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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폴리 May 12. 2019

요가하는 아침, 의식의 흐름

아침에 요가를 가려면 일찍 자야 한다.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다음 날 요가를 하고도 제대로 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겠더라. 아침 6시에 일어나면 8시간가량 동안 잠을 자는 셈? 집에서 6시 10분에 출발해야 요가원에 도착해 수련을 7시 반 전에 시작할 수 있다.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Wd8gStxy3s


아침 6시에 알람이 울린다. 벌써 아침이야? 저녁 10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일찍 잠에 든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눈을 감고 몸 상태를 체크해본다. 요가를 갈까 말까 살짝 고민한다. 어제 안 갔고, 그저께도 안 갔지... 오늘은 가야겠네. 조금 더 의지를 가지고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고 이를 닦는다. 10분 정도 꾸물거리며 준비하다가, 어제 챙겨놓은 운동복과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선다. 어차피 요가를 가서 땀을 듬뿍 낼 것이기에 샤워는 스킵하고, 대신 이따가 샤워할 수건을 챙겨간다.


5월이 되었지만 새벽 6시는 좀 많이 춥다. 바로 회사를 갈 때보다 새벽의 온도가 훨씬 낮기 때문에 옷을 한 두 겹 더 입고 나가야 한다. 아파트를 나서는데 저 멀리 내가 타고 갈 버스가 횡단보도 신호에서 서있는 게 보인다. 뛰기 시작한다. 60여 미터의 거리를 달려 그 버스를 잡아 타고 안심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엉덩이에 찬 기운이 사방에서 스며든다. 여름이 면전에 와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벽에 다시 겨울이 찾아온 것 같다. 덜덜 떤다. 15분 정도 떨고 있다 보면, 자리가 내 온기로 좀 따뜻해진다. 그럼 이제 내릴 때다. 내 온도를 나누고 난 떠난다. 내 자리에 앉는 누군가는 따스함을 느끼겠지.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xM3qmQOvXac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서 급행열차를 기다린다. 일반 열차 하나를 떠나보내고 5분을 더 기다린다. 그래도 급행열차가 더 빠르다. 아침인데 사람이 생각보다 좀 많다. 다들 이렇게 바쁘게 사는구나. 앉고 싶은데 앉을 수가 없다. 임산부 좌석만 비어 있는데 거기에 앉을 수는 없지. 내 대각선 앞자리가 났지만, 어느새 어떤 분이 빠르게 자리를 점유하셨다. 어차피 조금만 더 가면 환승역이니까 그냥 서서 기다리지 뭐.


지하철을 내려서 5호선으로 환승한다. 며칠 전에는 지하철에서 딴 짓을 하다가, 내가 내려야 할 역의 한 정거장 전 역에서 내렸다. 그 사건 뒤로 내가 내릴 역을 한 번씩 더 확인하고 내린다. 내 귀에는 심심하지 않게 팟캐스트를 틀어놓았다. 점점 재미있어지려는데 이제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다 도착했다.



드디어 역에 도착. 역과 연결된 상가로 들어간다. 잠깐 화장실에 갔다가 지하 1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바로 요가센터가 보인다. 7시 30분 전까지는 원장님이 카운터에 나와 계신다. 요가 지도자 과정을 하면서 40시간 수련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1시간 수업을 들을 때마다 스탬프를 하나씩 받게 된다. 원래는 수업이 끝나고 찍어주시는 게 정석이지만, 내가 수련을 마치는 9시경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신이 없어 미리 찍어주셨다. 100개를 찍으면 1달을 더 받을 수 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다 채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과감히 내려놓았다. 이제 40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다 채워야지.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는다. 아침 수련에 오면 항상 인증샷을 찍었는데 오늘은 왠지 정신이 없어 찍지 못했다. 그래도 너무 아쉬워하지 않는다. 요가 매트를 매트함에서 꺼내 들고 수련실로 들어간다. 아침 7시 30분쯤 들어갔는데도, 이미 수련을 한껏 하고 계신 분들이 10분 정도나 된다. 요가 센터가 문을 여는 7시에 도착해서 수련을 하는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나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익숙한 얼굴들도 있다. 지도자 과정을 함께 듣고 있는 선생님들도 많이 있다.



나도 자리를 잡고 매트를 펴본다. 잠깐 마음을 가다듬고 매트 앞에 서서 첫 동작을 시작한다. 아침에 하는 수련은 몸이 덜 풀려있어서 초반에 살짝 힘들다. 저녁에 하는 수련은 하루 동안 몸을 움직여서 몸이 풀린 상태로 시작하는데, 아침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그냥 한다.


내가 듣는 아침 수업은 마이솔 수련 방식의 클래스이다. 인도 마이솔 지방에서 유래된 수련 방식인데, 기본적으로 학생 자기 자신들이 주도하여 수련을 진행한다. 스승은 전체적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수련자 각자의 상태에 따라 개별적으로 지도하고 도와준다. 그래서 여러 학생이 동시에 수업을 시작하지 않는다. 수련하는 곳에 도착하는 대로 각자의 수련이 시작된다. 내 경우 늦지 않고 출근하려면, 9시에는 수련을 끝내고 샤워를 해야 한다. 시간을 보면서 속도를 조절하고 시퀀스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동작을 하다 보면 선생님이 스윽 내 옆에 다가오신다. 그리고 내가 동작을 더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몸을 터치하여 자세를 교정해주시거나, 어떤 방향으로 수련을 이끌어가야 할지 말로 제시를 해주신다.


종종 내가 힘들어하는 자세를 도와주실 때는 무섭고 고통스럽다. 선생님이 내 곁에 오는 게 항상 기다려지면서도 두렵기도 하다. 이상하지. 살다 보면 이런 게 참 많다. 좋으면서도 두렵고,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꺼려지고, 좋으면서도 귀찮다. 선생님의 엄한 가르침은 좋으면서도 두렵다. 아플 때 약을 먹는 것은 빨리 몸이 나을 것이기 때문에 좋으면서도 귀찮다. 옷을 사는 것도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의 짐이다. 운동하는 것도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꺼려진다. 화장품을 바르는 것도,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수련도 그렇지. 좋으면서도 뭔가 피곤하고 힘들다. 수련하고 나면 개운해지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 수련하는 동안 힘든 게 두려운 것일까?


여러 생각들이 나를 통과하다 보니 어느새 시퀀스의 막바지다. 이겨내고 수련을 마친다. 내가 하는 아쉬탕가 요가는 정해진 시퀀스대로 동작을 이어가는 요가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오리지널 방식으로 수련을 하면 2시간 가까이 걸린다. 하지만 내가 수련을 시작한 7시 반부터 회사에 가는 9시까지는 1시간 30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중간에 후반부 동작은 여러 개 빼고 한다. 사실 30분 더 일찍 오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몸과 마음이 쉽사리 잘 조절되지 않는다. 항상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번에는 내 의지를 조정해서 꼭 처음부터 끝까지 수련해야지.


마이솔 수업은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내가 수련을 마치는 9시 즈음에도 계속 사람들이 도착한다. 내가 수련을 마치고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른 분이 매트를 깔고 수련을 시작하신다. 샤워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다시 역으로 향한다. 종종 공덕역에 사는 회사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어디 나며 빨리 나오라고 종용한다. 오늘은 이 친구의 답장이 없다. 이제 일어나서 급하게 준비하나 보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한다. 이제 겨우 9시 10분이다. 일찍 일어나서 수련을 하면 하루가 길어진다. 회사에 도착하면 10시 좀 전인데, 이미 나는 4시간을 깨어있는 셈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벌써 하루가 다 간 느낌인데 이제 시작이다. 커피 한 잔을 사 와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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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폴리

광고 회사에서 디지털 마케팅 및 캠페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요가와 글쓰기, 일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소소한 기획, 문화 예술 등에 관심이 많은 5년 차 직장인입니다. 궁금한 점 및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더 많은 일상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개인 인스타그램 또는 이메일 (karis86@gmail.com)로 언제든지 편하게 문의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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