.     


경찰에서 계급장이라는 것은 인간 욕망의 투영 그 자체. 현 세상에서 형식적으로 사라진 신분제로써 ‘대감마님’을 흉내 내고 싶은 지배욕의 변형이다. 경찰에게 계급은 인격도 지혜도 능력도 양심도 가능성도 가리키지 않는다. 얼핏 보면 이보다 형평과 평등에 부합하는 것도 없어 보이지만 본질이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계급장은 경찰 조직을 병들게 하는 악령에 불과하다.     


계급장은 승진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0’으로 수축시킨다. 그야말로 승진을 할 수만 있다면 양심도 동료도 가족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려놓게 만든다. 악마의 열매가 아니고서야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유보할 만큼 매력적일 이유가 없다. 그 마력에 흠뻑 취한 인간이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지킨다고 했을 때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경찰을 움직이는 것은 사명이 아니다. 계급이다. 정확히 말하면 계급장이다. 일전에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청에 방문하여 경찰 수뇌부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계급장은 국민이 달아 준 것”이라고 말이다. 이 말의 의미를 경찰 중에 과연 몇 명이 이해했을까.     


좋은’ 경관의 지표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 보호를 위해 그가 갖춰야 할 정신과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 장담컨대 이 사실을 아는 자라면 계급 탑을 선뜻 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승진은 타인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 자신을 던져 온 경관을 칭송하고 더욱 힘써달라는 국민의 당부다. 계급의 무게가 어깨를 짓이길 것은 당연하다. 부담되고 두려운 나머지 피하고 싶은 마음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앞 다투어 차지하려고만 하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 빨리! 더욱 많이! 더욱 높이! 승진 올림픽의 각축장이 된 파출소와 경찰청    


직접 경찰과 간접 경찰, ‘순경 패밀리와 경위 패밀리, 경찰이 살아 숨 쉬는 모든 곳에서는 승진 올림픽의 각축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장의 홍보, 단속, 검거 활동은 수치화되고 높은 점수를 가진 자는 승진의 고지를 점한다.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자들은 직접 경찰의 단속과 검거 그리고 홍보 마일리지가 쌓일수록 승진한다.


더 높은 데스크에서는 무수히 많은 종이를 뿌린다. 미백의 A4용지는 마법처럼 아름다운 도형과 현란한 그래프, 환각을 일으키는 수치들로 장식된다. 다 읽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0월 0일까지 홍보하여ᆞ교육하여ᆞ단속하여 보고할 것’라는 채찍과 ‘포상과 특진에 반영’이란 당근이다. 그렇게 종이를 사용하면 할수록 그들은 승진한다.     


승진만을 위해 매달려 있는 경찰은 계급장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러니 무엇이 명예인지 알 수도 없다. 국민이 달아준다는 인식이 없는데 어떤 명예가 있겠는가. 5년 줄어든 근속승진은 보상적 개념일 뿐 계급의 폐단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이제 전 보다 더 빨리 승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경기장의 열기는 더욱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경찰의 명예, 덕지덕지 붙은 계급의 군살을 떼어내 현장으로 돌려주는 것부터     


계급장은 두렵고 거부하고 싶은 것이 되어야 한다. 승진을 수락하는 것에 용기가 필요해야 한다. 이런 자야말로 명예의 의미를 아는 자다. 그렇다면 관념 속에서만 숨 쉬고 있는 계급의 명예를 어떻게 누릴 수 있단 말인가.


우선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계급의 군살을 빼야 한다. 계급은 경찰의 본질만 빼고 모든 것을 갖는 구조다. 그것은 ‘현장과 멀어질 권리’, ‘목이 뻣뻣해질 권리’와 ‘금전적 혜택’으로 대변된다. 본질과 어울리지 않은 기형적 열매는 까치밥으로 주고 나머지는 현장으로 돌려야 한다. 현장에서 오래 근무할수록 높은 수준의 금전적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오랜 경력과 높은 전문성, 국민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수록 존중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아가 ‘현장치안 전문관으로서 국민이 직접 ‘명예장을 수여하고, 장기근속 퇴직, 시민들에게 울림을 준 경찰들은 지역관서 및 주민센터나 공공이용시설 등에 이름을 등재하도록 하여 기념하게 하자. 상상해보자 시민대표인 어르신ᆞ년ᆞ생ᆞ어린이가 모인 자리에서 그들로부터 명예장을 받는 경관의 모습을. 말뿐이 아니라 실로 주권자와 경찰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그림 속에서 국민을 감히 실적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어림없다. 승진 올림픽 따위는 가당치도 않는다.        


계급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는 자기 개혁이야말로 오리지널 경찰 개혁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은 저서 ‘자유에서의 도피’에서 히틀러와 나치즘의 권위를 분석했다. 그가 분석한 히틀러의 권위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동시적 형태라고 한다. 즉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측면과 억압과 지배되기를 바라는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흔히 권위적 인물이란 고압적인 데다 말도 안 통하는 팀·소·대·계·과·서·청장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프롬에 따르면 그들의 태도를 인정하고 따르는 이들 또한 권위적이다. 힘없는 처지에 있다고 생각한 자도 더 약한 자를 통제하려 드는, 그래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동시적으로 드러나므로 명백히 권위적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직접간접 경찰, 순경경위 패밀리를 막론하고 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 높은 계급을 성토하고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계급과 승진의 문제에서만큼은 무척이나 이해타산적이다. 고위직을 탓하면서도 고위직이 되고 싶은 욕구는 통제받는 위치에서 통제하고 싶은 위치가 되려 하는 사디즘 마조히즘의 전형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경찰 내외부적으로 들끓는 개혁의 방점은 모호하다. 계급의 폐단을 말하면서도 승진을 하고 싶은 욕망이 뒤엉켜있다.     


계급의 폐단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무시로 귀결된다. 그것은 실적주의와 계급 지상주의, 대감마님 놀이와 다양한 갑질의 형태로 드러난다. 이 짝꿍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감마님 놀이를 해야 더 높은 실적을 쌓을 수 있다. 계급 지상주의 덕분에 대감마님 놀이도 가능하다. 이마에 ‘국민의 자유와 안전 지킴이’를 써 붙이고 다니면서도 너 나할 것이 계급 탑을 쌓고 있다. 그 덕분인지 경찰의 중심은 늘 흔들리는 갈대다.     


계급에 기대지 않는 ‘경찰 개인’이 있어야 ‘경찰 조직’도 있다. 그건 뒤집어도 마찬가지다. 그때야말로 폼 나는 ‘조건’과 달달한 ‘이익’을 저만치 밀어내고 국민을 위한 경찰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계급의 속박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런 자에게 어설픈 대감마님 놀이도 무분별한 실적 지상주의도 용납될 수 없다. 경찰 개혁의 No.1은 발전적 계급 해체다.    



직접 경찰은 파출소, 교통, 형사 등 경직법을 1차적으로 직접 실현하는 경찰이다. 간접 경찰은 경찰청, 지방청, 경찰서에서 직접 경찰을 지원하는 전 부서의 통칭이다.

 순경 패밀리는 경사 이하 입직자, 경위 패밀리는 경위 이상 입직자의 통칭이다. 유사 개념으로 일본 경찰은 논 캐리어와 캐리어라는 제도가 있다.

 직접 경찰은 그 역할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으로 폄하와 홀대를 받아왔다. 현장치안전문가는 호칭은 직접 경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 세우는 작업의 일환이다.  

명예장은 계급장을 대신하는 형태로서 직접 경찰로 일정기간 근무했을 경우, 경력, 노고, 전문성을   칭찬함과 동시에 국민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경찰이 된다는 의미다.       


[단독] 이철성 청장 표 ‘경찰 내부 갑질 없애기’ 시동 (한국일보, 16. 10. 8)

[단독] 경찰 근속 승진 기간 총 5년 단축한다 (머니투데이, 17. 8. 23)

[단독] 경찰內 갑질, '무관용 원칙'…"이쑤시개 금지" (머니투데이, 17. 8. 28)

경찰청장 "근속승진기간 줄여도 일반직보다 6급 비중↓" (머니투데이, 17.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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