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하는 남자 10개월째 느끼는 삶의 변화와 생각
무엇으로 인해 삶이 확 바뀌는 경험을 해봤는가?
'다리 일자 벌리기'와 '한 남자의 요가 동영상'으로 시작된 내 요가 인생. 사람의 운명은 정말 가늠할 수 없는 것. 요가를 시작하고 10개월이 된 지금, 내 삶은 많이도 변했다. 실은 시작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요가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1년을 4등분으로 나누어 취미를 바꾸는 나에게, 1가지 취미를 1년 가까이 지속해왔다는 것은 꽤나 고무적인 일이다.
주위 사람들이 "넌 요새 무엇에 관심이 있니?"라고 물어보면, "제 머릿속의 60%가 요가로 채워져 있어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요가는 지금의 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더 요가에 정진하여 수련한 후, 내년에는 전문 지도자 과정을 듣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회사 부문이 강남으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도 요가였다. 사무실을 옮기면 퇴근하고 요가센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지 제일 먼저 걱정되었다. 이 정도로 삶이 요가로 가득 차 있다. 뭐 하나에 미친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닌가 싶더라.
요가는 외면적, 내면적으로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일주일에 2~3번씩 요가 스튜디오에서의 수련, 매일 아침을 깨우는 맨몸 운동, 성취감으로 인한 자신감, 매일 마주하는 삶에서 찾는 여유 등까지. 이런 변화를 만드는 '나의 요가'에 대해 한 번쯤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 글을 통해 요가하는 남자 10개월째 느끼는 삶의 변화와 생각들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내가 주로 하는 요가를 설명해볼까 한다. 요가에도 수련 방법에 따라 종류가 많은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가는 아쉬탕가 요가(Ashtanga Yoga)이다. 정확히는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Ashtanga Vinyasa Yoga)이다. 흔히 아쉬탕가 요가는 힘쓰는 요가, 격렬한 요가, 힘든 요가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아쉬탕가'라는 말은 요가 수련의 8단계를 의미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야마(금지하는 지침) → 니야마(권고하는 지침) → 아사나(자세) → 프라나야마(호흡) → 프라티야하라(감각조절) → 다라나(집중) → 디야나(명상) → 사마디(빠져듬, 깨달음)
사실 이 모든 것을 함께 수련해야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쉬탕가 요가를 한다고 하면 주로 3단계인 아사나(Asana), 즉 자세의 수련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호흡(Breathing)과 동작(Asana), 시선(Drisiti)을 항상 염두에 두고 수련한다. 특히 아쉬탕가는 빈야사(Vinyasa) 방식으로 여러 요가 동작(아사나)을 이어 하나의 플로우로 엮어 수련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쉬운 동작부터 정말 하기 힘든 여려운 동작까지 다양한 동작을 포함하고 있어, 아쉬탕가 요가를 1시간 수련하고 나면 땀이 줄줄 흐르고 근육통을 겪기도 한다.
아쉬탕가 요가에는 난이도에 따라 수련 정도를 나타내는 3단계가 있다. 마치 레벨 같다고 할까. 단계마다 해당하는 시퀀스가 존재한다. 프라이머리 시리즈(Primary Series) , 인터미디엇 시리즈 (Intermediate Series), 어드밴스드 시리즈 (Advanced Series)로 나눠져 있으며, 프라이머리 시리즈를 마스터(?)하는데만 족히 3년은 걸린다고 한다. 10개월을 수련했지만, 고작 10개월이다. 아직 프라이머리 시리즈 1시간 수련을 급급히 따라갈 정도니 말이다.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프라이머리 시리즈 내에서 느끼는 성취감도 크다. 아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나 많은 동작들 중 어떤 동작이 계속 안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 동작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쾌감과 성취감, 마치 게임에서 어려운 판을 깼을 때, 또는 레벨업과 같은 느낌이랄까.
요가를 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느끼는 점은 '정성'이다. 몸은 참 솔직하다. 노력에 비례한다. 요가 동작도 그런 것 같다. 요가 스튜디오에 다니기 전부터 다리 찢기를 연습했지만 아직도 완벽하게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면 언젠간 되는구나. 한 순간에 딱 되는 것은 없구나.'라는 소소한 진리를 깨닫는다.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운 동작들도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된다. 계단처럼 어느 순간 느는 것을 느낀다. 참 신기하지. 이래서 요가를 수련이라고 하나보다.
어떤 스포츠들은 초심자의 운, 소위 뽀록, 쌔뻑, 운빨이라고 하는 것들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 해봤는데 '어? 잘되네'라고 느낄 때가 있지 않는가? 하지만 요가는 그런 것이 없다. 충분한 수련으로 밑바탕이 다져져 있어야 다음 동작을 할 수 있다. 특히 아쉬탕가 요가는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고, 앞 동작들은 그다음 동작들의 준비자세이다. 그래서 인도의 어떤 수업 방법에서는 수련자가 그 동작을 하지 못하면 다음 진도를 나가지 않고 거기서 수련을 멈추게끔 한다고 한다. 정성과 시간과 노력, 아쉬탕가 요가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내년에는 요가 전문지도자 과정을 들을 것이다.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수강할지 정하진 않았지만, 요가에 대해 진지하게, 좀 더 바르고 깊게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내가 요가 지도자의 삶을 살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 하지만 요가를 전문적으로 배워 장기적인 관점에서 요가를 내 삶의 유용한 툴로 만들고 싶고, 남들에게도 올바른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고 싶다.
미래에 많은 직업들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요가 지도자는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다른 운동이나 스포츠에 비해 요가는 흉내내기 어려운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도 영향을 준다. 삶을 바꿀만한 강한 동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겉과 속이 함께 깊어 지는 것이 요가다. 그래서 요가의 행위를 연습이나 운동이라고 하지 않고 수련이라고 하지 않는가. 수련이 깊어질수록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게 된다. 수련이 깊은 사람들을 마주하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나오게 된다.
요가를 하며 관심이 생기는 것들이 또 있다. 요즘에는 핸드스탠드(물구나무)와 암발란스가 주 관심사이다. 아쉬탕가 요가에는 특히 팔로 지지하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핸드스탠드와 암발란스 자세들이 많은데, 수련이 깊은 분들의 동영상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나도 모르게 동작에 대한 욕심이 난다. 최대한 욕심을 줄여도 다시 삐져나온다. 묘기인지, 요가인지, 체조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고난도 동작들. 언젠가 꼭 할 것이다. 그러한 동작을 하기 위해 나도 조금씩 연습하고 있지만, 절대 한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쉽게 하는 것 같아도, 그 동작을 하기까지 노력한 순간들이 머릿속에 선하게 떠오른다. 이런 짐내스틱한 요가를 가르치는 희재 선생님의 '얼라인브 마인드바디'가 미사 도시에 위치해 있는데, 이 때문에 자꾸 미사의 집이 얼마인가 알아볼 정도니, 요가에 대한 관심 벌써 말 다했다.
올해 6월에는 요가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요가인들이 여행을 하는 곳은 주로 인도의 리시케시, 마이솔 지방, 발리의 우붓, 코스타리카, 미국, 호주 등의 지역인데, 나는 그중 휴양을 하면서 마음 편히 요가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발리의 우붓으로 결정했다.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요가 수련원의 시간표를 찾아보고, 숙소를 알아보고 있는데 너무나 설렌다.
일주일 정도를 머물 예정인데, 요가 수련원은 요가 반(Yoga Barn), 레디언틀리 얼라이브(Radiantly Alive), 인튜이티브 플로우(Intuitive Flow), 이렇게 3군데 정도를 가볼 생각이다. 이 곳에서 세계 각 국에서 온 요가인들과 함께 다양한 수업을 듣고, 이야기하고, 수련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우붓에 있다가, 꾸따 또는 스미냑 해변에서 서핑도 하고 요가도 하고, 일주일 동안 요가와 함께 하는 삶을 즐겨보려고 한다.
요가를 처음 시작할 때는 종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천주교 신자 집안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성당을 다녔던 사람으로서, 힌두교라는 종교와 밀접한 요가를 해도 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천주교는 유일신을 섬기는데 반해, 힌두교는 다양한 신을 섬기고,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진다. 그래서 힌두교에서의 요가는 '신과의 합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 설명되기도 한다. '요가 수행을 통해 내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라는 교리인 것이다. 요가를 하다 보면 힌두교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들도 있다.
이러한 종교적 차이 때문에 쉽사리 요가를 시작하지 못했다. 인터넷을 통해 요가와 종교, 가톨릭과 요가 관련 아티클들을 살펴보고, 신부님, 또는 종교지도자, 나아가서는 교황님이 하신 말씀 등을 찾아보면서 결정을 내렸다. 경계해야 할 부분은 확실하게 알고 경계하고, 심신의 수련 용도로서 요가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국내 또는 서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수련하는 요가는 힌두교의 고전 요가가 아니라, 신체적 건강을 주요 목표로 삼는 하타 요가(Hatha Yoga)이다.
서양에는 '크리스천 요가'도 생겼다고 한다. 요가 동작들의 이름을 성경에 나오는 것들로 재명명하고, 요가 수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소리인 "옴"을 "아멘"으로 바꾸는 등 요가를 크리스천화 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힌두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는가 라는 논의가 제기되어, 이에 대한 지속적인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가끔 요가 선생님에 따라서 수업 시작할 때와 마칠 때에, "옴"이나, 소리 내어 말하는 일종의 기도인 "찬팅"을 하시는데, 나에겐 좀 거부감이 들고 꺼림칙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남들이 "옴~"을 외칠 때 나는 "주님~~"을 남몰래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종교에 대한 문제는 정말 어렵고 복잡하지만, 각자가 자신에 맞게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요가와 더불어, 내 몸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맨몸 운동을 시작했다. 요가의 동작 중 물구나무나 암발란스 등 여러 가지 고난도 기술을 하려면 어깨와 팔의 강한 근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작한 이유도 있다. 아침에 30분 더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한다. 나는 이 운동에 '300 트레이닝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매일 운동 동작 횟수 또는 초수로 총 300을 채워 트레이닝을 하는 맨몸 운동 홈트 프로젝트이다. 매일 운동하는 모습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는다. 그리고 매일은 좀 그렇고, 이틀에 한 번 인스타그램에 인증을 한다.
팔 굽혀 펴기 50개, 윗몸일으키기 50개, 스쿼트 50개, 플랭크 100초,
물구나무 푸시업 10개, 턱걸이 20개, 딥스 20개, 그 외 그 날 하고 싶은 추가 운동 포함
300개 정도는 별거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20일 정도를 꾸준하게 해온 결과 몸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몸무게가 쉽사리 줄 진 않지만 바지사이즈는 줄고 있다. 20일 만에 벨트 구멍 한 개가 줄었다. 먹는 건 그대로 먹는데 말이다. 그래서 일단 정해논 기한까지는 매일 해보려고 한다. 최근에는 300운동 외에 요가 동작도 함께 수련한다. 올해는 수영장에 한 번 가보고 싶은데 가능할까 모르겠다...
불과 10개월 동안의 시간 속에서, 나에게 벌어진 요가라는 사건은 작고 큰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계속 긍정적인 변화를 채워나갈 것 같은 느낌과 확신이 든다. 앞으로의 삶 속에서 내가 얼마나 멋지게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기대가 된다. 일 년 뒤 이 년 뒤, 난 점점 더 멋지게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특히 요가를 멀게 생각하시는 남자분에게 요가에 대해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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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