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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Mar 17. 2019

내 장래희망은 아빠가 되는 거다

그림책에 물들다 | 아빠와 아들

어서 커서 아빠가 돼야지

우리 그림책에서 아빠를 전면에 내세운 책은 드뭅니다. 그림책의 역사가 짧기도 하고 부모세대가 자녀에게 물려줄 성장 체험이 넉넉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요. 이야기 문학에 등장하는 아빠는 권위와 지위로 아랫사람을 다루는 권력자의 모습에 가까웠어요. 그게 아니라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아빠의 모습이거나.


우리 어린이 문학에서 긍정적인 아빠 모델이 드물었기에 <아빠와 아들> 속 아빠의 모습이 특히 더  신선하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요즘 아빠는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놀기는 어려워합니다. 아빠도 아빠에게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걸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등장하는 아빠는 새로운 유형의 아빠입니다. 


 이 그림책은 장래 희망인 아빠를 관찰하는 아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날짜는 없지만 일기 형식을 띠고 있어서 아빠가 실존 인물 같고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옵니다. 

 

아들 눈에 비치는 아빠는 귀찮은 부탁 앞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컴퓨터를 부숴버리겠다고 으름장도 놓고, 놀자고 하는 시합을 진짜로 해 버린다든가, 생일 선물을 놓고 아들과 거래도 하는 아빠입니다.

 

 이 그림책은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의 욕망을 잘 그렸어요. "아빠가 되면 큰소리를 쳐도 되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고,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보고, 늦게까지 안 자도 되니까" 아들은 어서 커서 아빠 되는 게 희망입니다. 


아이들은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고 등 수시로 걸리는 제재와 통제 앞에서 아이들은 해방되고 싶어 합니다. 그 방법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아들이 보기에 아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대장처럼 보입니다. 


아들과 아빠의 승부욕

 아빠와 아들은 의기투합도 쉽게 합니다.

'나는 왜 맨날 배가 고프지? 뱃속에 거지가 사나 보다.' 배고프다 말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들이 배고프다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아빠는 "라면 끓여줄까?" 하시며 엄마가 뭐라 하셔도 라면을 끓여줍니다. 


엄마는 수학 문제집을 다 풀고 나면 컴퓨터 게임을 해도 좋다고 합니다.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에 정답지를 보고 베낀 것을 아빠는 알고 계셨지만 눈감아 줍니다. 아빠와 아들 사이의 비밀은 두 사람의 유대관계를 더욱 두텁게 해 줄 겁니다. 아빠와 아들 사이에 일종의 전우애가 생기는 겁니다.   


목욕탕 사건도 재미있습니다. 아들은 물이 뜨거워 진땀을 흘리면서도 아들 자랑하는 아빠 때문에 꾹 참기로 합니다. 아빠의 칭찬에 걸맞게 대견한 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빠가 언제나 호락호락하시지는 않지요. 컴퓨터 게임을 오래 하는 아들에게 '그렇게 오래 하고 있으면, 컴퓨터 갖다 버린다!" 꾸중에, 아들은 정해진 시간만 게임을 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아들은 모든 순간에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어 달라고 할 때는 글이 적은 책을 가져오라 하시더니, 아들이 책 읽기 숙제를 마치고 아빠 사인을 받으러 갔을 때는 글이 많은 동화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아빠가 읽어주기 힘들면 아들도 읽기 힘이 드는 건데요.


싸움 놀이할 때, 아빠는 놀이를 실전처럼 해서 아들을 울리고 맙니다. 약이 올라 아빠에게 대들었다가 야단만 맞았습니다. 아들은 '아빠는 실컷 때리고 나는 맞기만 했다'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는 꼭 이기려는 아빠들에 대해 아이와 놀아줄 줄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아빠 자신이 여전히 동신의 세계에 있어서 그럴 것으로 진단합니다. 

아들은 어떤 때는 놀이에서만이라도 아빠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승부욕 때문이라는데요, 승부욕 이면에 생존 본능이 있다고 하니 아빠와 아들의 관계는 생기길 그렇게 생긴 모양입니다.   


아빠는 아들의 흔들리지 않는 거울

 "'여보! 애가 따라 하잖아요. 어서 들어가서 닦아요.' 엄마가 뭐라 하셔도 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못 들은 척하셨다. 나도 같이 못 들은 척했다. "

아빠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를 닦습니다. 아들도 얼른 칫솔을 물로 나와서 아빠 곁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를 닦습니다. 엄마의 지청구를 아빠가 못 들은 척하니 아들도 따라 못 들은 척합니다.


 이 그림책의 글 이야기는 아들이 “정말 우리 아빠처럼 되는 게 힘들까?”라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끝납니다. 

 그동안 화면 전체를 수다와 그림으로 빼곡하게 채우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마지막 장면은 모든 소리와 그림을 거두어들였습니다. 부자 3대인 듯한 세 남자가 거품을 뚝뚝 흘리며 이를 닦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된 아빠, 아빠가 된 아들, 할아버지와 아빠처럼 살 것 같은 손자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아빠를 닮고 싶어 하는 것은 아빠로서는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하지요. 조심하며 잘 살아야 할 이유이니 부모로서 부담스럽고 불편한 말입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생활습관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배운다고 합니다. 부모라는 거울에 비친 대로 따라 한다는 건데요,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따라 한다니 부모라는 거울이  흔들리지 않는 거울이어야 하는 이유인 거지요.


 이 그림책은 아이가 함께 있는 시간 동안의 아빠 모습을 보기 때문에 아빠의 모습을 다 보았다고 할 수 없어요. 아빠가 집 밖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이들은 모르지요. 그래서 평범하게 사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지만 아이들은 모르는 것이고요.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주고 물어보았더니 대답은 가지가지입니다. 우리 아빠와 닮았다는 아이도 있고 그중 한 장면만 닮았다는 아이도 있어요. 그러나 아빠가 이런 아빠였으면 더 좋겠다는 대답은 같았지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빠가 놀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깊이 아빠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특히 남자아이들은 커 갈수록 엄마와 있는 시간보다 아빠와 있는 시간이 더 좋아질 것 같다고 말합니다. 엄마보다 아빠하고 할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어요. 당연히 그렇지요.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선생님은 부모입니다. 그중에서도  남자들의 세상을 배우는 건 엄마가 아니라 아빠겠지요. 아빠와 아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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