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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May 17. 2022

애국가를 부르고 싶어졌다

참고 나면 다 에피소드 | 내 일상의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4개월 만인가?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대로 가족이랑만 마주하고 있어야 했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가끔 먹고 싶은  떠오를 때면 배달해먹었다. 막국수, 떡볶이 같은 것들. 가장 먹고 싶었던  역시 김치인데 그건 집에 많으니까. 하루에 하나씩 도장깨기 하듯 시켜먹고 드라마를 봤다. 그러다 떠나기 , 외식을 하지 못하니 집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며 아빠가 분주히 움직였다. 밖에서 종일 일하고 집에  입맛에 맞는 장을 만들고, 김치를 꺼내어 썰고, 파절이를 만드는 정성. 익숙한 뒷모습을  때리며 구경했다.


소주와 함께 한 쌈 두 쌈 먹는 재미를 막 느낄 때 즈음 아빠가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입에 넣은 쌈이 아직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쌈을 씹어 넘긴 후 대답했다.


앞으로 취업하고~ 취업하면 일하며 지내야지.


눈을 뜨고 보니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눈을 내리 깔았고 나도 시선을 금방 회피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빠는 소주 한 잔을 손에 든 채 말을 시작했다. 어쩐지 잔에 담긴 술은 줄어들지 않았고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 잔을 가져다 대볼까, 다른 얘기를 꺼내볼까,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많은 방법이 생각났지만 이거다! 하는 게 없었다. 문득 애국가를 부르고 싶어 졌다, 물론 마음속으로. 어떤 경험이든 나중에 다 쓸 데가 있다는 게 이런 걸까? 연수를 받으며 아침 운동하기 전 부르던 애국가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1절, 2절, 3절까지 이어 불렀는데 잠시 아빠의 말이 멈추어서 보니 잔이 비워졌다. 그때를 틈 타 나도 쌈 하나에 잔을 한 번 비웠다.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으나 아빠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 내게는 자부심 느낄 만한 게 별로 없다. 하지만 그중 하나가 잔소리 없는 아빠였다. 이제는 그마저 사라졌다. 나이 탓일까, 호르몬 탓일까, 내 탓일까. 분명 마침표를 찍은 줄 알았던 말이 줄 바꿈 해 다시 이어졌다.


동공에 힘을 푼 채 마음속으로 애국가 4절을 불렀다. 그래도 두 번째라 그런지 밥도 넘어갔다.


아유! 그만해!


인내심에 한계가 온 건 엄마였다. 아빠와 나는 잠시 엄마를 쳐다보았다가 내 손이 밥으로 향하는 와중에 아빠는 다시 줄 바꿈에 말을 이어갔다. 대단해 보였다. 일정한 톤으로 똑같은 말을 비슷한 단어를 써 다르게 여러 문장으로 나누어 말한다. 역시 아빠는 문과다. 아빠는 글쓰기랑 미술을 병행해 배웠어야 했다. 그걸 해 보지도 못한 채 성향에 맞지 않는 건설, 수학, 서비스 같은 걸 평생 하고 있으니 에너지가 다르게 분출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시야가 흐릿해질 즈음 식사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떠나는 당일 아침, 아빠가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다. 기차를 타는 곳까지 올라와 배웅하는데 어제와 똑같은 문장이 시작되는 걸 보고 얼른 올라탔다. 애국가를 부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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