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버튼
프로이트는 교육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수많은 연구와 저서를 남기고 후대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외에도 기타등등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대충 급하게 삼켜버린 지식들은 소화가 되지 않고 다 사라져버렸다. 수많은 논문과 책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이없게도 공부하는 현역 때가 아닌, 엄마가 되고 난 후 가끔 프로이트를 떠올리게 된다.
프로이트의 아동 발달 단계에 의하면 아이들은 구강기부터 여러 단계를 겪으며 성장한다. 그중 두 번째 단계인 항문기에는 배변 훈련을 시작함과 동시에 배설물을 보유하거나 배출하는 데에서 쾌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나이대의 유아들에게 예외 없이 먹히는 유머 코드는 바로 ‘똥’이다. 물론 뚱이도 마찬가지다.
똥뿐 아니라 똥의 친구들, 사촌들도 모두 뚱이에게 웃음의 대상이다. 똥, 설사똥, 방귀, 쉬야, 정말 무궁무진하다. 신나게 모래 놀이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뚱이의 뒷모습을 보면 엉덩이 부분이 갈색이다 못해 회색으로 바래지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엉덩이를 툭툭 털어주며 “뚱! 엉덩이가 이게 뭐야, 똥쌌어?”라고 한 마디 해주면 여지없이 깔깔 웃는다.
한때 뚱이가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동화 역시 똥의 친구가 주인공이었다. 바로 전래동화 ‘방귀 시합’이다. 삽화가 너무 재밌게 그려진 책이기도 하지만, 내용 자체도 재밌다. 고구마 고을 방귀쟁이와 보리 고을 방귀쟁이가 방귀로 나루터의 배를 움직이고, 절구통을 달을 향해 날려버린다니!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랑받는 이야기들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서점 사장님께 샘플로 받은 방귀 시합을 뚱이가 어찌나 재밌게 읽는지, 결국 그 책이 포함된 전집을 통째로 샀다.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 중에는 똥이나 방귀를 소재로 한 책이 참 많다. 똥이 주인공인 책, 똥 싸는 아이가 주인공인 책, 방귀로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는 책(주로 뭘 날려버린다.) 등 봐도 봐도 끝이 없다. 그러다가도 몇 해만 지나면 똥 얘기를 듣고 웃는 친구를 유치하게 여기는 어린이들도 생긴다. 너희도 다 그럴 때가 있었단다!
뚱이에게 만화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이 눈물 버튼이었다면, 웃음 버튼은 더 다양하다. 주제나 내용과 상관없이 그냥 뚱이를 웃기고 싶다면 된소리를 이용하면 된다. 최근에 뚱이를 웃기는 데 성공했던 단어로는 ‘호떡, 얼렁뚱땅, 뚱딴지, 꾀죄죄’ 등이 있다. 사실 왜 웃긴 것인지는 잘 모른다. 엄마 6년 차의 경험을 토대로, 통계적으로 우리 딸은 된소리로 된 단어에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나는 평소에 재밌는 사람도 아니고, 순발력 있게 재치 있는 말을 생각해 내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도 뚱이를 보고 있으면 개그 욕심이 자꾸 생긴다. 뚱이가 못 들어 본 낱말을 조합해서 새로운 개그를 자꾸 시도한다. 성공률이 높진 않지만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홈런을 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반바지의 한쪽 구멍에 두 다리를 모두 집어넣고는 누워서 파닥거리는 뚱이를 보고 ‘우리 딸 미꾸라지 호떡처럼 잘 뒤집네!’라는 말이 대성공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왜 웃긴 것인지는 잘 모른다.
뚱이의 개그 코드는 진화한다. 아래의 그림은 뚱이 나름의 웹툰이다. 그림은 나랑 협업으로 완성했으나 스토리는 뚱이의 창작물이다.
이 작품은 동화 라푼젤을 패러디한 코믹 액션극이다.
줄거리는 이렇게 진행된다. ‘라푼젤’은 높은 탑에 갇혀 사는 머리가 긴 공주다. (그림을 잘 보면 긴 머리의 우는 여자를 그렸다가 지운 자국이 있다.) 라푼젤을 구하려고 왕자가 용감하게 출동하여 마녀와 정면 대결을 한다. 무려 태권도로! 그러나 마녀는 검은 띠라서 왕자는 순식간에 쭈구리(?)가 된다.
라푼젤은 잠시 낙담하고 머리카락과 온갖 것을 연결하여 성 아래로 내리지만, 마녀가 대왕 가위로 몽땅 잘라버린다. 그때 태권도 6단의 관장님이 나타나셔서 마녀를 제압하고, 라푼젤은 계단으로 내려오게 해주신다. 이야기는 왕자가 라푼젤 대신 탑에 갇히며 갑자기 끝난다.
어른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 이야기를 만들며 뚱이와 많이 웃었다. 카페에서 주문한 빵이 다 식어 가도록 둘이 낄낄댔다. 얻어맞고 탑으로 쫓겨난 왕자는 불쌍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작가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을.
언젠가는 뚱이와 배를 깔고 만화 카페에서 만화책을 쌓아놓고 실컷 읽고 싶다. 그때는 너와 나의 유머 코드가 조금은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