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소리 내고 나면 괜찮아질 수도
나는 아빠라는 역할을 한 내 인생 첫 어른을 무서워했다. 그러다 미워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뒤섞여 도무지 모르겠을 때 글을 쓴다. 그를 구성하는 요소를 내 식대로 펼쳐 들었다고 해서 사랑이 넘친다거나 딱히 더 미워하는 건 아니다. 난 내가 이해한 모습 자체로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루는 금쪽의 아내와 나, 금쪽이가 삼자대면했다. 단순히 의심이었을 수 있고, 아니었을 수 있다. 이전의 의심이 진짜였음에도 그날만큼은 금쪽이의 결백을 믿었다. 금쪽과 금쪽의 아내는 마주 보며 날 선 대화를 나누었다. 금쪽의 아내는 그날만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마음을 모두 털어놨다.
금쪽은 버거운, 조금 귀찮아하는 표정이었다. 문득 어떤 일이 일어난 뒤 피해자는 고통받고 가해자는 지친 표정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뭔가 할 말이 있었다. 쉬이 말이 나오지 않아 식당 한쪽에 있는 술장고로 성큼성큼 걸어가 소주 한 병을 가져왔다.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냅다 소리쳤다.
그동안 금쪽이가 했던 잘못을 내가 몰랐을 거 같아? 다 알아!
손이 바들바들 떨렸고 계속 힘을 주고 있었는지 소주잔이 깨졌다. 피가 흘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엉엉 울며 근처 약국으로 향했다. 약사는 큰 표정 변화 없이 필요한 약을 들려주며 상처 부위를 살펴주었다. 울음이 잦아들고 나자 정신이 들었다. 근처 놀이터에 앉아, 하고 싶었던 말을 생각해봤는데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아마 손이 떨린 건 그동안 금쪽에게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게 무서웠던 거 같다. 내가 초등학생 혹 중학생 때까지 금쪽은 집에 오면 나와 무슨 말을 나누지 않고, 가끔 재떨이나 TV 리모컨을 가져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 딱딱함에 애써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