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나면 다 에피소드 | 내 일상의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4개월 만인가?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 그대로 가족이랑만 마주하고 있어야 했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가끔 먹고 싶은 게 떠오를 때면 배달해먹었다. 막국수, 떡볶이 같은 것들. 가장 먹고 싶었던 건 역시 김치인데 그건 집에 많으니까. 하루에 하나씩 도장깨기 하듯 시켜먹고 드라마를 봤다. 그러다 떠나기 전, 외식을 하지 못하니 집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며 아빠가 분주히 움직였다. 밖에서 종일 일하고 집에 와 입맛에 맞는 장을 만들고, 김치를 꺼내어 썰고, 파절이를 만드는 정성. 익숙한 뒷모습을 멍 때리며 구경했다.
소주와 함께 한 쌈 두 쌈 먹는 재미를 막 느낄 때 즈음 아빠가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입에 넣은 쌈이 아직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쌈을 씹어 넘긴 후 대답했다.
앞으로 취업하고~ 취업하면 일하며 지내야지.
눈을 뜨고 보니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눈을 내리 깔았고 나도 시선을 금방 회피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빠는 소주 한 잔을 손에 든 채 말을 시작했다. 어쩐지 잔에 담긴 술은 줄어들지 않았고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 잔을 가져다 대볼까, 다른 얘기를 꺼내볼까,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많은 방법이 생각났지만 이거다! 하는 게 없었다. 문득 애국가를 부르고 싶어 졌다, 물론 마음속으로. 어떤 경험이든 나중에 다 쓸 데가 있다는 게 이런 걸까? 연수를 받으며 아침 운동하기 전 부르던 애국가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1절, 2절, 3절까지 이어 불렀는데 잠시 아빠의 말이 멈추어서 보니 잔이 비워졌다. 그때를 틈 타 나도 쌈 하나에 잔을 한 번 비웠다.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으나 아빠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 내게는 자부심 느낄 만한 게 별로 없다. 하지만 그중 하나가 잔소리 없는 아빠였다. 이제는 그마저 사라졌다. 나이 탓일까, 호르몬 탓일까, 내 탓일까. 분명 마침표를 찍은 줄 알았던 말이 줄 바꿈 해 다시 이어졌다.
동공에 힘을 푼 채 마음속으로 애국가 4절을 불렀다. 그래도 두 번째라 그런지 밥도 넘어갔다.
아유! 그만해!
인내심에 한계가 온 건 엄마였다. 아빠와 나는 잠시 엄마를 쳐다보았다가 내 손이 밥으로 향하는 와중에 아빠는 다시 줄 바꿈에 말을 이어갔다. 대단해 보였다. 일정한 톤으로 똑같은 말을 비슷한 단어를 써 다르게 여러 문장으로 나누어 말한다. 역시 아빠는 문과다. 아빠는 글쓰기랑 미술을 병행해 배웠어야 했다. 그걸 해 보지도 못한 채 성향에 맞지 않는 건설, 수학, 서비스 같은 걸 평생 하고 있으니 에너지가 다르게 분출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시야가 흐릿해질 즈음 식사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떠나는 당일 아침, 아빠가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다. 기차를 타는 곳까지 올라와 배웅하는데 어제와 똑같은 문장이 시작되는 걸 보고 얼른 올라탔다. 애국가를 부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