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재, 형수, 우영, 지유(반장), 지영
아, 내 소개가 늦었다. 어떤 이들은 나를 타이밍이나 운이라 부르기도 하고 행운의 여신이나 운명의 장난이라 부르기도 한다. 글쎄,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다. 내 이름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내가 '인생'이라는 판을 짜 놓은 작자를 몹시 싫어한다는 거고, 그래서 인생에 참견하길 좋아한다는 거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또 이꽃님작가의 책.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너무너무 재밌게 읽어서 다음 책도 자연스럽게 이꽃님작가 책으로 골랐다. 저자가 가정폭력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전에 읽었던 <내가 없던 어느 밤에>도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주된 소재였다.
이 책은 두 중학생 남자아이들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평범하고, 눈에도 잘 띄지 않고 오히려 찌질한 쪽인 형수와 우영이다. 이야기 속의 서술자는 맨 위에 소개된 대로 타이밍, 운, 또는 행운 같은 어떤 무형의 신 같은 존재이다. 형수와 우영이는 우연히 은재가 아버지로부터 심하게 맞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둘은 그 후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은재를 돕게 된다. 형수와 우영뿐 아니라 반장(지유)과 지영도 함께 한다. 반장은 어쩌다 보니 우영과 사귀게 되는데 우영은 시작과는 다르게 지유를 정말로 좋아하게 된다. 지영은 은재가 스카우트된 축구부 주장이다. 다행히도 믿을만한 어른도 있다. 형수의 아빠이자 중학교 축구부 감독인 최감독이다. 서술자인 '타이밍' 또는 '운'은 이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은재는 원하던 축구를 하며 친구들과 어른의 보호를 받는 것 같다. 은재의 아버지가 또 나타나서 애를 막 패고 욕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현실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 어떤 선생님은 자신의 반 아이가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것을 알고 아동학대 신고를 했는데 그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와 난장판을 벌였다고 했다. 그 아버지로부터 쌍욕을 들은 것은 덤이었다고.
책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다. 내가 만약 형수와 우영이라면? 외면하지 않고 친구를 구해낼 수 있을까? 못했을 것 같다. 우리 집 중학생한테도 물어봤는데 걔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형수와 우영이도 둘이서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액션을 취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지유, 지영이라는 친구가 함께 했기 때문에 은재를 지켜줄 수 있었다. 또 결정적인 순간에 최감독이라는 힘센 어른이 '타이밍'에 맞게 나타나주었다.
나는 혼자서는 절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닌 친구와 씩씩한 친구들이 둘 더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혼자일 때는 하지 못했을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소설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소한 나나 내 아이가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최소한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사실 나는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을 내 탓으로 돌리는 파렴치한 인간들을 싫어한다. 그런 인간들은 인생이 대단한 거나 되는 줄 알고 뭔가 조금만 틀어져도 운명이 장난을 쳤다는 둥 어쨌다는 둥 원망만 늘어놓는다. 분수에 넘치는 걸 들고 있으면서도 당최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런 인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도무지 염치라고는 개똥만큼도 없는 인간들이다. 12쪽
서술자가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거다. 살을 조금 더 빼면, 키만 조금 더 크면, 말을 조금만 더 잘하면, 공부를 조금만 더 잘하면...... 끝없이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그 전부를 좋아해 주는 것.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 105쪽
우영과 지유 사이.
은재도 알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제일 먼저 자신을 포기한 사람이 자기 자신임을.
161쪽
형수와 우영은 은재를 '다크나이트'라고 불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