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그리고 죽음에 다가갔던 순간들

술과 조울증

by 폴짝
처음에는 당신이 술을 마시고, 그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마지막으로는 술이 당신을 마신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의 원래 뜻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조울증을 일찌감치 예고하는 듯한 극적인 사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에는 술이 관계된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아마 네 살이나 다섯 살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자동차 도로의 양쪽 인도를 따라 시장이 있었는데, 그날 어머니는 장독으로 쓸 단지를 보고 계셨습니다. 어머니의 눈길을 잠시 벗어난 형과 저는 찻길을 무단 횡단하는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치킨 레이스와 비슷한 스릴이 있었습니다. 먼저 출발한 형은 별일 없이 길 건너편으로, 그리고 다시 이쪽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는 겁이 났지만,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형을 따라 했는데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반대편 쪽으로 길을 다 건너가기도 전에 시내버스가 저를 향해 달려왔고, 순간 저는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으로 필름이 끊기는 경험이었습니다. 마치 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눈을 떠 보니 낯선 천정이 보였는데, 병원 응급실이었습니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몸이 작았던 덕분에 다행히 버스에 치이지 않고 바퀴 사이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버스 기사, 주위 사람들도 놀랐겠지만, 아마 어머니만큼은 아니었을 겁니다. 주변 도움으로 저를 버스 밑에서 꺼내고 병원으로 옮기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거의 죽다 살아난 셈인데도 시큰둥한 느낌이었을 뿐, ‘아, 살았구나! 정말 다행이다!’ 하는 감동은 없었습니다.


사실 전 어렸을 때부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심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끔씩 이런 식의 돌발 행동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차도에서 겁이 났으면 평소 성격대로 놀이를 포기하면 될 텐데, 기어코 목숨을 걸고 달려오는 차들을 향해 뛰어든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보통 ‘객기’라고 부르는 충동적인 행동들을 성인이 되고 나서도 종종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제 이 극단적인 기질과 조울증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울증 환자로서 경험한 조증 시기가 돌발 행동을 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때 벌써 ‘예비 조울증 환자’로서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조울증 가족력이 있어서 거기에 해당하는 어른들도 꽤 많았기 때문에 이미 유전적인 지뢰밭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대책 없이 지뢰밭을 건너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태였습니다. 언제라도 지뢰를 밟아 쾅! 하고 터질지 모를 상황이었던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무척 소극적이고 사람 대하는 걸 어려워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신경질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애늙은이 타입이라, 또래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었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냉소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 과거 중에서 일종의 전성기라 부를 시기가 있다면, 중학생이었던 이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전교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반에서는 늘 1등을 했습니다. 공부 외에는 특별히 관심 분야도 거의 없는 편이어서 잉여 에너지를 공부에 많이 쏟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입시에만 모든 신경을 쏟았는데, 목표가 당시로서도 상당히 문턱이 높은 특목고였기 때문입니다. 노력과 운이 같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려운 입시를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해 냈다!’ 하는 마음에 너무 기뻤지만, 결과적으로 특목고에 가게 된 것이 제 인생에 부정적인 면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이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막상 진학해서 수업을 듣다 보니, 다른 동기 학생들이 입학 전에 거쳤던 선행학습의 정도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선행학습을 했다는 가정 하에 수업 진도를 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저는 그 진도를 따라가기가 벅찼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중학교 때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상대적 열등감에 푹 젖어 버렸습니다. 공부에 있어서는 한껏 잘난 척만 하던 중학생 꼬맹이는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누더기 투성이가 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조울증의 양상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이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누적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저와 비슷한 입장에 있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밤에 컴퓨터실에서 몰래 게임을 하거나, 기숙사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제 인생 처음으로 마시는 술이었는데, 이때부터 취하도록 마시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양껏 마셨으니, 다음날 제대로 공부하기 어려운 게 당연했습니다. 공부를 안 하니까 성적은 더 떨어지고, 그러면 의욕이 없어져 더 공부를 안 하고, 이런 악순환이 꽤 오래갔습니다.


아마 이 시기에 전 상당히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울증이 첫 발병이 우울증 형태로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흔한데, 저에게는 이때가 그런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행히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만 남아 있을 무렵, 다시 집중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기억을 되짚어 보면, 절묘한 시기에 우울증에서 경조증으로 상태가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분과 에너지 상태가 그렇게 극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달리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타이밍이 딱 맞게 조증 시기가 온 경우는 이후에도 몇 번 있었는데,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달리 생각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시에는 조울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고, 단지 우연히 시기가 맞았기 때문입니다. 제 첫 조울증 검사를 한 의사분도, ‘지금까지 공부는 대체 어떻게 하셨어요?’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입학이 확정된 후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만취가 되어 학습실 구석에서 혼자 잠이 들었던 거죠. 친구들은 제가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자러 갔습니다. 그때는 한겨울이었고, 늦은 시간이라 난방도 다 꺼진 상태였습니다. 전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다음날 아침 후배 한 명이 거품을 물고 있는 저를 발견했고, 저는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했습니다. 급성 저체온증 때문에 속이 뒤집혀서 며칠간 밥을 못 먹었고, 몸이 계속 떨렸습니다. 일생일대의 숙취를 경험한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칫 죽을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일에서 아무 교훈을 얻지 못했고, 그래서 나중에 몇 번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이런 일은 제가 열다섯 살부터 열여섯 살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알코올에 탐닉하기 쉬운 것은 조울증 환자의 대표적인 특성인데, 학생 시절부터 술을 마셨다는 점에서 이미 이 병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른 나이부터 형성된 폭음하는 습관은 조울증 증상의 조기 발병과 거듭된 재발에 아주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일을 겪고 나서도 대학교에 가서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셨습니다. 같은 과 모임, 동아리 술자리 등, 술을 마실 기회가 있으면 거의 빠짐없이 나갔습니다. 모임이 없으면 혼자서라도 기어코 술을 마시곤 했습니다. 다음날 수업이 있든, 시험이 있든 개의치 않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일단 술을 마셨다 하면 만취해서 필름이 끊길 때까지 멈추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도 자주 필름이 끊겨서 저는 제 주량이 적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술을 너무 빨리 마셔서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소주를 잔에 따르고 원샷, 다시 바로 잔을 채우고 또 원샷. 이런 식이니 순식간에 취해서 기억이 안 날 지경이 되고. 게다가 그러고 나면 취해서 힘드니까 어딘가 잘 수 있는 곳을 찾아 슬그머니 사라지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결국은 고등학교 때 상황과 비슷한 사달이 났습니다. 한 겨울이었는데 술 취한 제가 술자리에서 사라진 겁니다. 자주 있던 일이라 다른 후배 동기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마침 제 친한 친구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지 후배들을 수색 작전에 투입했다고 합니다. 운 좋게도 어느 다리 아래서 자고 있던 저를 발견했고, 엄동설한에 얼어 죽을 뻔한 저는 또 한 번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친구는 문자 그대로 생명의 은인이라,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 외에도 술과 관련해서 죽을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제가 목숨이 아홉인 구미호도 아닌데, 번번이 누군가 구해 주거나 하는 식으로 위험을 피해 간 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현재 저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 편입니다. 한때 완전히 끊었다가, 지금은 가끔 맥주 한두 잔 정도 하는 정도입니다.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술이 조울증에 무척 해롭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술을 조절해 가면서 마시지 못해서였습니다. ‘딱 한 잔만’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시다 보면 한 잔이 두 잔으로, 두 잔이 다시 세 잔으로 이어졌고, 주량 조절이 안 됐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그렇게 술을 끊으니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게 되면 생산적인 일들을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정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술에 유독 관대하고 술 권하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술을 자제하며 마시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정량 이상 술을 마시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이런 생각을 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나는 술이 주는 유익한 면을 위해서 마시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술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술을 먹는 게 아니라 술이 나를 먹는 상황이 된다면 이제는 슬슬 술과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된 것일지 모릅니다.


술을 절제하는 것은 확실히 조울증 관리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일단 조울증이 발병하고 나면, 술을 완전히 끊는다고 하더라도 조울증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한번 조울증의 덫에 걸리게 되면 어째서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든지에 관해 다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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