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어떻게 조울증 환자가 되었나

by 폴짝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 칼 폴 라인홀트 니부어(Karl Paul Reinhold Niebuhr)


제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09년 4월 1일, 어느 만우절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거짓말 같았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입원하기 며칠 전,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로 있던 대학교 동기에게 개인적으로 상담을 부탁했습니다. 친구는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을 들은 친구는 당장 입원하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분명한 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심각한 태도를 보고는 최대한 빨리 입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이상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입원했지만, 보통은 환자의 상태가 심각해져 감당이 안 될 지경이 되고 나서야 입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제가 심각하게 느꼈던 것은 성욕이 너무 강해진 나머지 이러다가는 사고를 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잘못하면 남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겁이 났습니다.


성욕 증가는 조울증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입니다만, 막상 검사를 받고 나서 드러난 증상 중에는 그것 말고도 많았습니다. 입원 직전 아주 심한 조증 상태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기분이 너무 들떠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심리적 불안감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에너지 소비가 너무 심해 탈진할 것 같이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에너지가 과도하게 넘치는 기분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입원 수속을 밟으면서 복잡한 심경이 들었습니다. 사실 입원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입원 후에도 검사를 많이 받아야 했습니다. 정신과 병동 자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필요한 절차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초기에는 신기한 것도 많았고 검사 과정에 흥미로운 면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저는 전형적인 조울증이라고 진단받았고, 특히 당시에는 조증이 무척 심한 상태였습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자발적이라고는 하나 격리당한 상태인데도 들떠 있었습니다. 조울증에 관해 잘 모르던 그때에는 마냥 기분좋게만 느껴졌습니다.


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제 목소리는 컸고 톤도 높았습니다. 뜬금없이 잘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친하지 않은 다른 환자와 탁구를 치거나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직 ‘병식’이 생기기 전으로 스스로 조증 상태가 얼마나 심한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제 행동들이 어떻게 보일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정신과 병동에는 개방 병동과 폐쇄 병동이 있습니다.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자해나 자살의 위험이 있는지 등을 의사가 판단하여 환자에게 맞는 병동으로 입원하게 됩니다. 저는 개방 병동에 있었는데, 자의로 입원했고 큰 문제를 일으키거나 자해를 할 염려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혹시 몰라서인지, 라이터나 면도기를 간호사에게 맡겨야 했습니다.


개방 병동은 요양원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정신 병동은 대개 암울한 분위기가 가득한 것으로 묘사되기 일쑤인데, 제가 있던 개방 병동은 그런 모습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특별히 많이 아파 보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고, 일과가 여유롭고 느릿느릿하게 흘러갔습니다. 한 간호사 분은 여기가 주로 사람들이 쉬러 오는 곳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개방 병동이 좋은 점을 하나 꼽자면, 바로 면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병동 생활 중에 찾아와 준 친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꼭 군대 있을 때 지인이 면회를 온 것 같았습니다. 입원한 기간 중 친구 두 명이 면회를 왔는데, 덕분에 오랜만에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입원한 지 3주 정도가 지나고, 일단 증세가 좀 안정되었다고 판단했는지 주치의가 저를 퇴원시켰습니다.


이후 통원 치료를 하면서 증상이 안정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조울증 때문에 생기는 한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치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 한때 유행했는데, 이러한 것이 조울증 환자에게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조울증을 가진 채 살아간다는 것은 남들에게는 없는 큰 짐을 하나 더 짊어지고 가는 것과 비슷해서, 너무 조울증 자체에 매몰되면 삶이 고달파지기 쉽습니다. 병을 치료하고 정상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평소 삶에서 작은 기쁨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조울증을 치료하고 버틸 수 있는 지구력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울증은 유전의 영향이 큰 병입니다. 한때는 이런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조울증이란 병 때문에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이런 원망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부터는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부모님과 가족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으면 조울증으로 인한 고통도 덜 받고 거기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이랬으면 혹은 저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자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거기엔 저 역시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울증은 치료하기가 상당히 까다롭고 쉽게 재발하는 병이라서, 약을 잘 챙겨 먹는 것 외에도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우선 환자가 자기 병을 인지하고 현재 상태를 아는 것, 즉 ‘병식’이 생겨야만 제대로 된 치료가 가능한데, 이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치료와 관리에 인내심이 필요하고 조울증에 맞는 생활방식을 잘 따라야 하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습니다. 그래서 치료 과정은 때때로 도를 닦는 것처럼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너무 지친 나머지 ‘왜 나에게 이 거지 같은 병이 생긴 걸까’ 하면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울증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삶의 질이 분명하게 좋아집니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조울증 환자가 흔합니다. 평소에 잘 알아보지 못해서 그렇지, 통계에 따르면 조울증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적어도 인구의 4% 정도가 평생 한 번 이상 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모쪼록 이 글을 통해 무심코 지나쳤을지 모르는 주변의 조울증 환자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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