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ADHD 성향을 가진 것 같다
학교 선생님들은 ADHD에 대해 지식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잘 알고 있다. 거기에 더해 P는 남들보다도 집중도 잘하고, 일을 하는 능력도 우수하며, 본인이 가지고 있던 어려움들을 장기간에 걸쳐 스스로 극복해 왔다. 그럼에도 이제는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몇 가지가 남아 있었다. ADHD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 <아무도 모르는 나의 ADHD>, 황희성 - 밀리의서재
ADHD에 관한 세 번째 책.
첫 번째 책은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에세이 < 나는 ADHD 아이를 키우는 초등교사입니다>. 아이의 실제 생활과 엄마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는 소아정신과 의사가 쓴 <ADHD 우리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할까>. 실제 진료 사례, ADHD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과 육아 정보가 들어있다.
이번 책은 ADHD를 가진 정신과 의사가 쓴 성인 ADHD에 관한 것이다. 성인의 ADHD는 아이들의 것과는 다르고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경전달물질과 약의 기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룬다.
이 책의 저자는 실제 자신이 ADHD를 겪고 정신과 의사로서 많은 이들을 진료하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성인 ADHD에 대해 설명한다. 아이들의 ADHD는 보통 집중력 저하, 과잉 행동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성인의 ADHD는 그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ADHD '스펙트럼'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 강박, 우울, 하지불안이나 불편감, 수면장애 등에서 일반적인 정신과 약으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 ADHD 약을 복용했을 때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ADHD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의심을 해볼 것 같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기 어려워하고,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깜빡하는 증세, 감정 조절의 어려움 등을 겪는다고 토로한다. 나도 그렇다.
집중력이나 기억력에 관한 것뿐 아니라 내가 나의 ADHD 성향을 의심하는 이유가 또 있다. 책에서 말하는 많은 부분에 살짝 또는 깊게 내 모습이 닿아있다. 완벽주의성향(완벽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완벽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도 못하는 성향), 계획이 틀어지면 굉장히 불안해하고 불쾌해하는 것, 불안과 강박, 끊임없는 생각, 휴식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리를 건널 때 다리가 무너지지 않을까? 터널을 운전할 때 터널이 무너지면 어떡하지? 육교를 건널 때 누군가 나를 밑으로 밀지도 모르니 조심하자. 차도 옆을 지날 때는 '저 차가 나를 덮칠지도 몰라'. 공중화장실을 쓸 때는 '앞사람이 병균을 묻혀놓지는 않았겠지?'.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 놀랐다.
둘째 아이 낳고 3년만 휴직하고 복직하려고 했다. 셋째가 생겼을 때 내 계획이 틀어진 것을 괴로워했고 막내를 낳고도 몇 달 동안 제대로 피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혼자 뭔가를 하고 있는데 애들이든 남편이든 방해하면 짜증이 솟구친다.
과거 가족들에게 들었던 서운했던 말, 누군가에게 공개적으로 면박받은 것, 면박을 받고도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한 것, 그때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못한 것, 나는 왜 이렇게 못났나.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어떤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겉에서 봤을 때는 차분하고 자기 할 일 제대로 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학교 다닐 때도 집중해서 공부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공부 안 하고 못했던 핑계를 대는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사실이다.
깨어있을 때 가만히 쉬는 것이 불안하다. 뭐라도 해야 한다. 순수하게 유튜브만 보고 있는 것은 죄악이다. 빨래라도 개야 한다. 내가 그나마 죄책감 없이 취하는 휴식은 휴일의 낮잠이다. 낮잠이 가장 '효율적'이고 편안한 휴식이다. 다른 일과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휴식을 계획했기 때문에 쉬어야 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힘들었다. 항상 머릿속에 걱정과 불안이 있었다. 아이를 둘 낳고 나서 까지 그랬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했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다(일부 사실이기도 한 것 같다). 남들은 다 친해 보이는데 나만 소외된 것 같았다.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내가 ADHD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성향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아마 내가 이 책을 30대에 봤다면 '내가 성인 ADHD 구나' 하면서 심각하게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다. 40대가 된 지금은 내가 ADHD 성향을 지닌 것 같다, 하지만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잘 다스리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종종 비교지옥에 빠지고 불안하다. 나 같은 사람, 너무 하찮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예전에 비해 요즘은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대해서 다소 자유로워졌다. 아이를 셋 낳고 키우며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였다. 겨우 그렇게 되었다. 애 셋 키우며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딴생각할 겨를이 없기도 했다. 인생 별거 없다는 깨달음 비슷한 것도 있었다. 내 가족이 중요하지 주변에 스쳐가는 사람들은 정말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책임져야 하고 가장 소중한 사람들 외에는 긴 시간 동안 마음속에 머물지 않았다. 그리고 필요시 정신과를 찾아 상담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는다.
하나 더. 역시 나는 애를 낳아서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의 이런 성향이 아이들에게 갔을 거라 생각하니 다시 또 후회가 밀려온다. 뭐 좋은 거라고 대물림되나. ADHD는 거의 유전이라고 한다. 첫째와 셋째가 나의 성향을 물려받아 불안과 강박을 가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어쩌겠나. 바로 위에서 말하지 않았나. '어렵고 힘든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ADHD 진단을 받은 우리 반 아이들 덕분에 내가 많이 배운다.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내 아이와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교실에서 나는 비록 녹초가 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무지에 대한 자각이 아주 조금 일어난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ADHD 치료제는 크게 정신자극제(psychostimulant)와 비자극제(nonstimulant)로 나뉜다. 2023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처방 가능한 정신자극제 성분은 메틸페니데이트 한 종류이다. 메틸페니데이트는 속효성(빠른 효과)과 서방정(서서히 방출된다)으로 나뉜다. 속효성에는 페니드, 페로스핀이 있고, 서방정에는 메디키넷, 콘서타가 있다. 국내에서는 서방정만이 보험 적용이 되어 사용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