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애 신랑감은 뭐하는 사람이래?"
저녁 식탁을 함께 차리며 결혼날짜를 잡았다는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이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어요.
"무슨 말을 하다 말어?"
내 말에 아이가 낮은 목소리로 정색을 하고 "엄마!"하고 부르길래 돌아보니, 엄마가 속물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어요.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지요. 교사역을 맡은 배우 김광규가 말썽을 일으킨 아이들의 볼을 세게 잡아 당기며 훈계를 하다가 나온 대사로, 그 배우는 이 대사 하나로 '오랜 무명'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가 근래 다시 회자된 일이 있었지요. 대기업 총수의 자식의 폭행사건이 불러온 사건인데요, 변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는 말을 한 게 화근이 된 겁니다.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OOO,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너 그러고 다닐 때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와 같이 그의 행위와 부친의 주먹 흑역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로 인터넷을 뜨겁게 했었지요.
인터넷에는 부모님 직업을 물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질문과 답변도 여러 개 올라 있습니다. 학창시절엔 가정환경조사서에 부모님 직업 썼는데, 사회인이 된 지금 자신의 직업을 묻는다면 모를까, 그것도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아버지 직업이 왜 궁금한지 묻는지 이해할 수 없다, 콩고물이라도 기대하는거냐? 만의 하나 부모님이 대단한 사람인데 잘못 건드렸다가 봉변 당할까봐 그러는 것 아니냐는 등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전직 아나운서 임희정 씨는 오랫동안 아빠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며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아빠가 평생 누구보다 성실히 노동을 했을 뿐인데 딸은 그 노동을 창피해 하며 자랐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을 사람들은 ‘막노동’이라고 불렀는데, 노동 앞에 '막'이라는 단어가 너무 싫어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건설공사장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노동을 하셨고 그것으로 가족을 건사하셨는데, 왜 그 일을 막노동이라 부르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이력서를 쓸 때 자기소개서의 수십 줄을 채우는 것보다 가족관계란의 아빠의 직업 한 칸을 채우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며,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인 건설근로자, 일용직, 노동자. 그러나 아버지의 일을 형용하는 그 단어들을 차마 쓰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임희정 씨는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 소개하며 "회사 주소도, 내선 전화도, 명함도 없었던 아빠, 아빠의 노동을 글로 쓴다. 50년 치 밀려있던 인정과 존중을 늦게나마 채우기 위해서 아빠의 일을 그리고 삶을 열심히 기록 중이다. 이제 나의 글은 아빠의 이력서가 된다. 먼저 이십 대에 도려냈던 아빠 직업란을 다시 붙여 꾹꾹 눌러 적는다."고 고해성사 같은 글을 썼어요.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해고노동자’. 영화 <안녕 히어로>는 김정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수석부지부장이 아들(현우)의 생활기록부 '아버지 직업란'을 채우기 위해 고민하며 시작되지요. 해고 노동자가 된 아빠가 공장이 아닌 길바닥으로 나가는 걸 아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https://news.joins.com/article/23883140
완전 전업주부도 아니며 그렇다고 출퇴근도 일정하지 않고 수입도 많지 않은 일을 하는 후배는 직업을 쓰는 칸에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급작스레 실직한 어떤 사람은 친구의 술이나 축낸다는 뜻으로 '우주감량업(友酒減量業)'이라고 실직한 자신의 직업 이름지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고등학생은 가정환경조사서에 고물상을 하는 아버지의 직업란에 차마 고물상이라 채우지 못해 고민하는 친구를 위해 ‘H프레임화물운송업’이라 작명을 해주었다네요. 리어카를 일컬어 ‘H프레임’, H프레임으로 고물을 실어나르니 ‘화물운송업’이라 했다는 겁니다. 정치를 하다 지금은 글쓰기에 전념하며 더 이상 정치는 하지 않겠다 선언한 작가 유시민은 자기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라 하고, 방송국 임원으로 퇴직한 후 책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하는 어떤 사람은 자칭 ‘글로생활자’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아버지 뭐하시느냐'는 질문을 받던 사람들이 이제 직업란에 뭐라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어서 직업란에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당사자가 된 겁니다. 아이들은 더이상 부모 직업란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아요. 부모님 직업보다는 부모님 재산에 더 관심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