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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an 12. 2022

지나기 전엔 모두 최악의 순간이었다

지나기 전엔 모두 최악의 순간이었다. 내일을 살아갈 희망조차 사라진 기분 속에서 혼자 침대 위에 앉아 엉엉 울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낙하하듯 떨어지는 자존감이 배를 간지럽혔다.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차라리 사라지고 싶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런 절망감은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반복됐다. 나이가 먹고 상황이 바뀌었을 뿐 인생을 시궁창에 처넣는 사건들이 연속되어 나타났고 그때마다 이유를 찾지 못해 세상 탓으로 돌려야 했다.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를 보면 나오는 인물들의 궁색한 삶이 나보다 더 힘들지라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내가 느끼는 고통은 크기와 별개로 다른 종류의 것이기에. 




  내 삶 앞에 등장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아픔들이 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이의 위로나 격려도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만 하던 순간이 있고 나보다 더 큰 아픔을 겪은 이가 고통을 자랑하는 일은 나를 더 추락시키기만 했다. 그 뒤로 위로를 외면하고 거부했다. 차라리 홀로 고통 속에 존재하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 나았다. 때로는 아픔을 공유한 대가로 내가 겪은 일을 주변에 떠벌리진 않을까, 그래서 그들끼리 나를 불쌍히 여기며 서로 위안을 삼지는 않을까 괜한 증오심이 불타오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몇 년 내내 이동하는 대중교통 속에서 김밥을 한 알 씩 떼어먹는 일이 생에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밥만 보면 헛구역질이 나오는 이의 삶을 제대로 이해해 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 쌓였던 설움을 터뜨리고 마는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슬픔은 재질도 종류도 디자인도 모두 다른 탓에 함부로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가진 기쁨과 매치를 해본다 해도 쉽게 가려지지 않은 것이 슬픔이 가진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날보다 슬픈 날을 더 오래도록 기리는지도 모른다. 슬픔을 자주 떠올리는 일은 슬픔을 재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번복될 슬픔을 방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나고 나면 모두가 최악의 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단 한 숨도 내뱉지 못할 만큼의 고통이 지나고 아직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며 그래도 살아갈 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년도, 재작년도, 무려 십 년 전에도 살아갈 의지를 잃어봤지만 어찌어찌 동아줄을 붙잡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와 같이 절망 안에 갇힐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지난 최악의 날을 떠올린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가 힘들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힘든 시간을 지나왔고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과거의 슬픔은 결국 지금의 슬픔도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생명의 기억임을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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