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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 May 19. 2022

과거의 영광을 풀어내고 호기심을 채우는 방법

듣고 나면 다 에피소드 | 내 일상의 모든 이야기는 글감이 된다

여행 중 한식이 먹고 싶어 친구가 추천한 한식당에 갔다. 여행사인 줄 알고 지나쳤던 그곳이었다. 들어가니 벽면 가득 관광 상품이 붙어있었다. 출입문에 노란 리본이 붙어있는 것을 보았고, 시선을 옮겨 메뉴판을 봤다. 사실, 메뉴판은 보지 않아도 됐었다. 이미 여기서 먹어야 할 건 알아둔 상태라 바로 주문하는데 그 메뉴는 지금 하지 않는 다고 했다. 상실감에 젖어 다른 메뉴를 주문했고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기본 반찬이 깔렸는데 그 맛이 한국 양념과 똑같았다. 사실, 해외에서 한국 식당과 똑같은 맛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인데 이곳이 그걸 해냈구나 싶었다. 설마, 직접 공수해오는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질 즈음 메인 메뉴가 나와 먹는데 집중했다. 게다가 시간 차로 주어지는 서비스 메뉴 또한 기가 막혔다. 최대한 천천히, 다 먹으려 애썼지만 무리였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식당 안에 있던 사진 속 주인공이 앉아 있었다. 왠지 반가운 마음에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국 사람이요? 내가 커피 줄게, 앉았다 가세요


충분히 앉아있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믹스 커피를 주셨고 오랜만에 차오르는 진한 맛에 더 앉아있을 수 있었다.  


사장님은 방콕에 20년을 머물렀고, 최근 코로나로 인해 5개월 정도 가게를 닫은 시간 빼놓고는 가게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식당 후기나, 운영하는 관광 상품의 개수로 보아하니 규모가 작지는 않은데 어디 많이 놀러 다닐 기회가 많지 않으시냐 하니 밥집 사장은 밥집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흔한 골프도 치지 않은 채 새벽에 낚시를 하고 와 씻고 잠들었다 일어나면 식당에 출근하신다고 했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사장님은 내일 점심때 같이 밥 한 끼 하자고 하셨다. 진짜 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12시가 되어 준비한 다음 가게로 향했다. 사장님은 어제 그 자리에 앉아 계셨다. 식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걸 먹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단번에 삼겹살이라고 말했다. 리뷰 1등 메뉴는 김치말이 국수, 2등이 삼겹살이었기 때문에. 


의도가 완벽하게 없는 자리는 아니었다. 사장님은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면서, 요즘 한국 관광객을 본지가 너무 오래되어 반가웠다고 했다. 특히, 먼저 한국어로 인사하는 손님은 더더욱 오랜만이라고. 몇 개월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라고 하시니 이런 한국음식과 함께라면 더 많은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셔도 괜찮다고 했다. (ㅋㅋㅋ) 태국 공주가 왔다간 날, 책 제안을 받았다가 쓰지 않았던 날, 많은 한국인에게 도움 준 날, 방문했던 손님이 단골이 되었던 날 등 자리를 지킨 날만큼 쌓인 이야기가 많았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모두 말릴 때 여행을 와 자리잡기까지 어느 틈 하나 사장님의 고집이 베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식당 자리를 몇 곳 선정해두고 그곳에 하루에도 몇 번씩 지켜보며 사람이 얼마나 다니는지, 주변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살피고 또 살폈다고 하셨다. 환경에 익숙해지고, 돈은 벌지만 여전히 초기와 비슷한 루틴으로 삶을 살아내고 계셨다. 좋아하는 낚시를 하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 주변 세상을 만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하셨다. 두 시간 남짓이었나, 끊일 듯 끊이지 않던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볼일 보고 숙소로 향했다. 


이거다, 하고 정리할 수 있는 말을 아직도 찾지 못했지만 사장님의 20년을 이끈 건 호기심과 고집인 것 같다. 다만 그걸 채우고 이끄는데 나름의 제한을 두었다는 게 신기하다. 호기심을 주변에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밥집을 지키며 찾아오는 손님들로 채우고, 고집스럽게 매일 식당에 출근하는 루틴. 이런 순간을 만나려고 여행하나 보다. 여행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다. 사장님은 누구보다 과거의 영광을 풀어내고 호기심을 채우는 방법을 잘 아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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