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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Aug 08. 2022

저의 금쪽이 동료는요. . .

모아 보면 에피소드 | 내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어릴 적부터 가족여행은 때마다 잘 챙겨 다녔다. 운 좋게도 가서 싸우지도 않고 기분 상하는 일도 드물었다. 대부분 아빠가 정하는 대로 가는데, 운전도 밥도 숙소까지 자연스레 도맡아 익숙해졌다. 이런 흐름은 여행지뿐 아니라 집에서도 영향을 끼친다. 60대인 아빠가 30대인 딸을 위해 혼자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하는 걸 넋 놓고 보지 않으려 부단히 애써야 한다. 몇 가지 예시로 우리 집에서의 아빠의 역할과 범위에 대해 알아보자.


예시 1) 엄마가 외출한 집

아빠는 엄마의 부재를 티 내고 싶지 않아 했다. 이미 내 두 눈으로 엄마가 외출했음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랬다. 엄마를 좋아하는 어린이와 사는 양육자로서 그럴 수 있지만 내가 스무 살이 훌쩍 넘었을 때까지 그랬다. 아빠는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차린 다음 설거지를 한 후 음식물 쓰레기를 바로 처리한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후식인 과일을 깎아 내어 주는 것도 잊지 않지.


예시 2) 주말 장보기 및 식사

아빠는 주 1회, 보통 일요일에 쉰다. 한창 바빴을 때는 쉬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훌쩍 흐른 시간 덕분에 쉬는 날을 종종 확보하고 있다. 여전히 일이 없는 날에도 사무실에 나갔다가 규모가 작은 견적 받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하여튼 일요일 아침이면 평소와 같이 일어나 (새벽 5시) 육수를 끓이고 면을 삶아 고명을 올린다. 반찬도 얼마나 곱게 담아 꺼내는지 전에는 내 그런 행위가 엄마에게만 영향받은 줄 알았었는데 둘 다 그런 사람이라 그런 거였다. 모두를 깨워 식사가 끝나면 조금 있다가 시장으로 향한다. 본인이 사고 싶은 것과 나머지 동행인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며 입에 물려준 후 점심도 아빠가 준비한다. 저녁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까지 세상 모든 아빠라는 사람들은 다 이런 줄 알았다. 지금은 종종 거부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백종원 선생님과 편스토랑 등 각종 요리 레시피 프로그램을 챙겨본다. 


예시 3) 여행 장소 및 루트 선정

앞에서 말했듯 어릴 때부터 가족여행을 때에 맞춰 잘 다녔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가족여행 때문에 결석해 개근상을 받지 못했다.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가는 부산이었는데 그마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정도다. 뜬금없지만 최근 사나운 개의 미용만 맡아하는 개 미용사를 봤는데 미용 전 산책하는 걸 봤다. 문득 제사라는 행위가 한동안 내게 뾰족하게 박혀있지 않은 건 큰집에 가기 전 부산 여기저기를 둘러봐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걸 비롯해 제철 음식을 위해, 새로 생긴 공간을 위해 등 수많은 이유로 국내 여기저기 향했다. 운전, 식당 및 관광지 선정, 기념품 구매 등 모든 건 아빠가 이끌었고 결제까지 당연하게 이어졌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이번 여행 이후 아빠는 내 앞에서 이전처럼 조금 수다스러워졌다. 아무래도 함께 여행을 다녀오니 한결 마음이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항상 가족여행을 혼자 이끌었던 것과 달리 이번 여행은 조금씩 역할이 나뉘었다. 물론, 여전히 아빠 혼자 운전하고 비싼 밥은 아빠가 결제했지만. 여행 전 미리 갈만한 곳을 찾는 아빠의 자식답게 중간중간 추가로 갈 곳을 찾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전에는 곧 죽어도 가지 않았던 카페를 이제는 같이 갈 수 있기 때문에.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음료에 대해 이해하기보다, 그냥 얘네는 이런 걸 즐기는 것 같다고 대충 받아들인 것 같다. 


금쪽이와 금쪽이는 서로를 오랜 시간 부정했었다. 이상적인 아빠와 자식의 역할을 상상하며 대하다 보니 오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마주 앉아 상처받았던 때를 뾰족한 말로 주고받았던 때부터 뭔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런 부분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 하는 착각에서 벗어났을 때 가벼워졌다. 부모에게 실망을 빨리 안겨줄수록 좋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문장인가 보다. 잘할 것만 같은 자식에서, 지 쓸 돈 알아서 벌기만 하면 다행인 자식새끼로 사는 게 편안하다. 그리고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내 부모는 말도 꺼내지 않은 것들을 무리해서 안겨주려 했던 시간은 결국 내 욕심 아니었나. 알고 보면 그도 내게 큰걸 바란 적은 없다. 나도, 그도 다 사정이 있었지, 애써 말하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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