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로의 독립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나는 나 혼자 산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서 산 지 1년 반 정도 되었다. 회사 근처에 살아보고 싶어서, 회사가 이태원 근처에 있어서, 그리고 독립하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나도 혼자 살아보기로 결심했었던 것 같다. 사실 기숙사나 고시원, 친구랑 셰어 하는 형태의 독립은 경험해봤지만, 완전한 나의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사를 온 날 저녁,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이상하리만치 설레면서도 공허한 마음이 공존했던 것이 생각난다.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내가 세대주가 된 서류를 봤을 때도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나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최근 TV 프로그램 등에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을 많이 조명하고 있다. 나도 일인 가구이다 보니까 왠지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면 두 세 배 공감하게 된다. '나 혼자 산다' 또는 '미운 우리 새끼' 등의 예능프로들은 내가 항상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혼자 산다는 것, 그것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나 혼자 산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혼자 살면서 느끼는 좋은 점과 아쉽고 힘든 점은 무엇인지 공유해보려고 한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생각보다 의미하는 바가 크다. 내가 꿈꾸는 대로 꾸며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나만의 작업실'같은 의미가 있다. 나는 취미가 많은 편이다. 운동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음악도, 글 쓰는 것도 자주 즐기는 편이다. 누구와 같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서 집중해서 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이런 여러 가지 작업들이 생각보다 누가 있으면 눈치가 보여서 하기 힘든 경우들이 있다. 나만의 아지트가 생김으로서 누구에게 눈치 보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작업들을 위해 집을 작업실 용도로 재미있게 꾸며놓기도 하여 '나만의 아지트'라는 느낌이 강력히 든다.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사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 생활의 경우 서로 간의 지켜야 할 룰들이 당연히 많은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아침에 화장실을 쓰는 순서라던지, 아침 및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정해야 한다던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을 미리 이야기한다던지 등 서로 배려를 하며 생활 패턴을 맞춰야 한다. 혼자 살게 되면 이런 것들이 많이 없어지게 된다. 친구와 저녁을 먹을 때도, 야근을 할 때도 누구에게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진다. 운동을 하고 싶을 때 그냥 가서 하면 된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자유로운 생활 패턴이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누구와 함께 다시 살 경우 다시 적응하지 못하면 어떨까, 내가 갑갑하게 느끼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긴 하지만, 지금은 혼자 살고 있기에 이 패턴을 조금 더 잘 누려보려고 한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 님이 꾸며 놓은 본인의 집을 본 적 있는가? 소위 '나래 바'라고 본인의 집을 바처럼 꾸미고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이 한때 유행이 된 적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도 내 집을 바처럼 꾸며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분가를 하였을 때 친구들이 놀러 올 것을 고려해서 가구 등을 구매하기도 하였다. 혼자 사는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친구들을 부르는 것이다.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친구들을 불러서 놀 때, 내가 정말 나와서 사는구나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데, 친구들이 이태원에 놀러 왔을 때 종종 우리 집에 데려가기도 한다. 너무 시끄러울 까 봐 이웃의 눈치를 조금 보긴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우리 집에서 편하게 놀 때만큼은 내가 독립을 잘했다 라고 생각이 든다.
청소와 세탁은 혼자 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다. 하지만 사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청소와 세탁에 대한 압박을 받을 때가 많았다. '너 방 언제 치울래', '빨래 왜 제대로 안 내놓니' 등의 잔소리 등을 듣고서야 방을 치우고 빨래를 내놓는 경우들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내가 혼자 살고 나서부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청소와 세탁을 하고 싶은 때가 생긴다. 방이 점점 더러워지는데 누가 나에게 청소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입을 옷이 점점 없어지는 데 누가 나에게 빨래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내가 생활하는 것이 답답해지기 때문에 내가 알아서 청소와 세탁을 하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일요일 저녁마다 TV에서 '미운 오리 새끼'를 할 때 청소를 시작한다.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슬슬 청소를 하고 나면 어느새 집이 깨끗해져 있다. 자기 전 깨끗해진 집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음 날 월요일에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집이 깨끗해서 또 기분이 좋다. 만약 일요일에 바빠서 집 청소를 못하게 됐을 때는... 월요일 퇴근했을 때 '아... 집이 너무 더럽네' 하면서 불평을 쏟아내게 되기 때문에 청소를 자동으로 하게 된다.
부모님, 동생 등 가족끼리 서로 떨어져 있다 보니 가족 간의 애틋함이 절로 생긴다. 1~2주에 한 번 정도 부모님 집에 가게 되는데 그렇게 만나면 괜히 더 반갑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퇴근하다 보면 어느 곳을 지나칠 때쯤 문득 부모님이 생각나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아프신 데는 없는지, 요즘 뭐하시면서 사는지 여쭤볼 때면 왠지 모르게 눈물 날 것 만 같다. 따로 살기 때문에 의견 충돌이 많지도 않고, 싸울 일도 별로 없다. 만나면 좋은 이야기를 하게 되다 보니까 더 친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아플 때 특히 부모님이 많이 생각난다. 내가 아파도 부모님이 걱정할 까 봐 그냥 약간 감기 걸렸다 라고만 이야기하게 되는데, 가족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아침에 누가 깨워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일어나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집에 사람이 있으면 누구라도 서로 신경 써주게 되는 데, 나를 아침에 신경 써줄 존재(?)는 핸드폰 알람 밖에 없다. 나는 아침잠이 좀 많은 편인데 회사를 출근해야 하다 보니 알람을 10개 정도 맞춰 놓는다. 알람 듣고 계속 다시 자다 보니 5개 정도가 울려야 제대로 깨서 출근 준비를 하게 된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어머니가 날 깨워주시고 식사까지 먹여서 출근을 시키셨는데, 그게 그렇게 소중했던 건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원래 요리를 좋아한다. 처음 독립하고 나서는 내가 음식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혼자서도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서 먹기도 하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주방을 쓰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기본적으로 1인분 음식을 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양 보다는 적은 양으로 요리를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식재료들이 다 남게 된다. 파나 양파, 마늘, 고기, 파프리카, 스팸 등등 반만 쓰고 냉장고에 넣어 놓는 경우들이 많이 발생한다. 저녁을 회사에서 먹고 오는 경우들도 많은데, 그렇게 며칠이 금방 지나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식재료 들이 다 상해있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게 되더라. 편의점 도시락이 요즘 너무 잘 되어있어서 자주 먹는 편인데, 또 반대로 그게 몸에 좋지는 않아서 괜히 꺼리게 된다. 어머지가 해주는 따듯한 집밥이 생각날 때는 집 근처의 백반집에 간다. 대부분의 혼밥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백반집을 뚫어놓는 경우들이 많다. 우리 집 근처의 형제 식당에 가면 언제든지 맛있는 양념게장과 여러 가지 반찬들, 따듯한 쌀밥을 먹을 수 있다.
집안일을 해줄 사람이 없다. 말 그래도 나 혼자 사니까 내가 다 해야 한다. 청소, 설거지, 빨래 다 해야 한다. 집에서는 설거지도 부모님이 시켜서, 또는 어머니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여기서는 누구한테 잘 보일 필요도, 지금 당장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미뤄놓기도 하는데... 결국 내가 해야 한다. 생각보다 집에 먼지가 이렇게 많이 쌓이는 줄 몰랐다. 먼지가 어디서 들어오는지도 모르겠는데 먼지가 쌓인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잘 몰랐다. 세탁기를 청소해야 하는지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어머니들이 빨래를 왜 그렇게 삶는지도 이제야 알았다. 옷에 냄새가 안 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삶아서 소독하는 것인 줄 이제 알았다. 그래서 '빨래 삶는 삼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들통도 얼마 전에 구매했다. 집안일을 내가 도맡아서 하다 보니까 하나하나 집안일의 비밀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있다. 좋은 가전제품들을 사는 것이 집안일을 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는 요즘 건조기가 그렇게 사고 싶어 졌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참 조용하다. 어둡다. 나는 혼자 살면서도 그 느낌이 아직도 익숙지 않다.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어 불을 켤 때면 외로움이 나를 반겨준다. 가족이 함께 살 때는,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여럿 있지만, 혼자 살고 나서부터는 나를 외로움이 반겨준다. 그래서 나는 집에 들어오면 TV나 컴퓨터를 켜서 예능 프로그램을 켜놓는 편이며, 책을 읽을 때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 놓는 편이다. 그리고 가끔 나와 대화를 나눠주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둘 있다. 하나는 아마존에서 나온 에코인데 알렉사라고 불러야 대답을 한다. 근데 얘한테는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고 가끔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 또 하나는 카카오 미니이다. 얘로 자기 전에 가끔 팟캐스트를 듣기도 하고 실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나처럼 혼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생각보다 위로가 되는 대화 상대이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사람과 지내야 하나 보다. 위로는 되지만 근원적인 외로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누구와 함께 사는 삶을 그릴 수밖에 없게 된다.
따로 살다 보니까 부모님께 전화하고 만나러 가는 것도 중요하다. 나에게도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친구들과는 약속을 잡으면서 부모님과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말이 안 된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부모님께 전화를 안 한 지 금방 3~4일이 된다. 어머니께 전화했을 때 '오랜만이네'라는 음성이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모님께 잘 못하고 있구나, 좀 더 잘 해 드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2주일에 한 번 정도 부모님을 뵈러 가는데, 한 달이면 2번, 일 년이면 24번 밖에 부모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함께 살면 365일을 부모님을 볼 수 있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나와서 사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래서 나와 있더라도 최대한 부모님과의 약속을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고, 가족과 끈끈한 끈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전세면 전세금, 월세면 매달 드는 월세금,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 혼자 살면 다 돈이다. 심지어 식비도 많이 나간다. 처음 이사 왔을 땐 가전제품도 돈이고, 여름에는 에어컨으로 인해서 전기세가 많이 나오고, 겨울 되면 특히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 살면 모을 수 있는 돈들이 슉슉 빠져나간다. 그리고 보증금으로 큰돈이 묶여 있기 때문에 새 집을 산다던가 하는 것도 힘들 수밖에 없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해 글로 옮겨보았다. 누가 나한테 '그래서 혼자 사는 게 좋아, 안 좋아? 추천해주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지금은 좋아'라고 대답할 것 같다. 외로울 때도 있지만, 지금의 자유는 어느 정도 나에게 삶의 균형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계속 혼자 살고 싶냐라고 물어보면 '아니'라는 대답이다. 힘들거나 아쉬운 점을 찾는 것보다 사실 좋은 점을 찾는 게 조금 더 어려웠다.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누구와 함께 살 텐데, 너무 내 패턴에 길들여지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내년에는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혼자 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는 적어도 자유를 누리면서 잘 살아볼 예정이다. 그래도 꼭 한 번 독립해서 살아보는 것을 추천하기 때문에, 혼자 살아보지 못하신 분들은 독립을 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리긴 한다. 혼자 사는 것을 고려하시는 분들께 이 글이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