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라 다섯 번째 책
윌라로 들은 다섯 번째 책.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첫 번째는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이건 약 50분짜리 요약본), 두 번째는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세 번째는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 네 번째는 <스토너>, 이제 다섯 번째 책 <페스트>이다.
어느 금요일 저녁, 학교폭력사안처리 연수가 끝나고 후배교사와 함께 집에 가는 중이었다. 각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걸었다. 요즘 윌라로 오디오북을 듣고 있고, 혼자 읽기 힘든 소위 고전이라는 책을 윌라로 완독 해보려고 한다고 내가 말했다. 나보다 약 18살 어린 후배교사는 고전 중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나에게 알베르 카뮈란 '유명한 작가'일 뿐,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다음 책을 망설임 없이 <페스트>로 정했다.
이참에 그 유명한 알베르 카뮈라는 사람의 책을 한 권 읽어봐야겠군. 어떤 대화 자리에서 알베르 카뮈에 대한 얘기를 할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서든 그 이름이 나왔을 때 먼 산을 쳐다보기보다는 한 권 읽어봤다고 말하는 게 낫겠지.
책을 들으며 든 첫 번째 생각은 '역시, 윌라 오디오북이 아니었다면 완독 하기 힘들었겠다'였다. 문체와 단어가 사색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이걸 읽었다면 멍한 눈으로 활자만 따라갔을 게 분명했다. 옮긴이도 이 소설의 '만연체'를 될 수 있으면 살려내려 했다고 작품해설에서 말한다. 사실 오디오북도 거의 무념의 상태로 듣기는 했다. 바로 앞에 들었던 <스토너>의 낭독을 맡았던 성우가 해설과 주인공을 맡아서 더 지루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성우 자체가 별로였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성우의 명확한 발음과 부드러운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성우의 낭독이 좋아서 책을 듣기도 할 정도이니. 그래도 누가 읽어주니까 그럭저럭 졸린 구간을 잘 지나갔다. 혼자 읽었다면 완독 하는데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렸을 것은 확실하다.
고전문학이나 문체가 지루할 것 같은 책은 읽기 전에 책의 줄거리나 작가 의도, 등장인물을 대강 찾아본다. 요약해 보면 <페스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성을 지키려는 태도, 부조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말하고자 한다. 특히 페스트는 단순한 병이 아니라 전쟁이나 폭력 같은 비극의 상징으로 이에 대응하는 여러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자각 없이 살던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연대와 희망을 만들어 가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의사 리외, 시청 서기 그랑, 여행자이자 강남좌파 느낌이 나는 타루가 있다. 이 소설은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에 세 사람 말고도 밀매업자 코타르, 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판사 오통, 리외엄마 등이 나온다.
비슷한 우리나라 영화나 소설로 정유정의 <28>, 영화 <감기> 등이 떠올랐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에 우리가 실제로 겪었던 코로나19. 나는 코로나로 인해 내 삶이 크게 바뀌었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삶은 불확실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변한 것은 사실이고 나도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았다.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돈을 풀었고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하게 일어났다. 집단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모습을 좀 드러내도 되는 분위기도 만들어진 것 같다.
나도 나름대로 코로나19를 겪으며 한 가지 의식하게 된 것은 있다. 고통 속의 희망과 연대, 종교와 현실의 괴리 같은 대승적인 관점까지는 갈 것도 없고 그냥 주변 돌아가는 것을 보며 느낀 것이다. 어떤 심각한 문제이든 시간과 함께 결국은 지나가게 된다는 것. 생각보다 빨리 지나갈 수도 있고 더 지겹게 지나갈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내가 생각한 대로 착착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 안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고 한 반짝 떨어져 조금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이렇게 말은 하지만 당장 우리 집에 있는 중학교 2학년 첫째 아이에게는 이것을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코로나19 초반에 마스크 대란을 예로 들어보자. 일요일 아침, 사람들이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약국이 있는 4층에서부터 계단을 돌고 돌아 1층 입구를 넘어 인도와 찻길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 서 있다가 없던 코로나도 얻어걸릴 모양새였다. 어떻게든 마스크를 구하려고 애썼지만 헛걸음치는 일이 흔했고 작은 다툼도 있었다. 막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할 때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편견이 대단했다.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을 직장에서 따돌리고 낙인찍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계속 변했다. 마스크는 금세 차고 넘쳤다. 코로나는 곧 창궐하여 가족 중에 안 걸린 사람이 없게 되었다. 두 번 걸린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당장의 문제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특정 사물이나 사람에 좌표를 찍지 않는 것이 문제가 닥쳤을 때 가져야 하는 태도라고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생각은 이렇게 한다 해도 막상 문제를 직면하면 나같이 애면글면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래도 인식이라도 한 것이 어디냐. 인식하지 않고, 의식하지 못하고, 들떠 있을 때 페스트는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