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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r 05. 2021

사과(?) 선물하는 남편,  돌고래 소리 연습하는 아내



출근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핸드폰에 ‘서방님’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심쿵(좋아서 아님).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전화보다는 카톡을 선호하는 편인데 출근하자마자 전화라니 무슨 급한 일이지 싶었다.


택배 왔어?

아니. 아무 연락 못 받았는데..

그래? 문 앞에 두고 갔나?

초인종 소리도 못 들었는데..

문 앞에 있나 나가볼래?

기다려봐.


요즘은 택배는 비대면 배송이 원칙이라 대부분 문 앞에 쿨하게 던져두고 가신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우리 동네 택배 기사분들은 다들 비대면방식으로 배송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지금의 비대면 배송 방식이 나에게 있어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작은 차이라면 이전에는 분실을 걱정하셔서인지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거나 문 옆 창고에 넣어두고 가시던 걸 이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쿨하게 집 앞으로 밀어버리고 가신다는 정도? 그래서 가끔 이러다 분실되면 누가 책임을 지는 건지 걱정될 때도 있다.


남편의 주문(?)에 따라 현관문을 열어 보니 택배는 없었지만 문 옆 작은 창고 손잡이가 올라가 있었다. 누군가 열었다는 증거다. 창고 문은 열기는 쉬운데 닫는 데는 요령이 필요하다.


창고에 넣어두고 가셨나 보네.

응, 그럼 됐어.

기다려봐. 내가 꺼내 올게.

응? 아냐. 아니.. 꺼내서 들여다만 놔.


갑자기 남편이 다급하게 말했다.


'뭐지? 이 횡설수설은?'


가끔 나 몰래 세차용품이나 쓸데없는 잡다한 물건을 사는 남편은 사는 것까지는 몰래하는데 개봉은 쿨하게 내 앞에서 한다. 아마 샀는데 어쩔 거냐는 심리 아닐까 싶은데 남편이 몰래 사는 것들은 쓸데없는 물건은 있어도 고가의 물건은 없어서 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미니멀 라이프도 좋고 절약도 좋지만 예쁜 쓰레기를 사는 것도 사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창고에서 택배를 꺼내 수취인 이름을 보니 둘째 조카였다.

'아하~~ 그거구나.' 뭔지 알고 있었지만 시침 뚝 떼고 남편에게 말했다.


뭐야? 앤 또 왜 우리 집으로 택배를 보냈대? 다시 보내줘야겠다.


그러자 아까보다 더 다급한 남편의 목소리.


아냐. 아냐.

....

서프라이즈 해줄라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그거 자기 꺼야.

내 거?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으며 모르는 척 대답했다.


뜯어서 출근할 때 바꿔 끼고 가.

에어 팟이야.

나 에어 팟 있는데?

'아는 데 모르는 척하는 것도 힘들다.'


아이패드 자기 꺼로 하나 더 샀어.

생일날 맞춰 주려고 했는데 택배 때문에 들켜버렸네.

어머~~ 뭐하러. 자기 맥북 에어 사라니까.

됐네. 자기 잘 쓸 것 같아서.

아휴~~ 난 괜찮은데.. 비싼 걸..

에어 팟은 자기 줄게. 자기 새 거 써.

뜯어봐.

아냐. 아이패드 오면 같이 뜯어볼 거야.

아이패드는 언제 온다고?

아이패드는 담주쯤 올 것 같아.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덜 좋아한 듯 해 열심히 이모티콘을 날렸다.








그 날 오후, 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딸과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엄마 아이패드는 담주에 온대."

"어? 아빠가 말했어?"

"응, 아침에 택배 왔다고 나가보라고 하더라고. 근데 또 언니 이름이잖아. 잘못 왔다고 하니까, 아니라고 서프라이즈 해줄라고 했는데 들켰다면서 말하더라. 근데 사실 엄마 알고 있었어."

"그럴 것 같았어. 언니랑 계속 엄마 아는 것 같다고 했는데 아빠는 아니라고 우기더라고."

"그랬어?"

"응. 모를 수가 없잖아. 언니 이름으로 택배가 왔는데 엄마가 물어보지도 않고. 언니가 그러더라고.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계획이 이렇게 엉성한데.. 차라리 아빠 회사로 받던가."

"학생 할인받으려면 주소가 같아야 한데."

"언니 왔을 때 아빠랑 나랑 언니랑 셋이 모이면 계속 쑥덕쑥덕 그 이야기했거든. 지난번 나 화장실에서 양치할 때 아빠가 들어왔잖아. 엄마가 뭐하냐고 했을 때. 그때 아빠가 색깔 물어보더라고."

"그랬어? 그건 몰랐네. 엄마가 알고 나서 아빠가 너 공부하는데 방에 한참 들어가 있기에 그때는 이야기 하나 보다 했지."

"그때는 택배 올 테니까 나보고 받으라고. 근데 그 날이 하필 내가 학원가는 날이라서. 근데 얼마 전에 아빠가 엄마 생일 선물 뭐 받고 싶냐고 물어봤잖아. 그때 엄마가 아이패드 필요 없다고 해서 아빠 완전 당황.”

“ㅎㅎㅎ 다른 거 말해볼까 하다 아빠 심장마비 올까 봐 관뒀지.”

“ㅋㅋ 엄마는 언제 알았어? 언니 이름으로 택배 왔을 때?”

"아니. 그전에. 근데 모른 척하고 있었어. 서프라이즈 하려고 준비하는데 아는 척하면 김 빠지잖아. 나중에 열렬히 환호해 주려고 기다렸지."

"진짜? 그럼 언제부터 안 거야?”

"왜 아빠가 술 드시고 와서 바로 주무신 날 있잖아. 핸드폰을 거실에 두고 갔는데 자꾸 카톡이 울리는 거야. 소리가 너무 커서 아빠 깰까 봐 진동으로 바꿔야지 하고 핸드폰을 봤는데 언니 이름이 뜨면서 '딱히 메일없는거면 승인돼서 그냥 발송되는 거 아닐까요?'라는 메시지가 뜨더라. 밤 11시가 넘어서 언니랑 아빠가 카톡 할 일도 없을뿐더러 내용이 딱 너 아이패드 살 때 내용이더라고. 그래서 알았지. 아~~ 샀구나."

"대박. 아빠만 몰랐네."

“그니까. 곰팅이. 그래도 고맙지 뭐. 이제 엄마는 아이패드가 도착하면 돌고래 소리를 내며 기뻐하는 연습만 하면 돼. 아빠 뿌듯하게.”

“ㅎㅎㅎ”

“엄마가 알고 있다는 거 아빠한텐 비밀이다.”

“ㅇㅇ”



내가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며 준비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오늘부터 남편을 위해 기쁨의 돌고래 소리 연습!!


이케




이케




이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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