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호종료가 된다. 만 열아홉 살에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삼십 년 전 나는 보육원에서 자립금으로 백만 원을 받았다. 이때껏 돈 한번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 내게는 백만 원이라는 돈이 커다란 액수였다. 그 돈으로 뭘 할까 하다가 간호학원 등록금으로 다 냈다. 간호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중 이 길이 적성이 안 맞는다 싶어 빠른 포기를 선택했다. 그 후 나는 혈혈단신으로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친구언니가 자취하는 집에서 잠깐 신세를 졌다. 그러던 중 성수동에서 생산직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써서 갔다. 거기는 기숙사도 있었기에 일하면서 지내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일 년 정도 일했을 때였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됐다. 회사 측 경영자는 노동조합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조합원들을 해고했다.
회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피켓 시위를 벌이며 해고 철회 복직 투쟁을 했다.
회사 경영자는 한마디로 비열하고 치사한 사람이었다. 절대로 그는 앞에 나서서 얼굴 한 번 보여주질 않았다. 자신의 권력을 앞세우고 노예처럼 묶여있는 관리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조합원들과 싸우게 만들었다. 함께 웃으면서 일했던 그들이 노동조합 반대편에 서서 열심히도 싸웠다. 폭언은 기본이었고 폭력으로 다치기도 했다. 폭력사태는 경찰서까지 가야지만 끝이 났다.
노동청에 해고철회 진정서를 넣었고 회사의 정리해고가 위법이라는 복직판정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회사에 출근할 수 있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회사는 조합원들이 없는 틈을 타 밤중에 몰래 중국으로 도망쳐 버렸다.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뜨겁고 치열하게 회사 경영자와 맞서 싸웠다.
노동 조합은 노동자의 노동 조건이나 임금 노동 시간등을 더 좋은 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세워지는 단결된 힘을 회사 경영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삼십 년 전 그 시절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는 기숙사에 있다는 이유로 야근, 철야까지 자신들 내키는 대로 부려먹었다.
몰랐다. 노동조합 세우고 나서야 이러한 사례들이 부당한 대우였음을 알았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하며 노동조합 세우는 걸 회사 경영자들은 왜 그토록 싫어하는 걸까?
내 생각엔 딱 한 가지다.
노동자가 조합은 세우고 협상을 하자고 할 때 경영자와 마주 보며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이걸 못 참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영자들은 노동자가 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배를 두둑이 불려줄 수 있는 기계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장이기 때문에 기계는 그냥 시키는 데로만 하면 된다는 심리가 무의식 중에 박혀 있다. 기계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노동조건들을 맞추기 위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어야 된다는 게 자신들에게는 곤욕이고 치욕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할 때 기계에게는 인권 같은 건 없고 기존에 하던 대로 돈만 벌어주며 시키는 대로 복종하길 바랄 뿐이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야반도주를 한 후 조합원들은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찾아 이력서를 넣었다. 출근하라는 통보가 오면 회사에 출근해 열심히 일을 했다. 며칠 뒤 회사에서 해고 통보서가 날아든다. 이미 노동조합을 만들고 해고된 이력이 블랙리스트라는 명분으로 삽시간에 다른 사업장으로 퍼져 나갔다. 일을 하기 위해 들어간 곳마다 입사와 해고가 반복되었다.
그 시절 삼십 년 전 뜨거웠고 풋풋했던 이십 대를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삼십 년 전이나 지금 2025년이나 노동자의 처우 근무환경 노동형태는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더 악화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노동자가 죽어도 눈하나 깜빡이지 않는 회사 경영자.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계 하나쯤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경영자를 볼 때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노동자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