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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이네 Jul 20. 2024

아빠는 못 가는 나라

맛집의 기준

  며칠 전 저녁, 뚱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어떤 나라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팔지 않는다고 쓰여 있길래 그대로 읽어주었다. 잠자코 듣던 뚱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아빠는 못 가겠네?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이 말을 얼른 전해주고 싶어서 그날 남편이 퇴근하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여섯 살 뚱이가 파악한 아빠의 취향은 삼겹살, 소주, 매운 음식,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뚱이에게 돼지고기도 못 먹고 술도 살 수 없는 나라는 아빠가 갈 수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아빠는 갈 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남편은 한동안 나의 지인들이나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여행 후기를 남기곤 했다. 00이가 빵만 먹여서 너무 배고팠어요, 라고.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한 케이스가 아니다. 2년을 한 주도 빠짐없이 만났고, 결혼 전 몇 달은 거의 매일 만났다.

  만날 때마다 뭘 먹었으니 이 사람의 취향은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은 찌개, 삼겹살, 어묵탕 등 한식과 매운 국물 요리.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은 없음. 바로 이게 문제였다.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은 없다는 것!

  내 남편은 어디서든 음식을 먹고 불평하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편이다. 기호가 확실한 사람이고 미각이 둔하지 않지만, 그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식탁 맞은편에서 같이 밥을 먹는 나를 배려하는 행동이기도 하다는 것을 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여행을 준비하는 내가 좀 더 세심하게 메뉴를 선택했어야 하는데, ‘결혼 준비 끝, 신혼여행 시작!’에 너무 들뜬 나머지 눈치가 없었다. 나는 신혼여행에서 갈 식당으로 100% 양식에 가까운 메뉴가 있는 곳들을 찜해놓았다. 맛집 소개와 구글 평점만을 참고한 단순하고 느끼한 결론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혼여행에서 쿠바식 샌드위치, 파스타와 라자냐, 아보카도가 올라간 토스트, 해산물 구이 등을 먹었다. 특히 여행의 첫 끼니나 다름없었던 아침 식사 메뉴가 바로 쿠바식 샌드위치였는데, 찾아보니 지금도 영업 중인 작은 노포다.

  Paseo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식당의 주력 메뉴는 각종 재료를 넣어 구운 빵이다. 한식파인 내 남편은 Paseo를 시작으로 이 빵집 저 빵집 많이도 끌려다녔다. 일주일 여정의 중간쯤, 한 끼라도 한식당에서 칼칼한 김치찌개를 먹었다면 다음 빵도 맛있게 먹어주었을 사람인데, 내가 너무 배려가 없었다. 내가 하는 일에는, 특히 여행과 관련해서는 좀처럼 불만을 얘기하지 않고 맞춰주는 사람인데, 아직도 신혼여행에서 빵만 먹었다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쿠바는 안 가봤지만 이게 쿠바식 샌드위치라네요

  사람은 지나간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법!

  이번 싱가포르 여행에서는 셋이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유명한 맛집인 것보다는 어떤 메뉴를 파는 집인지 잘 살펴보고 골라 놓으려고 한다. 무슨 메뉴든 남편은 늘 그렇듯 티 안 내고 맛있게 먹는 척해주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같이 맛있게 먹고, 다음에 또 먹고 싶은 메뉴, 그래서 나이가 더 들어 같은 도시에 다시 왔을 때 추억할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다.    




  여행지 식당과 메뉴 선정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뚱이도 사실 한식파에 가깝다. 빵은 간식으로나 조금 먹지, 막상 아침밥으로 대령하면 반응이 영 별로다. 뚱이가 좋아하는 아침 메뉴는 국밥, 김자반에 비빈 밥, 주먹밥, 그런 것들이다. 전형적인 대한민국 어린이다. 면을 너무 사랑하는 아이지만 내가 아침으로는 잘 주지 않으므로, 여행을 가면 아침부터 실컷 먹으려고 할 수도 있다.

  나로 말하자면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먹어보고 싶은 유형이다. 안 먹어본 음식의 맛이 궁금하다. 때로는 한 끼 식사가 실패작으로 끝날 때도 있지만, 이 또한 기억에 남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뚱이와 남편을 데리고 이런 모험을 할 수는 없다. 나는 두 사람이 맛있게 먹을 것 같은 음식을 위주로 식당을 찾아보는 중이다.

  현재까지 “이건 먹어봐야 해!”라고 도장을 쾅 박아놓은 메뉴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칠리크랩과 바쿠테라는 생소한 이름의 음식이다. 특히 바쿠테는 비주얼부터 우리나라의 갈비탕을 닮은 모습으로, 국물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았다는 평이 많았다. 뚱이를 키우며 곰탕, 설렁탕 같은 음식들을 하도 먹으러 다녀서 좀 지겨운 감이 없지 않으나, 맛이 보장될 것 같아서 골라 놓았다.

출처 송파바쿠테 홈페이지

  아, 컵라면도 가져가야 하나?

  나는 여행을 가면서 한 번도 라면을 챙겨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밤에 먹는 컵라면 하나에 기분이 좋아지는 두 부녀를 생각하면, 이번에는 서너 개 미리 가져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싱가포르 편의점에서 처음 보는 것으로 하나 고를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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