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 search for meaning
2017년에 처음 읽었던 책이다. 그 뒤로 계속해서 '한 번 더 읽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당시에는 책을 읽고 네이버블로그에 비공개로 독서록을 썼다. 이 책을 읽던 중에 썼던 일기도 있었다. 일기는 물론 비공개였으니 감정이 그대로 쏟아져있었다. 몇 년 전 내가 썼던 일기는 남이 써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써놓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아... 내가 그때 그랬구나. 그날 2호, 3호로 인해서 열폭했던 일을 써놨던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은 책 읽으면 뭐 하나 열폭하는 건 책 읽으나 안 읽으나 똑같은데' 이런 내용이었다.
실제로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감정이 앞서고 시련이 닥치면 우울해하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라면서 절망한다. 그때 돌도 안 되었던 3호가 이제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데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고 희망했다. 아주 조금은 나아지겠지,라는 바람으로 열심히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최소한 나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이후로 한 가지는 마음에 새기면서 살았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
어차피 이 상황을 내가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시련은 정해져 있으니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하자. 냉장고 청소, 걸어서 마트 가기, 세수하고 얼굴에 팩 붙이기, 유튜브 보면서 스트레칭 10분만 하기, 이런 작은 것들 말이다.
2017년에는 어린아이들 키우느라 몸이 힘들었다. 내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짜증이 꽉 차있었다. 2026년 현재는 아이들로부터 몸이 상당히 자유로워졌고 나의 시간과 공간도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대로 고민과 작은 절망들이 두더지 잡기처럼 튀어나온다. 일단 건강과 돈 문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40대 중반이다. 돌아보니 예전에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재 짊어져야 하는 책임과 걱정은 그때와는 스케일과 무게가 다르다.
돈, 건강, 부모님, 아이들 학업...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지금을 돌아보면 나는 뭐라고 할까? 그때가 좋았다고 할까? 그때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고 다만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의 태도'만은 내가 결정하겠다. 얼굴 찡그리고 누워만 있지는 않겠다. 절망과 굶주림 속에서도 성자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절대 성자는 못되지만 그래도 돼지는 되지 않겠다.
2017년 11월, 죽음의 수용소를 읽던 중에 막 썼던 일기
시련은 다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은 무슨 의미?
나는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이 중요한 사람인데 지금 나는 세 딸한테 방해받으면서
이걸 쓰고 있다. 아침은 내 시간인데... 쓸데없이 다들 일찍 일어나서 나를 방해하고 있다.
특히 큰 딸들 둘이 서로 싸우고 징징대며 나를 짜증 나게 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인격적 성숙?
개뿔... 이런 시련은 없었으면 좋겠다.
해도 안 뜬 6시 30분에 일어나서 나를 귀찮게 하니 그저 짜증이 날 뿐이다.
이런 좋은 책을 읽어도 현실로 돌아오면, 바로 한 순간에 나는 그 좋은 말과 다짐을 다 잊어버리고
얄팍하고 한심한 사람이 된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절망과 굶주림의 상황에서 성자와 돼지가 나뉜다고 했는데 나는 돼지가 될 사람이다.
이 책은 진짜 좋은 말이 많고 고개를 끄덕이고 한동안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 세 딸의 시달림을 받다 보면 아 18 됐고 야!! 하고 소리 지르게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조차 삶의 의미를 찾고 살아간다는 데 나는 그와 비교도 되지 않을 좋은 환경에 있는데 삶의 의미를 찾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결국 내가 이리도 얄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지적 허영심에 책은 많이 읽지만 그거 다 소용없다.
사람이 원래 이렇게 생겨먹어서.
그럼... 내 딸은?
또 결국 내 딸은 이렇게 키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긍정적이고 어려움의 순간에 삶의 의미를 찾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되고 다시 한번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렇게 사는 거지 힘들었다가 좀 나았다가 잠깐 좋았다가 다시 힘들었다가...
앗!! 지금 보니 2024년 11월에도 이 책을 읽었었다! 심지어 그때 두 번 읽은 책이라며 브런치에 리뷰까지 썼다!! 어쩐지...밀리의 서재로 책 읽으면서 하이라이트가 왜 이렇게 많지? 이거 언제 하이라이트 된 거지? 이랬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