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산책은 일종의 사회생활이라는데 이때 절대 필요한 건 후각,
개들은 냄새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란다.
어떤 이는 개에게 산책은 일종의 그들 방식의 독서라고도 표현한다.
개들에게는 산책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가 중요하다.
짧게라도 자주가 더 좋다는 뜻이다.
개에게도 알맞은 산책 시간이 있다며 소형견은 대형견은 그리고 노령견은 ---,
하면서 각각 그에 알맞은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물론 고려해야겠지만
지나치게 매일 필요는 없다.
다 사랑해서 하는 말들이겠지만 부자연스럽다.
타로는 비교적 오래 잘 걷는다. 덕분에 나도 운동이 되었다. 한번에 족히 만 보 이상을 걷고는 했다.
이건 좀 다른 소린데 타로 없이 나 혼자 산책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타로와 산책을 하면서 이따금 만나는 개가 있었다.
크기 60cm에 몸무게 6킬로그램 정도? 타로만 한 크기의, 타로와 비슷한 종류의, 마르고 단단한 체형의, 형형한 눈빛을 가진 개. 짧지만 털을 가지런히 하고 있는 걸 보면 사는 집이 있나 싶지만
늦은 시간까지 공원을 떠도는 걸 보면 그건 아닌 듯하다.
작고 까마잡잡한, 대추 방망이처럼 야무진 입과 서늘하게 빛나던 눈빛. 떠도는 개지만 함부로 나대지 않는, 어디에 있어도 굶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 녀석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꽤 오랫동안 이 공원을 제 집 마당인 양 활보햏다.
출입 금지 팻말이 있기도 하지만 억새며 망초대며 우거질 대로 우거져, 그래 봤자 공원 안이지만,
타로에게는 출입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 곳도 녀석은 거침없이 드나들었다.
그러던 녀석이 겨우내 안 보여 기억 속에서 잊혔다.
그런데 어제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조금 더 야위었으나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녀석은 공원에 흐르는 작은 개울에 목을 축이는 듯 물을 할짝거리고 있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아무려나 무사히 건너왔으니 지금 만난 것이지.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생각은 하면서도 보아서 반갑기도 하고 보여서 불편하기도 했다. 떠돌이 개에 대한 과한 연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