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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이네 Jul 27. 2024

다다익선

비행기를 탈 때 필요한것은

  코로나 이전, 뚱이가 10개월쯤 되었을 무렵 제주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기였으니 아기띠에, 기저귀에 짐이 어마어마한 여행이었다. 2박 3일이었기에 망정이지 좀 더 긴 일정이었다면 가방을 싸다가 지쳤을 것이다.

  기저귀만 봐도 그렇다. 나는 국민 브랜드라 불리는 국산 기저귀를 썼으므로 분명 제주도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저귀란 온라인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할 때 몇 팩씩 사둬야 하는 법! 개당 가격을 계산하며 캐리어에 바리바리 챙겨갔다. 그러니 짐이 많을 수밖에.


  문제는 비행기 기내였다. 낮잠 시간과 겹치게끔 비행기를 예약했지만, 뚱이가 그 시간에 딱 맞춰 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안 잔다면 대체 뭘 해줘야 할지, 아기와 앞뒤로 비행기를 타게 되면 다들 싫어한다던데, 괜히 민폐가 되면 어떡하지 싶은 마음에 걱정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뚱이는 제주도를 오가는 비행기에서 왕복 두 번 다 아주 잘 잤다. 구름을 배경으로 잠시 인증 사진을 남겨주시고는, 푹 자고 착륙할 때쯤 깼다. 뚱이가 이렇게 한 살이 맡은 역할을 200% 수행하는 동안, 사실 사고는 서른한 살인 내가 쳤다.

  아이와 비행기를 탄 후기를 검색하면 이륙할 때 귀가 아프다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 미리 준비를 해두라는 조언이 많다. 조금 더 큰 어린이라면 사탕처럼 빨아 먹는 간식, 주스 등 선택지가 많다. 내가 준비했던 게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뚱이의 월령을 생각했을 때 빨대 컵에 든 보리차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 빨대 밖으로 액체가 콸콸 역류하고 만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기내 바닥은 주로 카펫 같은 소재로 되어 있다. 거기로 뭔가가 줄줄 새고 있는 것을 발견했으니 나는 당황해서 바보가 되었고, 나보다 만 배쯤 침착한 남편이 물티슈를 얼른 뽑아서 상황을 정리했다.

  많은 사람이 보는 SNS는 하지 않지만, 하게 된다면 꼭 써서 알리고 싶다. 빨대를 꽂는 액체를 들고 비행기에 탈 때는 기압에 의해 분수 쇼를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활주로를 감상하는 진지하고 동그란 뒷태


 



  그 후로 뚱이와 비행기를 탄 일은 몇 번 없지만, 그때마다 나름 세심하게 준비하고자 했다. 가장 최근이었던 작년에는 낮잠을 안 자는 나이였고 낮 시간대의 비행기였으므로 놀거리는 필수였다. 스티커, 색칠, 색종이 등 아이템이 많았는데 역시 최고는 간식과 만화였다. 뚱이가 기내에서 오프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남편이 태블릿에 담아 간 만화 덕분에 나 역시 조용하고 편안한 비행을 했다.

  뚱이는 여행이 많이 고단했는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그대로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초승달이 뜬 풍경이 하늘빛에서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보는 동안, 나는 괜히 관심도 없는 면세품 정보가 적힌 책자를 한 번씩 뒤적거렸다. 북해도 여행을 기다리며 수없이 많은 것을 준비했지만, 정작 여행을 떠날 때 내가 좋아했던 것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탓이었다.

  기내에서 책 읽는 시간, 음악을 들으며 창밖 풍경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 내가 그런 시간을 좋아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집에 두고 온 책들과 이어폰이 그제야 생각났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인천까지는 두세 시간이니 가벼운 에세이나 얇은 소설을 한 권 읽으면 딱 좋을 텐데. 있을 리가 없는 읽을거리들을 찾아 좌석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아쉬웠고, 심심했고, 지루했다.


  나는 ‘비행기를 잘 타는 사람’이다. 좁디좁은 이코노미에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고, 기내식도 맛있게 잘 먹는다. 읽을 책 몇 권과 이어폰이 있으면 좌석 모니터 없이도 혼자 얼마든지 몇 시간 잘 놀 수 있다.

  기내에서 읽었던 책은 여행지의 추억과 함께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시애틀에서 돌아올 때는 로런 그로프의 소설 ‘운명과 분노’를 너무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달콤한 신혼여행에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소설이었다. 몇 년 뒤,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다시 집어 들어 읽었는데 역시나 재밌었다.

달콤보단 살벌에 가깝습니다


  싱가포르는 인천에서 6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아이와 비행기를 탈 때는 무엇이 되었든 많이 준비하면 좋은 듯하다. 조용히 시간을 때울만한 것은 무엇이든 좋다. 뚱이는 요즘 종이 인형 옷 갈아입히기와 숨은그림찾기를 좋아한다. 만화는 말할 것도 없이 필수다. 먹고, 놀고, 보고, 다시 먹고, 놀고 반복하다 보면 생각보다 금방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는 나를 위한 준비도 할 것이다. 얼마 전, 서점에서 손바닥만 한 포켓북을 충동 구매했다. 여행은 반년이나 남았건만, 비행기에서 읽으면 재밌겠는데 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샀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이다. 벌써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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