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사이

이번엔 엄마가 안 때렸다

by pq

나는 여덟 살이다.


저녁을 먹고 엄마와 나, 동생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네모난 검은색 가방을 든 아저씨가 집에 찾아왔다.


아저씨는 아빠의 소개로 오게 되었단다.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나는 소파에 앉아있었고, 엄마는 동생을 품에 안은 채 거실에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아저씨는 네모난 가방을 열어 빼곡히 진열된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준다.

영어회화를 가르쳐주는 비디오테이프라고 한다.

아빠가 관심을 보여 판매하러 왔다고 한다.

아저씨는 계속 설명을 하고, 엄마는 테이프를 한번 틀어보자고 한다.


화면에는 금발의 여자와 금발의 남자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고, 아래에는 한글 자막이 나온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은 까맣고 하얀 점 들로 뒤덮이면서 '지지직~' 소리만 나기 시작한다.

엄마는 아저씨에게 테이프가 왜 이런 것이냐며 따진다.


다른 테이프들도 틀어본다.

전부 까맣고 하얀 점들만 화면에 나타난다.


그러자 갑자기 아저씨가 더운지 입고 있던 양복 윗도리를 벗는다.

아빠가 이 영어교육 비디오테이프를 사기로 했으니, 빨리 돈을 달라고 한다.

엄마는 테이프가 불량이니 구매할 수 없다며 화를 낸다..

아저씨도 화가 난 것 같다.

결국 아저씨는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지지직~' 대던 비디오테이프들이 가득한 네모난 상자를 들고 집에서 사라졌다.


엄마는 곧바로 아빠한테 전화를 건다.

사기꾼한테 당할 뻔했다며,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느냐며 다그친다.

통화를 마친 엄마는 나를 노려본다.


"더러운 년아! 쓰레기 같은 년!"


엄마는 나를 향해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뭘 보여주려고 창녀처럼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어? 기가 막혀서. 꼴도 보기 싫어! 네 방에 들어가!"


엄마는 내가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다리를 모으고 있지 않아서 아저씨가 내 다리 사이를 힐끔힐끔 쳐다봤다고 한다.


다행인 건 이번엔 엄마가 나를 안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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