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이 없다'
어릴 적부터 많이 듣고 자란 말이다. 우리나라는 말만 있을 뿐 직업의 귀천이 극명하게 나뉘는 곳이다.
나는 생산직 노동자이다. 시급직이다. 연봉직은 초대졸 이상을 채용한다. 대한민국 어느 직장에서나 학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일쯤은 낯설지 않다. 생산직이라 하면 무시는 밑바탕에 깔려있다.
4년 전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장애인들이 생산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장애인을 채용했을 시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 때문에 회사가 선택한 일이었다. 지금 현재는 장애인 고용으로 인한 혜택은 끝난 상태이다. 그렇기에 회사에서는 이들을 해고하지 못하고 빠른 시일 내로 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상태이다. 이제 단물 다 빠졌으니 알아서 눈치껏 나가라는 것이다. 현장관리자는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욕을 하는 건 일상이고 무시는 다반사이다. 그야말로 이곳은 계급사회의 축소판이다.
어느 곳에서나 다르진 않겠지만 이 회사에서도 생산직의 복지는 생각할 수 없다. 연봉직에게는 자녀가 학교 입학할 때마다 돈으로 혜택을 준다. 자기 계발비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생산직은 십 년 넘게 일했어도 아무런 혜택이 없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도 연봉직과 생산직을 차별을 두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대학을 졸업했으니 혜택을 받는 게 당연하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으니 아무런 혜택도 기대 말라는 게 당연하다는 건가.
일을 하며 항상 느끼는 거지만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들과는 거리가 먼 다른 행성에 있다는 걸 다른 존재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직업이 생산직이다.
톱니바퀴는 잘 맞물려 있을 때 어긋나지 않고 돌아간다. 물건을 생산하는 회사는 연봉직도 필요하지만 생산직도 중요하다. 자본주의에서 어느 하나 불필요한 일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고귀한 존재이다.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장애인이든 생산직이든 다 같은 사람이다.
은유작가는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가 유독 직업에 대한 귀천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기업 회장이건 경비원이건 사회적 역할이 다를 뿐 모두 다 같은 동료 시민이다.'
사회적 역할만 다를 뿐인데 이 사회는 편협한 사고만을 강조하고 있다. 편견이 난무하는 한국사회는 희망이 있는 걸까.
생산직은 기계 취급을 받는다. 언제나 손쉽게 누구라도 할 수 있으며 사람 없어도 일할 사람은 널렸다 생각되는 생산직. 그렇기에 천대받고 무시받더라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일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로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