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꾸는 기록 D+8~D+30
2017년 4월 17일에 처음 옥상 위에 텃밭을 만들고 30일이 지났다.
키우는 즐거움과 정신적인 안정을 위했고, 또 걱정 없는 식 재료를 내 손으로 수확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베란다 텃밭이 아닌, 옥상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건 옥탑 살이의 최대 장점으로까지 느껴지는 요즘이다.
텃밭을 만들어 흙을 채우고, 씨앗을 심고 며칠 뒤 싹이 나는 것에 감탄하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가슴 속에 설렘과 꿈틀거리는 느낌이 채워졌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것일지라도 처음 텃밭을 가꾸는 내게는 마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도전이기에 그러했다.
D+15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들의 연속으로 지나갔다.
옥탑에서 생활하면서 그 동안은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없어 탁 트인 전망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로 인해 강한 햇볕이 텃밭에 아무런 투과 없이 내려와 아직 강하지 못한 새싹을 쓰러뜨리는 걸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모든 존재에는 빛과 어둠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은 매일 하루에 한 번씩 텃밭에 충분한 물을 줬다. 강렬한 햇볕에 기절한듯 쓰러진 어린 양상추는 응급처치로 물을 충분히 준 뒤 직사광선을 받지 않도록 그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고맙게도, 어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D+21
2017년 5월 8일. 텃밭에 찾아 온 새 식구.
어버이날에 맞춰 전날 부모님이 살고 계신 경기도 화성으로 향했다. 골수암으로 투병 중인 엄마가 맑은 공기를 쐬며 여유롭게 지내고 싶다고 지난 달 말에 외가로 거처를 옮기고 나니 찾아가는 게 꽤나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
운전 면허증이 있으나 자동차가 없고, 정작 운전 면허가 있으면서 운전을 하지 않았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한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또 버스로 환승하여 그 지역의 읍내에 내리면 시간에 맞추어 아버지가 자동차로 마중을 나와야 한다. 가족 구성원 중의 한 명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타고 외가댁에 들를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병원 진료가 있는 엄마 덕분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서울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엄마는 서울까지 편하게 올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가져가라며 양손 가득 김치와 밑반찬을 챙겨줬다. 거기에 집 앞 텃밭에 옮겨 심고 남은 가지 모종 두 주를 흙과 함께 챙기며 "이것만 잘 키워도 너 혼자 충분히 먹을 거야."라고 말했다. 씨앗을 심고 싹이 나고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식물의 변화에 매일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자랑하듯 이야기를 늘어 놓는 내가 엄마는 꽤나 재미난 모양이다.
나는 엄마에게 받은 가지 모종 두 주를 양상추와 적겨자, 케일이 심어진 한 쪽 귀퉁이에 옮겨 심었다. 이렇게 새 식구가 생겼다.
토마토 열매
씨앗을 구매하며 유일하게 모종으로 주문했던 방울 토마토가 보름 간은 내게 슬쩍 걱정거리였다.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데 정작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게 혹시라도 벌이 옥상 위의 텃밭까지 찾아오지 않는 게 원인일까 생각이 들었다.
초보 농사꾼의 걱정은 인터넷 검색으로 단숨에 해결됐다. 토마토는 꽃이 달려있는 줄기를 손가락으로 톡톡 쳐주면 자체적으로 수정을 하여 열매를 맺는다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토마토를 재배해 본 사람이라면 "당연하지"라고 말할 이야기가 그저 생전 처음 토마토 모종이 자라나는 것을 본 내게는 "이게 가능해?"라는 미심쩍인 이야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란 꽃이 피어 있는 줄기를 몇 번씩 톡톡 두들겼다. 그리고 이틀 뒤에 완두콩보다 조금 작은 토마토 열매가 눈 앞에 나타났다. 맙소사.
파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보니 맥주 거품이 생각났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둔 채 오랜만에 <블루문>을 마셨다. 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