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이야기
*스포 포함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번역
책 소개에 '우리 모두 스토너였다'라는 말이 있었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들으면서) 느꼈다. 우리 모두 스토너와 비슷하다고. 스토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한 선생님이 독서모임에서 읽고 추천해 줘서 저장해 놓았다. 뭐 읽을까 책을 둘러보고 고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가끔 화면을 여기저기 돌리고 스크롤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내 나름대로 적어놓은 '읽고 싶은 책 리스트', '추천 책 리스트'에서 고른다. 마침 윌라 오디북에 <스토너>가 있어서 듣기 시작했다.
윌라로 듣지 않았다면 완독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다. 읽다 잠들거나 지루해서 멍하니 활자만 읽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중간에 중세 희곡, 시, 영문법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는 정말 지루했다. 편도 3시간이 조금 못 되는 친정에 혼자 운전해 갈 일이 있었다. 혼자 운전하면서 소설을 듣다니! 며칠 전부터 설렜다. 운전하면서 방해받지 않고 실컷 듣고 싶어 아껴서 듣기까지 했다.
야심 차게 <스토너> 켰다. 한참 운전하느라 졸릴 때 아리스토텔리스까지 나오면서 문법이 어쩌고 희곡, 시가 어쩌고 나올 때는 '아, 어떡하지. 졸음쉼터 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그 고비를 지나니 다시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빠져 듣게 되었다. 그 지루했던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 전개에 있어 상당히 중요했다. 스토너와 동료교수인 로맥스의 대결 또는 스토너가 '당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그 강의에서 캐서린을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스토너라는 한 사람의 대학진학시기부터 죽음까지의 삶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사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거나 극적인 반전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살면서 겪을 법한 일들을 섬세한 관찰과 묘사로 서술한다. 그래서 어쩌면 단조로울 수 있도 있다.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어쨌든 계속 듣게 된다. 성우의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도 소설과 잘 어울린다.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고, 공부하고, 직장 다니고,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곧 실망하고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은 없어지고, 알고 보니 배우자는 이상한 사람이었고, 내가 만들어놓은 허상에 속아서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가정을 유지하고, 애 키우고 직장 다니느라 힘들고, 바람피우고(진지한 감정이었고 스토너에게 이디스보다는 캐서린이 어울렸고 필요했지만), 자식은 사고 치고, 직장에서는 사내정치에 휘둘리고, 성격 더러운 직장 동료한테 당하고, 게으르고 교활한 학생한테 교권침해 당하고, 그렇다고 딱히 뭘 해볼 수도 없는, 스토너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책을 듣는 내내 '내 이야기네', '우리 모두의 이야기네'라고 생각했다. 부분적으로는 다르지만 크게 보면 비슷하다.
옮긴이는 번역하면서 '이 사람아, 왜 당하고만 있어. 찍소리라도 내봐야지. 딸을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캐서린을 위해서라도'하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스토너가 좀 답답하기는 하다. 거의 인내와 성실의 아이콘이다. 착하기까지 하다. 푸트부부, 이디스나 로맥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혼자 감내한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안 되어 보인다. 이디스가 말도 없이 스토너의 서재에 있는 짐 다 빼고 좁은 방으로 내쫓았을 때, 로맥스가 시간표 이상하게 짜서 괴롭힐 때는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도 답답하긴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하고 산다. 괴로움을 인내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서평에서 스토너의 삶을 설명하는 데 '초라한 실패담', '절망적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물론 스토너의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게 다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결국 스토너의 삶은 실패와 절망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놀랐다. 내 삶도 스토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남들이 볼 때 내 삶도 '초라한 실패담'이자 '절망적인' 삶처럼 보일까? 사는 게 고통이긴 하지만 내 삶이 실패나 절망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다. 스토너도 집과 직장에서 당하는 입장이다 보니 안쓰럽긴 하지만 그의 삶이 '실패나 절망'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다 그렇게 산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는 사람도 내밀하게 들어가 보면 당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삶을 소설처럼 구석구석 정밀한 언어로 묘사한다면 누구든 이렇게 안쓰럽고 불쌍하지 않을까. 스토너가 동료와의 갈등과 암투에 당해서 정교수로 승진도 못하고 아내한테 냉대받지만, 다들 그런 문제를 안고 산다. '그가 자신의 실수 또는 남의 잘못으로 인해 겪는 고난은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이나 겪게 마련인 고난의 사례일 뿐이다'
스토너는 매번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다.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하고 묵묵히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문학을 평생 가르쳤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종신교수로 일했다. 불륜이긴 했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다. 오랜 시간 곁에 있어준 친구도 있었다.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그 험난한 시대에 단명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절망이나 실패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스토너를 영웅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처음부터 저자와 같은 생각이었다. 스토너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어차피 다들 비슷하게 불행하게 사는 것 같기 때문에. 모두가 조금씩은 불행하게 살지만 그 와중에 그래도 스토너는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다. 그에 따르는 결과도 회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 윌리엄스는 이 소설을 슬프다고 생각하는 독자의 반응에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이 책은 인물의 말하는 모습과 감정,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할까? 낯설면서도 절묘한 표현을 어떻게 생각해 내고 글로 표현할까? 더불어, 저자의 의도와 인물이 처한 상황과 분위기를 영어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또 얼마나 어려웠을까? 인물의 목소리 하나에도 이렇게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구나. 그것을 알아채고 언어로 구체화할 수 있다니 감탄하며 읽었다. 추천할 만한 책이다. 바쁜 시간을 내어 읽어볼 만한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