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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Nov 08. 2022

[서평] 지하로부터의 수기

이 책은 지하의 몽상 속에서 살아온 '지하 인간'의 수기手記다. 이 지하는 공간으로서의 지하가 아니라 자기만의 망상 세계를 일컫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지하를 "구린내 나고 추악한 자신의 지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싸늘한 독기를 품은, 무엇보다도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악의 속"이라고 하는 등 부정적인 견해를 취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안정을 위해 지하의 시간을 기다리는 문제적 인물이다. 



주인공은 본래 모욕감을 느끼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동물로서 의식적으로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공학에 종사할, 즉 어디들 가든 영원히, 끊임없이 자기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인데, 이렇게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엉뚱한 쪽으로 빠지는 길을 택하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인물. 그래서 몸을 파는 여자에게 모욕을 주면서 모욕 받은 그 여자를 부러워하는 자기를 발견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어떤 변태 성향을 가진 인물은 물론 아니다. 안락도 고통도 원하지 않고 오직 "마음껏 변덕을 부리는" 것만을 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변덕에 반응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피해의식에 절어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복수를 꿈꾸지만 마음만 먹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자기만 신경 쓰고 자기만 억울해하며 결국 온갖 변명으로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며 지하에 틀어박힌 후 정신 승리한다. 가령 2X2=4라는 대수학과 자연법칙에 따라 "오직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것 하나만이, 한마디로 말해서 오직 안락 하나만이 인간에게 이롭다고 확신하는" 다른 인간 부류에 냉소를 던지는 식이다. 그러한 '자기의식'이 비록 반동적反動的일지라도 가치가 더 높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생각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수기手記한다. 그래서 자신의 지하 망상 속에서 외모와 직업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지하형 인간'이 내뱉는 실패담이 이 책의 큰 줄기다.  자존심이 끔찍하게도 강하면서 자신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여기는 이 인간, 이 인간의 수기手記가 왜 "도스토옙스키의 미학적, 시학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마지막에 나온 듯하다. 주인공은 "지금 대체 어디에 살아 있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또 그 이름은 무엇인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자신은 더 '생기로운' 인간이고, 분별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감추고 비겁하게 사느니 자신처럼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삶이 더 가치 있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관념으로부터 태어날 궁리"를 할 것이라며 수기를 마친다. 바로 이 지점이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이 지점.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 그렇듯이 이 소설 주인공은 가난하거나 모욕당하거나 돈을 구걸하는 실패한 사람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실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초의 실존주의 소설로 일컬어지는지는 이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 러시아 대문호大文豪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북클럽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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