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뚱이네 Aug 24. 2024

북해도와 홋카이도와 삿포로

뚱이의 첫 여행

  손톱 같은 초승달이 선명하게 떠 있던 작년 여름을 떠올려본다.

  비행기 창밖에는 예쁜 달이 떠올라 있고, 뚱이는 내 무릎에 머리를 대고 곤히 자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일상적인 대화를 조용히 나누었다. 이번 여행에서 쓴 카드값이나 와이파이 기기 반납 장소에 대해 얘기했던 일, 남편이 따뜻하고 익숙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을 권했던 일이 생각 난다. 우리가 3박 4일의 북해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의 어떤 순간이다.     

   



  뚱이에게 첫 해외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뚱이는 4일이나 머물렀던 그곳이 북해도였다는 것은 알지만 홋카이도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은 모른다. 또 삿포로라는 이름의 도시는 처음 듣지만, 그곳에서 매일 먹었던 주황색 멜론의 맛은 기억한다. 북해도면 어떻고 삿포로면 어떤가 싶다. 여행을 다녀오고 1년이 지난 지금, 그곳이 뚱이에게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뚱이에게 북해도는 이름은 정확히 모르는 곳이지만 매일 밤 라면을 먹어도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 곳, 대관람차를 타고 고소공포증 때문에 덜덜 떠는 아빠에게 용기를 주었던 곳이다. 인사이드아웃을 본 이후로는 ‘기쁨이가 버튼을 팡팡팡 눌렀던 곳’이라는 표현이 추가되었다.


  나는 북해도 여행을 생각하면, 그즈음 뚱이와 재밌게 읽었던 존 버닝햄의 동화 ‘구름 나라’가 떠오른다. 동화 속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로 구름 나라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기회를 얻었지만 곧 가족이 그리워졌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아이는 행복이 가득한 구름 나라를 떠난 최초의 어린이가 되었더랬다.

  출국을 앞둔 며칠 동안 뚱이는 설레는 마음을 순간순간 표현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의 여행 계획을 브리핑하는 바람에 뚱이 친구의 할머니까지도 우리의 목적지와 여행 기간에 대해 알게 되셨다. 또한 자기가 여행 가있는 동안 어린이집의 삼총사 친구들이 심심하겠다며 진지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마트에서는 엄마가 잘 사주지 않는 주스를 사달라고 하며 비행기에서 먹어야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인상깊게 남는 순간이 바로 자기 전에 ‘구름 나라’를 읽던 때다. 이 책에는 아이들의 개그 코드를 겨냥한 우스운 주문이 나오는데, 이는 구름 나라로 통하는 마법의 문장이다. 뚱이는 이 주문을 외우며 깔깔거리고는, 다시 엄숙한 표정으로 자기는 절대 비행기에서 구름으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선언하곤 했다. 북해도 여행을 앞둔 그때의 뚱이를 떠올리면, 구름 나라 주문을 누가 더 웃기게 외우나 엄마와 대결하던 귀여운 꼬마가 생각난다.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 중 우리 집 다섯 살의 첫 여행지로 선정된 곳, 북해도는 우리 부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뚱이를 낳기 전 마지막으로 둘이 여행을 다녀온 곳이었으며, 사진이 취미인-아니 취미였던 내 남편에게는 눈 쌓인 풍경을 마지막으로 찍었던 곳이 되었다. 그해 북해도에 다녀온 이후로 남편이 겨울에 찍은 사진은, 배경만 겨울일 뿐 모두 뚱이가 등장한다. 뚱이가 털모자를 쓰고 눈에 손도장을 찍고, 뚱이가 눈오리를 만들고 등등.

  그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또 있다. 남편은 아기를 데리고 나갈 때 갖고 다니기 무거운 커다란 카메라나, 사용하기 불편하지만 소중했던 필름 카메라와도 작별했다. 둘이 다닐 때는 거뜬히 들고 다녔던 남편의 삼각대는 집 어딘가에 고이 모셔진 채 여행 짐 목록 예비 후보에도 들지 못했으며, 남편은 삼각대 대신 시도 때도 없이 뚱이를 업고 다녔다.

돌아가며 업어주는 것이 바로 의리

  사진을 찍는 남편의 시선만큼이나 여행의 풍경과 우리의 여정도 많은 것이 달랐다. 도시 곳곳에 쌓여있던 눈은 사라지고, 도심 속 공원의 푸른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높은 곳을 싫어하는 남편은 북해도 여행에서 뚱이가 그토록 원하던 대관람차에 기꺼이 올라탔다.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이 없던 나는 지하철에서 소곤소곤 수다 떠는 두 사람의 모습을 몰래 찍곤 했다. 조용히 눈 내리는 시간을 즐기던 우리 부부도 다시 찾은 북해도에서는 열정적인 선생님이 되어, 해줄 이야기가 많았다. 삿포로 시내의 자동차 신호등은 눈이 많이 내리면 부러질 수도 있어서 세로로 서 있대, 신기하지? 그리고 운전석이 반대쪽에 있는 이유는 어쩌구 저쩌구…     

  



  뚱이가 북해도와 홋카이도와 삿포로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것이 내가 3박 4일의 여행을 통해 얻은 교훈이었다.

  북해도 여행에서 나는 끊임없이 내가 준비한 무언가를 뚱이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뚱이를 보며, 여행의 즐거움은 그저 이 순간을 즐기는 데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사랑하는 뚱이의 눈이 여행 중에 가장 빛나던 순간은 대단한 경험이나 비싼 맛집이 아닌, 오백엔 짜리 뽑기를 할 때였다. 여행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인 것 같다. 기쁨이가 버튼을 누르는 사소한 순간들을 그러모아서 행복한 기억으로 저장해둘 수 있다는 것!

  싱가포르 여행에서 뚱이의 기쁨이는 버튼을 많이 눌러줄까? 벌써 기대가 된다.

얼마를 쓰는 거니 똥강아지야


이전 08화 내가 주문해 줄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