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무려 15시간 33분 23초 동안 듣는 책이다. 처음에는 1.0 속도로 듣다가 너무 느린듯하여 속도를 0.1 올려 1.1로 들었다. 딱 알맞은 속도인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범인 찾기, 예상 못한 반전 등과 같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조건을 거의 다 충족한다. 그래서 한동안 이 책 저 책 찾아 읽었었다. 한동안 뜸했다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이제 그다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녹나무의 파수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인 찾는 소설은 읽고 나면 기분이 찝찝하기도 했고, 인물과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중간에 정리가 필요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이건 좀 억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여러 사건이 전개되면서도 복잡하지 않고, 끝나고 나서 찝찝함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감동과 스릴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고 할까.
이 책의 리뷰 댓글 중에 기억에 남는 것 하나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소설이 더 잘 맞는 듯'이었다. 그의 소설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소재가 많아서 읽고 나면 머리가 무겁다고 해야 하나, 개운한 기분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읽고 썼던 리뷰를 읽어보니 와, 재밌다, 대단하다! 이런 표현이 대부분이다. 아무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내 기억 속에 재밌지만 조금 무거운 이미지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레이토가 엄마의 이복언니 치후네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 레이토를 '감옥 안 가도록 경찰서에서 꺼내 줄 테니 무조건 내 말대로 하라'는 조건으로 누군가 꺼내준다. 그게 치후네다. 누가 레이토를 감옥 안 가게 변호사까지 써서 꺼내주지? 를 시작으로 녹나무의 비밀이 뭐지? 기념이 뭐지? 사지 유미 아빠는 뭐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같은 의문을 계속해서 떠오르게 한다.
처음에는 15시간 언제 듣냐 했었는데 중간을 넘어가면 아껴듣고 싶을 정도다. '재미와 감동을 한 번에!'라는 것이 말이 쉽지 자칫 시시하거나 급한 마무리가 될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고개를 끄덕이며 여운을 갖게 한다.
작가마다 각자의 색깔이 분명히 있다. 어떤 작가는 예리한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으로 묘사를 잘하고, 어떤 작가는 비유를 잘하고, 어떤 작가는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깊이 있게 꿰뚫어 보고, 어떤 작가는 쓱쓱 읽히게 명쾌한 문장을 쓴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라는 것이다. 처음과 끝이 연결되고 그 사이의 퍼즐이 딱딱 들어가도록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놀랍다. 게다가 다작하시는 분이 말이다. 그의 뇌구조가 궁금하다.
지금은 <녹나무의 파수꾼> 후속작인 <녹나무의 여신>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다. 이것은 9시간 4분 32초이다. 아껴듣고 싶기도 하고 궁금해서 빨리 듣고 싶기도 한 매력 터지는 소설이다. 녹나무 시리즈 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