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뚱이네 Jul 13. 2024

시애틀에서 챙겨온 것

기념품의 세계

  어느 여행지에서든 구하기 쉽고 가져오기도 쉬우며 가격도 저렴한 기념품이 있다. 바로 마그넷, 이른바 ‘냉장고 자석’이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들 속에서 독특하고 예쁜 마그넷을 찾아내는 것은 큰 수확이다. 나는 쇼핑을 즐기지 않지만, 어딜 가든 기념품 가게에서 마그넷은 한 번씩 둘러본다. ‘이거다!’ 싶은 마그넷을 발견하면 희열을 느낀다.     




  신혼여행지였던 밴쿠버와 시애틀에서는 도시별로 한 개씩, 두 개의 마그넷을 사 왔다. 밴쿠버에는 단풍잎의 나라답게 단풍나무를 컨셉으로 한 마그넷이 많았다. 그중 왠지 모르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의 마그넷이 눈에 띄어 바로 집어 왔다.

  시애틀에서는 후보가 더 많았는데, 의외의 곳에서 마음에 쏙 드는 것을 발견했다. 쇼핑과는 관련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공립 도서관에서 말이다!

  멋진 건축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이 도시에서 가장 멋진 건물이라는 시애틀 공립 도서관을 여행 코스에 추가해 두었었다. 정말 멋진 건물이긴 했다. 만 개 이상의 유리로 외벽을 만들었다는 이 건물은,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한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는 멀리서부터 “오~” 라는 짧은 감탄사 외에는 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의외의 발견은 역시! 기념품 매장이었다. 신혼여행이란 것이 하도 까마득한 옛날이기에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립 도서관을 닮은 철제 마그넷은 아직 우리집 냉장고에 붙어 있다. 이 마그넷을 볼 때마다 시애틀에서 겪은 좋았던 일들, 행복했던 감정들이 재생된다.     


  우리는 아주 무더운 한여름에 결혼했다. 먼 길 와주시는 하객분들께는 죄송한 일이었지만, 나에게 결혼하기 가장 편한 날짜가 그때였다. 사실 아무리 대충 하더라도 결혼식 준비 자체가 어마어마한 계획과 선택의 연속이기에, 남편에게 “그냥 물 떠 놓고 기도하고 끝낼까?”라고 물었더니 나더러 재혼이냐고 대답했던 일이 생각난다. 하하.

  어쨌든 더운 여름날 식을 올리고 여행을 떠난 덕분에 밴쿠버와 시애틀의 청명한 날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시애틀의 7월 평균 기온은 24℃라고 한다. 공립 도서관의 마그넷을 볼 때마다 기분 좋게 불어오던 그때의 선선한 바람이 생각난다.     




  우리집에 있는 기념품 중에는 뚱이에게 슬펐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도 있다. 마그넷보다 열 배쯤 비쌌던 ‘오르골’이다.

  북해도에 여행을 가게 되면 오타루라는 근교 도시를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는 유서 깊은 오르골 가게가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건물 내에 있는 오르골 개수만 해도 만여 개가 넘는다고 하니, 역사와 규모가 어마어마한 곳이다.

  작년 여름에 첫 해외여행으로 떠났던 북해도에서 뚱이는 예쁜 오르골 하나를 샀다. 나와 남편 둘이었다면 사지 않았을 법한 물건이었으나, 뚱이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 고르라고 쿨하게 말해주었다. 아니, 사실 과정은 별로 쿨하지 않았다.

  뚱이가 꽂힌 오르골은 무려 ‘유리’로 된 오르골이었다. 다섯 살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짐작할 것이다. 아이에게 연약하디 연약한 유리 장난감을 들려주는 것이 어떤 일인지 말이다. 여러 옵션을 제시하며 뚱이를 설득했지만, 뚱이의 마음은 이미 유리로 된 발레리나 오르골에 빼앗긴 뒤였다. 서울이었다면 안 사줬을 물건을, 오타루이기에 사주었다.

이거 말고는 다 마음에 안 든다구

  그리고 흔한 영화의 클리셰처럼 그 오르골은 깨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에 말이다. 집에 돌아온 저녁, 나는 캐리어를 정리하고 남편은 라면을 끓이는 중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오르골을 보고 또 보던 뚱이는, 발레리나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친구는 어찌나 연약하던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어디에 올려두지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한 채, 그 발레리나는 침대 옆 협탁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    

 

  싱가포르에 가면 뚱이에게 기념품을 또 사줄 것이다. 이번에는 좀 튼튼한 친구를 데려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뚱이에게 오래도록 여행지의 행복을 다시 떠오르게 해 줄 친구로 말이다.

버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친구


이전 02화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