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고 슬쁘다] "이해한게 아니라 포기한거였어"

나의 소중한 감정 이야기-7

by Paul Da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그런 사람인 줄은 한참 후에 알았다.


아내는 건강식을 좋아한다. 나는 건강식품을 좋아한다.

아내는 채소와 생선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고기를 빼면 우울하다.

아내는 김치만 있어도 밥을 잘 먹는다. 그러나 나는 김치만 있으면 외롭다.

아내는 아침 식사를 잘 챙겨 먹는다. 그러나 내게 아침 식사하는 사람은 외계인이다.


신혼 시절부터 아내가 밥을 차려주면...

싱겁고 싱거운데 싱겁고 싱거워서 싱겁고 싱거웠다.

그리고 아내는 매번 내게 맛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


"맛이 어때?"

"음... 괜찮아"

"맛이 어떠냐고?"

"음... 괜찮다니까"

"맛있어 안 맛있어?"

"아... 정말 괜찮다니까"

"맛이 없구나? 짜증 나"


결혼하고 10년 정도 지나면서 우리의 입맛이 조금씩 맞춰졌다.

이제는 정말 맛있고 맛있으며 맛있다.

그런데 이제 나는 퇴근하고 피곤하다.


"맛이 어때?"

"아... 맛있어"

"정말 맛있어?"

"어... 정말 맛있어"

"맛이 없구나"

"아니... 맛있다니까"

"영혼이 없어"

"..."


결혼하고 15년 정도 지나면서 이제 아내의 음식은 최애 음식이 되었다.

이제는 아내가 음식을 해 주면 기대가 된다.

그런데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아내에게 음식을 해 준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래도 나의 아내는 이해해 주었다.

이런 아내가 또 있을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일을 한다고 나름 배려해 준 아내가 고맙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엄마는 아빠가 음식을 못했어도 이해해줬어"

"아닌데 포기한 건데..."

"어... 음... 아..."


아내는 그동안 많이 서운했다.

어느덧 내가 음식 준비하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바보같이 이해해 준 것이라 생각했다.


아내가 보기엔 내가 철없는 아이 같았을 거다.


왜 나는 서운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말을 안 했지만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인가 보다.


누구는 서운해도 참고 넘기고, 누구는 이해해준 줄 알고 당당하고.

한없이 한심하고 한숨만 나왔다.


그리고 결혼하고 20년 정도가 되었다.

이제 아내의 복수가 시작됐다.


우리는 서로 기념일, 생일 등등 서로 잘 안 챙겼다.

나도 아내도 서로가 그런 것을 챙기지 말자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요구한 적도 서운한 적도 없다.


"여보 오늘 밸런타인데이인데 왜 아무것도 없어?"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 주는 날이야"

"아니야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날이야"

"그럼 화이트데이는?"

"그날도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날이야"

"결혼기념일은?"

"그날도 남자가 여자에게..."

"내 생일은?"

"그날도..."


나는 이 복수를 받아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복수를 당해주는 것뿐이다.

이거라도 잘해야겠다.


오늘도 아내가 복수를 한다


"맛이 어때?"

"맛이 어때?"

"맛이 어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해야 한다.


배려... 이해... 포기...

조금만 더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우리의 감정들.

이제부터라도 아내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아야겠다.


사랑하고 고마워 여보.


"나의 일상은 기쁨 하나에 슬픔 하나 넣은 커피 한잔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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