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침묵사이

by 김성민


헤븐님이 편지에 써주신 보부아르의 『제 2의 성』 인용 구절이 반가웠어요. 제목은 숱하게 들었지만 막상 읽지 못한 책. ‘여성들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나오는 책. 그리하여 여성운동의 시초가 된 책을요. 어쩌면 지금 결혼에 대해 편지를 쓰는 시간이 그동안 알고 있던 결혼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다시 정의하는 시간 같아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결혼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실천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겠고요. 흔히 결혼을 사랑의 종착지, 혹은 안정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막상 결혼생활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지 않던가요?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끊임없이 자기희생을 감당해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물론 자기희생에 보상처럼 따라오는 만족스런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은 짧아요. 반짝 하고 빛나는 찰나. 맞아요. 삶은 그렇게 흐르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빛나지 않는 순간들을 감당하는 시간들의 모음, 삶.



흥미롭게도 보부아르는 내가 타인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지요. 타인을 위한 헌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를 위한 것임을요. 그러니까 ‘자기희생’도 보부아르 눈에는 나를 위한 것이라고 볼지도 모르겠어요. 안정적 행복 대신 불완전한 사랑의 모순을 선택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계약결혼’은 행복을 위한 선택이 아닌 자기 실존을 책임지기 위한 선택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의 새로운 기획 앞으로 투사한다’고 말했던 보부아르는 인간을 채워질 수 없는 존재로 보았어요. 채워지는 순간, 권태로워질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 한 상태도 아니고 안 한 상태도 아닌 애매한 개념을 발명하여 ‘계약 결혼’이라고 이름 붙였고요. 그것이 두 사람이 함께 동시에 나아가는 길이었겠지요.



헤븐님이 언급하신 영화 <남과 여>를 읽으면서 전에 써둔 리뷰가 생각났어요. ‘사랑의 애매함’에 관한 영화라고 적었더라고요.



‘영화는 기홍의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식의 애매한 화법처럼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상민과 기홍은 만날 때 서로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이야기는 곧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현실을 모른 채 지속하는 만남.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곳이 바로 기홍에게는 상민, 상민에게는 기홍이었다.’



상민: 나도 당신 좋아하고 당신도 나 좋아하잖아 그럼 된 거예요. 얘기 따위가 뭐가 필요 있어.

기홍: 그냥 얘기가 하고 싶다고요.

상민: 우리가 얘기할 게 뭐가 있어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함께 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서로의 현실이 되어버린다면 두 사람은 위태로워지고 도망갈 다른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영화의 배경이 되고 두 사람이 만나는 곳은 핀란드의 자작나무 숲. 눈이 세차게 오면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시간이 멈춘 곳이에요. 현실을 숨겨주는 곳이지요. 그렇게 현실은 가려지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저 하얀 눈 속에 파묻힌 형국처럼 나아가지 않아요. 침묵하기로. 더이상 묻지 않기로. 그들의 대화는 하얀 공백으로 채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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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남과 여>를 보면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핀라드 헬싱키의 설경. 눈부신 눈밭이요. 이야기를 떠나서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어요. 그만큼 설경이 중심이 되는 이유는 어떤 사건은 그 배경 속에서만 가능하니까. 배경이 아니라면 그 사건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생각나는 영화가 있는데요. 영화 ‘비포’ 시리즈에요. 이른바 ‘비포 트릴로지’라고 불리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 선라이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배경으로, 선셋은 프랑스 파리를, 미드나잇은 그리스 해변이 배경으로 나오지요. 제시와 셀린의 대화가 끊임없이 흐르는 이유는 풍광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풍경은 대화의 그림을 완성하고 대화와 침묵 사이를 채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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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선라이즈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비엔나에서 낭만적인 하루를 보내며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대화를 나눈다면, 선셋에서 9년 만에 파리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보여주는 대화는 비엔나에서 보낸 하루가 삶을 뒤흔든 경험이었는지, 그동안 나를 생각해 왔는지 확인하는 대화에요. 내가 너의 인생에서 그저 스쳐갔던 사람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람이었는가, 바로 그 질문이요. 그리고 무엇보다 파리에서의 재회는 9년 전 ‘한 여름 밤의 꿈’으로 박제된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 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해보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영화 미드나잇에서는 제시와 셀린의 9년 후 모습이 나오지요. 어여쁜 쌍둥이 딸을 둔 부부로요! 제시는 전에 한 결혼으로 아들을 두고 있고 양육권으로 전부인과 갈등중이죠.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온갖 부부문제가 등장해요. 셀린은 쌍둥이를 육아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고투를 벌이고 있어요. 두 사람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다투고 서로에게 실망하고 화내요. 그럼에도 그들은 대화를 시도하죠. 닫힌 마음을 여는 유일한 건 대화라는 듯이요. 18년에 걸쳐 펼쳐진 제시와 셀린의 사랑은 이제 달달함에서 단단함으로 옮겨간 것 같아요. 그들의 얼굴에 생긴 주름만큼이나 대화에도 주름이 있어요. 주름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요?




그러니까 ‘비포 시리즈’는 대화에 관한 영화겠어요. 대화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 대화의 결을 촘촘히 채우면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단단히 연결되어요. 대화를 할 때 코 한쪽을 찡그린다든가, 꺼내기 어려운 말을 시작하기 전에는 손이 입 주변에 간다든가하는 사소한 버릇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거죠. “있잖아.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것은 너나 ,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셀린의 말은 우리에게 알려줘요. 침묵과 침묵 사이를 연결하는 말, 말과 말 사이에 침묵을 통해 삶의 윤곽을 잡고 사랑을 그려나간다는 것을요.



다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를 떠올려요. 그들이 결코 헤어질 수 없었던 이유는 대화가 아니었을까요? 각각 다른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인력처럼 서로에게 돌아오도록 이끄는 대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나누는 사랑은 말과 글로 촘촘히 엮어진 형태였을 테니까요.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나고 보부아르는 말했죠. ‘죽음은 침묵’이라고. 보부아르가 슬픈건 평생 중요한 대화의 상대를 잃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대화의 시간이 닫힌 것이죠. 보부아르는 그 침묵을 다시 열고자 사르트르의 마지막을 기록한 『작별의식』을 써요.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침묵으로 완성이 되어요.




편지로 나누는 대화에 마음이 뻐근해지는 밤,

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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