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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Oct 23. 2021

마르셀 뒤샹 <샘>

with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 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꽃 / 김춘수 -




예술이라고 하면 응당 비범하고 신비롭고 특별하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창작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다. 평범한 물체로도 특별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것이 획기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할수도 있다. 그야말로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몸짓이 '꽃'으로도 바뀔 수 있다.


마르셀 뒤샹, 샘 (1917 / 1964), 조르주 퐁피두센터


제 1차 세계대전 중 유럽을 시작으로 미국으로 전파된 다다이즘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은 획기적인 예술표현 방법을 탄생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일상용품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레디 메이드(ready-made)'이다. 1917년 처음 <샘>이 공개되었을 때, 미술계는 이 듣도 보지도 못한 예술적 표현에 어안이 벙벙했다. 미국 독립 예술가 협회가 주최한 <엥데팡당전>에 처음 작품을 전시하려 했을 때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엥데팡당전>이 권위적이고 수준높은 유수의 전시도 아니고 단돈 6달러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샘>은 손수 제작한 조각상도, 아름답게 칠해진 회화도, 고된 과정을 거친 판화도 아니다. 시중에서 누구나 볼 수 있고 살 수 있는 그냥 '변기'다. 창작물이 아닌 공산품을 떡하니 갖다놓고 작품이라고 우기니 거절은 당연지사다. 심지어 뒤샹은 소변기에 자신의 서명도 아닌, 욕실용품 제조업자의 이름인  'R. MUTT 1917'라고 서명을 해 놨으니 이를 쉽게 수용할 전시회는 전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뒤샹의 도전은 받아들여졌고, 미술계는 <샘>을 '미술 작품'으로 인정했다. 비록 첫 작품은 1917년 사진작가 스티글리츠의 사진으로만 존재하지만, 1951년에 제작된 두 번째 작품과 1964년 8개의 한정판으로 생산된 <샘>이 성공작으로 판명받았다. 이와 같이 기성품을 작품으로 내 놓는 뒤샹의 예술 기법에 '레디 메이드'라는 용어를 부여했고, 뒤샹은 팝아트의 선구자격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모든 기성품이 미술품이 될 수는 없다. 그가 이름을 불러주어야만 '꽃'이 되듯,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내용이 담겨 있어야만 '작품'이 될 수 있다.  


뒤샹의 <샘>은 일단 남자용 소변기를 90도 각도로 뉘운 형태로, 마치 조각상처럼 받침위에 올려져 있었다. 비로소 전시장을 빛내는 유일무이한 조각품으로 재탄생한 순간이다. 이는 특정 기성품이 특정 공간을 벗어나면 그 기능을 상실하고 전혀 다른 시각을 받는다는 것을 활용한 것이다. 소변기가 화장실이 아닌 곳에 있으면 더이상 소변기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어 그것의 본래 기능은 무의미해지는데, 이것을 전시장으로 옮겨왔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예술품으로 보게된다. 단순하지만 기가 막힌 생각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단순함 뒤에 가려진 진짜 아름다움, 평범함 뒤에 숨겨진 비범한 시선과 감각을 찾아내는 것도 미술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지금, 자신만의 기발함과 표현력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어쩌면 예술가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반복되는 일상이나 똑같은 것들에 싫증이 났다면, 몸짓에 지나지 않던 것을 '꽃'으로 바꾸고 평범한 변기를 조각상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 작은 생각의 변화가 때로는 삶의 방식을 구축하고,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다 - 누가 뭐라해도 해 보겠다는 작은 용기.


나는 내 취향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를 부인해야 했다.
- 마르셀 뒤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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