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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Nov 02. 2022

<목소리의 형태>, 1) 아픔이 아니라 통증

<목소리의 형태>(야마다 나오코, 2016)


영화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는 물질일까 마음일까 사실일까 의도일까 생각일까. 닫힌 마음을 뚫고 솟아오르긴해도 이내 힘 잃는 목소리, 제 목소리 잃은 목소리, 잃고도 잃은 줄 몰라 내내 딴소리 하는 목소리, 마음과 뜻을 담아 제 소리 내지 못하는 목소리, 마음을 읽지도 마음을 담아 내지도 못하는 목소리, 듣지 않고 내내 자기 얘기만 하는 목소리, 제 마음을 잃은 목소리, 제 탓만 하는 목소리, 남탓민 하는 목소리, 존재와 별개로 과장하고 달뜨는 친절한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에 대해, 소리에 대해, 말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목소리는 저마다의 꼴(모양)을 지녔다.



애니 <목소리의 형태>는 대.단.하다. 이야기보다 이야기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모양새와 소리, 인물의 내면을 반영하는 숏과 씬이 조화롭고 신선하다. 영화 <랜드 오브 마인>은 고통과 아픔을 감각적으로 재현하고 전달하되 시차의 어긋냄을 통해 관객의 두려움을 끌어올린다. 예상 밖,은 시차가 만들고 고통의 체감은 커진다. 인물들의 고통과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통증으로 감각된다. 애니 <목소리의 형태>도 그림으로 이야기를 그저 재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박자와 시퀀스로 묶어 리듬감 있게 전달한다. 감정적이 아니라 감각적,이되 깊고 예리하다. 내내 땅에 꽂힌 채 반복되는 주인공 쇼야의 시선 재현은 반복되지만 리듬 탓에 피로하지 않고 쓰린 감각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시집 <기억의 행성>에서 조용미는 시로 이 차원을 연다. 신형철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시를 뜨겁게 하는 것은 마음의 통증이고 풍경의 시를 진실하게 만드는 것은 몸의 통증이다.” 풍경에 끌리는 이유, 사람의 내면을 풍경으로 끌어내는 것, 미학적이다는 말, 애니 <목소리의 형태>는 이런 의미에서 미학적이고 시적이다. 통증이되 마음을 지나쳐 몸에게 곧장 전달해 몸에 닿은 통증이 다시 돌아 마음을 세차게 뒤흔드는 것, 영화 <랜드 오브 마인>과 애니 <목소리의 형태>는 재현 방식에서 이란성 쌍둥이 같다. 영상 재현으로 이런 게 가능하다니, 결국 연출은 적절한 깊이와 세기를 찾는 고뇌의 과정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언 노운걸>은 밋밋했다. 풍부해졌는데 밋밋해지는 역설, 여기서 영화를 끝맺겠구나 금새 알아차렸다. 다르덴의 뻔해지고 달라진 톤, 내가 변했을 수도 있다. 다르덴 형제는 등장 인물이 겪는 마음의 통증을 무덤덤하게 풍경처럼 그려내는 데 탁월했(었)다. 그 순간들의 무미건조함은 영화를 보고도 한참이나 얼어붙을 것 같은 서늘함으로 죽비처럼 뒷통수를 때린다. 아픔이 발화되는 순간 통증은 휘발한다. 내면의 아픔을 날 것으로 털어놓기 시작하는 다르덴의 인물들이 낯설었다. 칼로 에는 아픔은 칼이 등장하거나 베는 장면이 나오면 끝장이다. 등장 인물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저마다의 사연을 털어놓다니, 따뜻해지고 친절해진 다르덴을 아쉬워하는 나는 나쁘다.


무엇을 보아 버린 자나 무언가를 깨달은 자는 다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애니 <목소리의 형태>는 굉.장.하다. "시각 저 끝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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